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9호] 대전문화연대 창립 10주년 임기대 공동대표

“오늘 우리는 대전문화연대를 창립합니다. 물질만능주의의 왜곡된 환경 속에서 문화의 공공성을 회복하여, 거주지와 경제적 능력에 의해 차별받지 않고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당당하게 주장하고, 개입하고, 연대하여 문화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서는 대전의 도시공간을 공공의 문화공간으로 확보하여 시민들이 골고루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늘리고, 시민들의 세금이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에 제대로 쓰이는지 감시하고 목소리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시민들의 문화적 감수성을 향상시키고 문화활동가들을 키우기 위한 문화교육사업과 함께 지역에 뿌리박은 다양하고 새로운 문화의 역량을 북돋아 지역 문화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문화는 우리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찾아 일 년 반을 기다려 이제 시작하려 합니다. 함께 꾸는 꿈은 실현됩니다. 대전을 살맛 나는 문화도시, 문화사회로 만들기 위하여 이제는 우리들의 목소리를 힘 있게 내야 할 때입니다. 우리 모두의 소중한 역사적 출범을 계기로 우리들의 작은 노력이 모일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고 힘을 합쳐 나갑시다.

-2004년 9월 9일 대전문화연대 창립회원 일동-”

10년 전 이맘때, 대전문화연대(이하 문화연대)가 창립하면서 발표한 창립선언문 중 마지막 대목이다. 2014년, 문화연대가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지난 시간 문화연대는 어떤 길을 걸었으며, 앞으로 문화연대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아래는 임기대 문화연대 공동대표와 본지 이용원 편집국장의 이야기를 정리한 내용이다. 이 자리에서 임기대 공동대표는 ‘변화와 혁신’을 이야기하며 10년을 맞이하는 시점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적 쇄신을 포함한 다양한 변화 모색을 통해 그동안 10년을 정리하고 앞으로 10년을 제대로 준비할 수 있는 틀을 만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용원 창립 때부터 관여한 임기대 대표로서는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지난 10년 돌아보니 어떤가.

  

   

임기대 창립 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문화 관련 공부 모임을 진행했다. 그때 구성원이 문화연대의 출발점이다. 다양한 주제로 함께 토론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뜻밖에 대전에 의기투합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단순히 공부가 아니라 운동의 성격을 지닌 시민단체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문화연대가 만들어졌다. 10년 전이다. 그때만 해도 지역 문화계에 단체활동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많은 욕구가 있었고,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좋았다. 되돌아보면 그때 의기투합이 잘 됐던 것 같다.

  

  

이용원 문화연대라는 단체가 어떤 단체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간단히 정리해주었으면 한다.

  

  

임기대 먼저 정책에 관한 부분이다. 문화영역에서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곳이다. 시민이 원하는 문화정책은 행정가가 생각하는 문화정책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 그런 시민의 요구를 수용해 행정과 맞닿게 하는 활동을 한다. 두 번째로는 지역에서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요즘 보면 문화 영역에서 꿈을 펼치고자 하는 젊은이가 많다. 그런 젊은이가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문화연대가 생각하는 역할이다. 우리가 대전에서는 거의 최초로 진행한 인문학 강좌에서 우리 지역 출신 강사를 섭외한 것도 이런 생각과 맥이 닿아 있다. 같은 강좌라도 대전 사정을 잘 아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내용은 다르다. 지역과 고민을 함께할 수 있는 인물을 찾으려 했다. 또 문화는 ‘재미’다. 우리가 진행한 인문학 강좌도 당시에는 일종의 놀 거리였다. 정리하면, 창립선언문에서 밝힌 것처럼 ‘문화로 즐거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을 하는 단체다.

  

  

이용원 지난 10년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임기대 처음 유성에서 터를 잡고 대흥동으로 온 것이 2007년이다. 그때만 해도 대흥동에는 정말 사람이 없었다. 원도심을 살리자는 이야기가 나올 무렵 문화연대에서 컨설팅을 진행했다. 당시 원도심에 터를 잡고 있던 사람들을 하나씩 알게 되었고, 그들과 함께하는 일도 많았다. 또 지역에서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2005년에 진행한 인문학강좌에도 담론에 목말랐던 많은 사람이 찾았다. 유성구 궁동에 있던 ‘부드러운 직선’이라는 곳에서 유료로 진행했는데도 늘 꽉꽉 찼다. 이후 대흥동으로 사무실을 옮겨 진행한 ‘원도심 바로알기’ 프로그램이나 ‘현장과 작업’등도 큰 호응을 받았다. 지금은 유사한 프로그램을 여기저기서 진행한다. 이처럼 정책을 제안하거나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것도 성과라고 본다.

  

  

이용원 문화연대가 많은 일을 시도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문화연대라는 단체가 운동성을 가진 시민단체로서의 위상을 갖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문화예술 관련 시민단체로서 현재 위상에 관한 평가는 어떻게 내리고 있는가.

  

  

임기대 먼저 진짜 운동이 무엇인가에 관해 생각해봐야 한다. 무조건 무엇인가를 반대하는 게 시민운동인가? 물론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해야 한다. 잘못된 것에 관한 입장표명 또한 분명히 해야 한다. 세월호나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에 관한 사안과 같은 일들 말이다. 하지만 80년대 운동의 방식을 21세기를 사는 지금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특히 문화라는 분야에서는 더 그렇다. 문화는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 요즘은 운동도 예전처럼 심각하고 엄중하게 하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문화연대도 시민단체이지만, 문화를 테마로 뭔가를 바꾸려는 단체이기 때문에 다른 여러 단체가 하는 운동과는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물론 재미가 최고의 가치는 아니다. 하지만 재미있어야 깊은 고민까지 끌고 들어갈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다. 회원과 관련해서도 여러 단체에 중복 가입하는 회원보다는 순수하게 문화연대를 지지하는 회원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회원이 많지 않아도 새롭게 발굴한 회원을 중심으로 단체를 구성했다는 것도 자부심이다. 물론, 의미 있는 많은 사업을 전개하고 필요한 담론에 불을 지피기도 하였지만, 변화와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용원 젊은 층과 소통, 그들과의 활동이 미비하다는 평가도 있다. 새로운 측면도 어떻게 보면 젊은 층의 참여가 활발할 때 이루어지는 것 같은데, 문화연대 자체가 내부적으로 침체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노화된 느낌이다.

  

  

임기대 사회환경과 대전 문화의 지형이 변화한 것, 또 하나는 문화연대 내부의 문제가 있다. 사회환경변화는 아까도 말했듯이 운동성이라는 시민단체의 성격이다. 요즘 젊은이들과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진보 성향인 젊은이들도 문화연대 내부에서 진행하는 일을 보며 힘겨워하는 것을 보아왔다. 또 하나는 대전문화재단이라는 단체가 생기면서 문화활동가로 일하고자 하는 이들이 문화재단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거기에서 자연스럽게 문화연대 내부의 문제가 발생한다. 젊은 친구들이 문화연대를 매력적으로 느끼지 못하니까 새로운 얼굴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문화연대 인적 쇄신을 포함한 강력한 내부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이용원 문화를 큰 범주로 놓고 보았을 때, 젊은이들이 문화활동가에 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진다. 하지만 시도를 했다가 접점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년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 청년들을 지역이 어떻게 끌어안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임기대 그건 당신과 나를 비롯한 기성세대의 잘못이다. 기존의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진정으로 끌어안으려고 했는지 곰곰이 고민해야 한다. 젊은 세대를 이용하려고만 했지. 그들을 진심으로 끌어안았는지 생각해 봐라. 젊은이들에게 헌신만 요구했지, 기성세대가 희생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젊은 세대만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젊은이들과 기성세대를 보았을 때 기득권이 누구인가. 기성세대 아닌가. 기성세대가 자기중심적인 특권을 내려놓고 젊은 세대를 끌어안아야 한다.

  

  

이용원 문화연대 창립선언문을 살피면, 핵심적으로 지적했던 것이 도시 규모와 비교해 문화생산과 향수가 빈약하다는 것이었다. 지금 대전은 어떤 것 같나.

  

  

임기대 대흥동만 두고 보면, 늘어난 것 같긴 하다. 확산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대전이라는 도시의 문화의 격과 수준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문화 정책을 이야기할 때 전체적인 로드맵이 없다. 원도심에 수많은 기관이 생겼지만, 그것을 하나로 이어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봐라. 관사촌이나 도청, 테미예술창작촌은 멀게 느껴진다. 파편적으로 존재한다. 시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동선을 계획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동선을 만들어 줘야 한다. 우리는 그 동선이 다 끊긴다. 문화예술 정책에서 분명한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용원 대전문화재단은 현재 대전 문화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다. 문화연대 역시 대전문화재단 출범에 힘을 실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문화재단을 평가한다면 어떠한가?

  

  

임기대 처음 생각했던 문화재단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것 같진 않다. 문화재단은 창의적인 활동을 해야 하는 단체다. 가장 큰 문제가 시 행정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인데, 자생적인 구조로 재정수립을 하기가 힘든 점이다. 이것은 재단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정책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과 같은 모습이면 시에서 해야 하는 일을 문화재단이 대신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예술과 과학의 융·복합 같은 것은 좋은 취지라고 생각한다. 다른 곳에서 시도하지 않은 것을 시도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시민과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존재처럼 느낀다. 시민이 과연 아티언스라는 낱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다. 나 역시 융·복합을 공부한 사람이지만, 어렵게 느껴진다. 크게 보면 아티언스 축제 같은 것이 더 대중화되어서 거기에서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재단에서 시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함께 하기 위해 좀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이용원 지난 10년을 달려온 문화연대는 앞으로 10년, 대전 문화예술계와 문화연대가 어떤 모습을 그렸으면 좋겠는가.

  

  

임기대 시민이 재미있게 놀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공연장 같은 시설도 중요하지만, 일상에서 계속 그런 것을 느껴야 한다. 예를 들자면 도서관 같은 기관이다. 도서관은 구마다 대형 도서관 하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일상 영역에서 마주칠 만한 곳에 작은 도서관이 여럿이어야 한다. 동네 산책을 하다가 들어가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도서관이 더 많이 생겨야 한다. 큰 조형물 하나가 거리에 있다고 우리 문화의 격이 높아지는 게 아니다. 재미있는 곳이 계속 생기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만한 단체가 함께 성장할 때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문화영역에는 끝까지 문화권력을 감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시민단체가 있어야 한다. 만약 이런 단체가 없다면 문화예술은 행정권력과 자본권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제 10년이다. 우리 문화연대도 앞으로 10년은 그런 역할에 더 집중할 것으로 여긴다.

  

  

이용원 9월 26일 창립 10주년 후원회를 연다. 지금까지 후원전시회를 한 번 열었을 뿐 후원의 밤은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

  

  

임기대 후원회를 여는 것이 부족한 재정을 확충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지나온 10년 문화연대의 흐름을 정리하고 미래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측면이 강하다. 문화연대에게 이번 10주년 후원회는 하나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지난 10년을 평가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하나의 계기다. 이 중요한 시점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서 문화연대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대담 이용원 정리 이수연 사진 박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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