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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89호] 우리는 왜 종이책을 만들까?
참여자
ㅇㅁㅅ 아이디 이문섭 편집장
ㅇㅇㅎ 하슈 이연희 대표
ㅈㄷㅇ 보슈 정다운 사진팀 팀장
진행
ㅇㅇㅇ 월간 토마토 이용원 편집국장
ㅇㅇㅇ 최근 대전에 새로운 종이매체가 많이 생겼습니다. 시대적 흐름에 비춰 본다면 잡지는 쇠퇴해 가는 사양 산업 중 하나인데요. 이렇게 힘든 잡지 산업에, 그것도 20대 청춘이 뛰어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ㅇㅁㅅ 아아디(id) 매거진 편집장 이문섭입니다. 아이디 매거진은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입니다. 올해 5월 창간호를 발행했고 매달 잡지를 만들고 있어요. 5월 발행호부터 8월까지 총 4호를 발행했습니다. 매번 5천 부 내외를 발행해 대전과 세종지역 카페, 은행, 미용실, 관공서 등에 무료로 잡지를 배포하고 있습니다.
ㅇㅇㅎ 인문계열 창업 미디어 하슈(HASHU) 대표 이연희입니다. 하슈는 인문계열 학생들에게 창업 정보를 전달하는 잡지예요. ‘대전 대학생 청년창업 500 프로젝트’에 선정돼 지원금을 받아 올해 7월 창간호를 발행했습니다. 계간지로 발행하고요. 무료로 배포하는 무가지입니다. 창간호는 약 4천 부 정도 발행했어요. 일부는 서울지역에 배포했고, 나머지는 대전 지역 대학교 인근 카페와 전국 대학교 창업보육센터에 비치했습니다. 저희는 잡지뿐만 아니라 온라인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창업 정보를 전달하는 플랫폼 비즈니스와 로고 디자인 사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ㅈㄷㅇ 보슈(BOSHU) 사진팀 팀장 정다운입니다. 저희는 대전지역 청년을 위한 청년 문화잡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대전시 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돼 올해 3월부터 잡지를 발행하기 시작했어요. 현재 2호를 발행했고요. 저희 역시 무료로 배포하는 무가지예요. 2천 부 정도 발행해 1천 부는 학교나 카페, 관공서 등에 배포하고 나머지 1천 부는 개인적으로 연락이 오거나 필요하다고 하시는 분을 중심으로 나눠드리고 있습니다.
ㅇㅇㅇ 요즘 젊은 친구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종이책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말은 예전부터 자주 회자되던 이야기인데요. 요즘 그 정도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ㅈㄷㅇ 제가 공대 출신이라 주변에 공대생이 많아요. 공대생 책 정말 안 읽어요. 전공책을 제외하고 1년에 책 한 권도 안 읽는 친구가 절반도 넘을 거예요. 저도 대학교 3학년 때까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해리포터라고 답했어요. 정말 감명 깊었다기 보다는 그때 읽은 책이 그것뿐이었거든요. 요즘은 책 대신 스마트폰을 많이 보죠. 페이스북 같은 SNS에 많은 정보가 수시로 올라와요. 책보다 더 재미있고, 쉽게 정보를 접할 수 있죠. 하지만 젊은 친구들은 그 정보가 정말 내가 원하는 정보인지 아닌지는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아요.
ㅇㅇㅎ 사회적 분위기도 한 몫 하는 것 같아요. 요즘엔 취업 준비가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죠. 책 읽을 시간에 스펙 쌓고, 영어 공부하고, 취업 준비하겠다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에요. 종이책을 읽는다면 취업에 관련된 책이죠. 그렇다고 그런 친구들에게 책 읽어야 한다고 강요할 수 없어요. 사회적 분위기가 그러니까요.
ㅇㅁㅅ 사실 책 말고 재밌는 것들이 많아요. 예전에는 심심해서 책을 봤다면 지금은 책 말고도 할 수 있는 것이 무척 많죠. 저도 밤에 잠 안 오면 스마트폰으로 검색부터 하거든요. 습관인 거죠. 요즘 친구들은 책 읽는 습관 대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하는 습관이 든 것 같아요.
ㅈㄷㅇ 맞아요. 독서가 싫은 것이 아니라 시대가 변하면서 책보다는 다른 매체가 더 자연스러워 진 거죠. 저도 어릴 때 책 대신 비디오를 봤어요. 맞벌이하는 부모님이 집을 비우면 자연스럽게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나 만화책을 빌려봤어요. 그런데 그게 중독성이 강해요.
ㅇㅇㅎ 디지털 시대로 변하면서 소비자 성향이 자연스럽게 변한 것 같아요. 좀 더 편리하고 쉽게 정보를 얻고 싶은 거죠. 그렇게 전자기기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점점 종이책과 멀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종이책, 왜 만드는가
ㅇㅇㅇ 위에서 언급했듯이 종이책에 대한 관심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세 분은 왜 종이책을 만드시는지 궁금합니다.
ㅇㅇㅎ 제 전공이 문예창작학과예요. 그런데 사회에 나가 전공을 살려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요. 같은 과를 졸업한 친구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걸 봤어요. 인문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함께 뭔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렇게 친구들과 창업을 준비하면서 공부를 많이 했어요. 창업을 공부하다 보니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꽤 많더라고요. 다른 사람에게 내가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좀 더 쉽게 창업에 대해 알려주는 매체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인문학도들을 대상으로 우리가 가진 능력을 발휘해 보고 싶었어요. 글로 쉽게 풀어 설명하고, 잘 모르는 창업과 관련한 정보를 전하는 식으로요. 트렌드의 흐름을 잘 읽고 그에 걸맞은 정보를 담은 잡지라면 사람들이 분명 볼 것이라고 여겼죠. 읽고 싶은 정보가 담긴 책이라면 직접 사서 줄도 긋고, 내 것으로 만들잖아요. 잡지를 혹은 종이책을 소유하고 싶게 하는 거죠. 언젠간 다시 종이책의 시대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요.
ㅈㄷㅇ 위에서도 말했듯이 20대 젋은 친구들이 인터넷이나 SNS에 수시로 올라오는 방대한 양의 정보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어요. 20대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스마트폰과 온라인 매체의 알고리즘을 깊이 이해하는 친구는 거의 없죠. ‘좋아요’를 누르는 행위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지 못해요. 거대 기업에 자신의 정보를 맡기고 결국에는 그 자본에 좌지우지 돼죠. 이런 식의 정보 수용이 계속 되다 보니 정작 사회에 나가 내게 필요한 정보를 찾는 능력이 부족해졌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가 종이책과 같은 아날로그적인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요. 또 ‘창작 공간 벌집’을 기반으로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지역과 청년에 관심을 두게 됐어요. 청년들은 정작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아무 관심이 없어요. 지역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역과 관련한 정보를 얻는 방법도 모르고요. 그런 것들을 알려주고 싶어 종이책을 만들게 됐어요. 잘 못하면 모두 바보가 될 것 같다는 두려움도 있었고요.
ㅇㅁㅅ 어렸을 때부터 잡지를 많이 봤어요. 패션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잡지에 나오는 물건은 하나같이 가격이 비싼 거예요. 내가 잡지를 만들면 조금 저렴한 제품도 함께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입사한 회사에서 잡지를 창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현실적인 잡지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어요. 좋은 기회를 잡았죠. 지금 편집장 자리에서 유익하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잡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종이책, 그가 가진 감수성
ㅇㅇㅇ 세 분 모두 종이책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좋아 잡지를 만드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종이책이 좋은지, 종이책의 어떤 감수성에 끌리는지 궁금합니다.
ㅇㅁㅅ 종이책에 대한 그리움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종이 냄새, 책 넘기는 소리, 종이 위에 펜으로 긁적거리는 소리. 그런 것들 하나하나 다 좋아요. 여기 모인 분들 모두 종이라는 것에 미련을 못 버리고 끝까지 붙들고 있는 분들인 것 같아요.
ㅈㄷㅇ 어느 날 서점 갔는데 책 읽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제대로 읽어보자는 마음에 대학교 4학년 때 독서 스터디에 가입했어요. 처음에는 힘들었죠. 일주일에 한 권씩 책 읽는 것도 힘든데 『자본론』이나 조지오웰의 『동물농장』같이 다 어려운 책을 읽는 거예요. 그래도 한 권씩 인문학 서적을 읽으면서 가치관에 큰 변화가 생겼어요. 제 고향이 경상북도 구미예요. 주변에 공장이 많아요. 어른들도 가치관 형성이나 교육보다는 돈 버는 일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고요. 그런 모습을 보며 자라온 제가 다 큰 성인이 돼서 가치관이 변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나 인터넷을 보면서는 생각지 못했던 것을 책에서 찾을 수 있었어요.
ㅇㅇㅎ 저는 읽고 싶은 책은 꼭 사서 모아요. 책은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하고, 다른 모습으로 살 수 있게 하는 어떤 계기를 제공해 주거든요. 그동안 읽어 온 책을 쭉 보고 있으면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한눈에 보여요. 사람들은 모두 과거에 대한 향수나 그리움을 갖는 것 같아요. 제게는 책이 그런 도구인 셈이죠. 새로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등 중요한 변곡점을 맞을 때마다 영향을 준 책이 있어요. 그런 책이 결국 나를 말해주는 것 같아요. 옛날의 나를 기억하게 하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줬어요. 일기와는 또 다른 나만의 기록인 셈이죠.
종이책, 비전을 말하다
ㅇㅇㅇ 세 분이 보시기에 종이책, 비전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ㅇㅇㅎ 저희는 수익을 내야 하는 사업이다 보니 사실 잡지만으로는 힘들어요. 최근 인문학을 기반으로 뭔가 해보려는 시도가 많은 것 같아요. 잡지도 그중 한 분야인 것 같고요. 잡지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어떤 것과 결합해 새로운 형태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새로운 형태의 잡지를 만드는 일이 지금 저희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고요. 20대니까 뭐든 도전해보자는 마음도 있죠. 하지만 ‘실패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아니에요. 올해 3월부터 공부하고, 직접 배우고, 뛰어다니며 창간호를 만들었어요. 도전은 젊음의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도전과 함께 현실적인 부분도 고려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ㅈㄷㅇ 처음 보슈를 시작할 땐 깊은 고민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런데 잡지를 한 권 한 권 만들면서 알아보는 사람이 늘고, 피드백도 오고 하니까 어떤 감성적인 보상, 뿌듯함과 보람을 느꼈어요. 아무리 스마트폰 사용자가 많아져도, 연필은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잡지 시장이 점점 좁아지겠지만, 결코 소멸하진 않을 거예요. 모든 것이 페이스북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어요. 대전에서만큼은 계속 보슈를 만들고 싶어요. 만약 제가 직접 만들 여력이 안 된다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꼭 참여할 거예요.
ㅇㅁㅅ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잡지 시장이 좁아지긴 해도 없어지진 않을 거예요. 저희는 직접 발로 뛰면서 최대한 많은 곳에 배포하려고 해요. 사람들이 잡지를 안 보면 보게 해야죠. 자꾸 눈에 어른거리게 해야 더 많은 사람이 잡지에 관심을 두고 읽을 거라고 생각해요.
편집자주 종이책을 이야기하는 잡지사 관계자들에게서 절실함, 아쉬움, 안타까움, 희망 등 다양한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들고 있었다. 고전적 종이매체 중 하나인 ‘잡지’가 존재할 세상의 틈바구니는 점점 좁아지겠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대체적으로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에 관한 명확한 근거는 아직도 ‘연필’이 존재한다는 것 정도였다.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연필이 이처럼 강한 ‘희망의 메시지’라는 생각을 해보지는 못했다. 연필이 뭉클해지는 순간이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잡지가 혈혈단신 독야청청 할 수는 없으니 다른 다양한 시도와 결합해야 한다는 대안 제시도 있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비디오를 넘어 스마트폰과 SNS 까지 고전 매체를 위협하는 뉴미디어는 끊임없이 출현하지만 그 틈 안에서 ‘종이 잡지’는 끊임없이 소멸하면서 끊임없이 다시 등장한다. 종이 감수성으로 나타나는 치명적인 매력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