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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89호] 2014 대전 오픈랩 <아티언스 캠프>
초등학교 다닐 때 일 년에 한 번 수업 대신 상상화나 글짓기, 과학상자 조립, 물 로켓 만들기, 고무 동력 비행기 만들기 중 하나를 선택해 만들고 선생님께 확인받으면 곧장 하교할 수 있었다. 4월 21일 ‘과학의 날’ 덕분이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상상화를 그렸다. 가장 쉽고 빠르게 마무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6년 내내 똑같은 그림만 그렸다. 그림 속에는 항상 로켓이 등장했고, 도화지 모서리 양 끝에는 지구와 알 수 없는 행성 하나가 자리했다. 바탕은 늘 짙은 감색으로 칠했다. 초등학생이 상상할 수 있는 딱 그 정도로 그림을 그렸다. 사실 상상화 하면 떠오르는 게 우주뿐이었으니 그림은 당연히 똑같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아이가 우주를 떠올릴 것이다.
아티언스 캠프에 모인 14~19세 아이들은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과는 조금 다른 상상을 펼쳤다. 바로 현장에서 상상하기다. 2014년 대전의 모습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풀어냈다. 2014년 현재 대전에 흐르는 이야기를 과학과 예술 그리고 상상력이 더해진 새로운 관점과 방식으로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대전역, 소제동, 은행동, 갑천 등 현장을 직접 보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그렇게 얻어낸 결과를 토대로 무엇을 만들 것인지, 왜 만들어야 하는지 스스로 이해했다. 외국 작가와 엔지니어는 아이들의 상상력이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여러 자료를 찾아 다시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부족한 부분은 함께 보충해 나갔다. 영어로 하는 의사소통이 어려울 법도 하지만 아이들은 끊임없이 이야기 했다. 자신의 의견을 혹은 궁금한 점을 말하며 자신들의 상상력을 이야기로, 작품으로 만들어나갔다.
캠프는 대전의 생태(ecology), 오염(pollu tion), 의사소통(communication), 의료(medicine), 도시구조(city structure) 등 다섯 분야로 나눠 진행했다.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자유롭게 선택해 캠프에 참가했다.
생태: Air Halo가 필요해
Air halo 설계도면
“현장 조사를 하기 전에 상상한 2050년 대전은 암울했어요. 특히 대기 오염이 심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팀이 만드는 Air Halo는 공기가 심하게 오염되거나, 매연이 발생할 때 또 폭발이 일어나면 둥근 튜브관 속에 들어있는 나뭇잎이 빨간색으로 변해요. 보통은 파란색 나뭇잎이고요. 색이 변하면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야 해요. 이야기 속에서 Air Halo는 2050년 대전에서 살기 위해 꼭 필요한 필수품이에요.” (임장섭 매봉중 1)
아이들이 그린 그림 속 Air Halo는 둥근 튜브관 속에 특수 나뭇잎이 들어있다. 어깨 받침 위에 튜브관 양 끝을 연결해 어깨 위로 착용하면 머리가 튜브관 속으로 들어가는 모양새다. 아이들은 직접 고안한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그리고, 또 포토샵을 이용해 디자인하며 모든 과정에 함께한다.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 옆으로 알렉스(Alex) 작가와 안준선 엔지니어가 작품 제작에 관해 이야기 한다.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하며 Air Halo 모양을 고안했어요. 색이 변하는 나뭇잎이 지금 존재하지는 않죠. 하지만 최대한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해 파란색과 빨간색 가짜 나뭇잎을 제작해 튜브관 속에 넣을 거예요. 양쪽에 스위치를 연결해 스위치를 누르면 빨간색, 파란색 불이 들어오게 할 생각이에요.” (알렉스(Alex) 작가)
의료: X-mo로 치료하세요
심리적 스트레스를 헬멧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솜냐(Soymya) 작가와 아이들이 만든 이야기에는 왕따를 당하는 한 학생이 등장한다. 왕따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는 급기야 선생님을 괴물로 착각하게 되는데, 병원에서 처방해 준 X-mo로 심리적 불안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다시 정상적 생활을 하게 된다.
“X-mo는 헬멧처럼 생긴 의료 기기예요. X-mo를 쓰면 자동으로 그 사람의 심리 상태, 스트레스 정도를 파악해요. 그리고 병원 컴퓨터로 그 정보를 보내 바로바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조수민 신계중 3)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던 솜냐(Soymya) 작가는 작품으로 만들어질 X-mo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엑스모 시뮬레이션
“사실 이야기 속 X-mo를 그대로 구현하기는 힘들죠. 대신 LED 전선을 이용해 불빛이 들어오게 하고, 어깨와 목 부분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장치로 진동기를 설치할 생각이에요. 3D 프린트를 이용해 머리와 어깨, 목 부분을 따로 만들어 연결하면 헬멧 모양이 될 거예요. 머리와 어깨 부분에는 예술적 디자인을 가미해 좀 예쁘게 만들어 볼까 해요.” (솜냐(Soymya) 작가)
도시구조:
에너지를 만드는 EG(Energy Generate) Thunderflx
회의하는 모습
EG(Energy Generate) Thunderflx
“EG Thunderflx를 신고 걸으면 에너지를 만들 수 있어요. 우리가 만든 이야기 속에서는 이 신발로 만든 에너지를 실제로 사용할 수도 있고, 화폐로 교환도 가능해요. 갑천으로 현장 조사를 갔는데 파워워킹 하는 아줌마들이 정말 많았어요. 저 정도 힘으로 걸으면 에너지도 만들 수 있겠다 싶었죠. 그렇게 이 신발을 상상하게 됐어요.” (이지영 성덕중 2)
‘석유가 고갈된다면?’ 상상하기 힘들지만, 곧 현실로 맞닥뜨릴 일이다. 지금은 태양광이나 풍력, 수소 등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대체 에너지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지만, 아이들은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직접 자가 발전하는 방법을 상상했다. 2050년, 대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문제로 떠오를 에너지는 아이들 말처럼 화폐로 사용할 수도 있고, 또는 더 높은 가치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신발 깔창 밑에 발전기를 설치할 거예요. 걸으면서 발전기에 압력이 가해지면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거죠. 실제로 에너지를 만들지는 못해요. 대신 신발에 불이 들어올 거예요. 초록 불은 에너지가 만들어진 상태이고, 빨간불은 그 반대죠. 신발 전체에 골고루 압력이 가해지도록 신발 바닥을 그물 모양으로 만들 생각이에요.” (피페(Pipe) 작가)
의사소통: 나만의 매력을 담아내는 옷
옷 시뮬레이션
대전 지하상가에 들어서면 수만가지 색과 모양의 옷이 가득하다. 대부분 대량생산 된 옷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매력을 담아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원하는 옷을 모두 사기에는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은 여중생과 작가가 이런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옷을 상상했다.
“한복을 모티브로 옷을 만들었어요. 옷은 전부 분리가 가능해요. 짧은 소매를 긴 소매로 만들 수도 있고 긴 치마를 짧게 만들 수도 있어요. 굳이 여러 종류 옷을 살 필요가 없죠. 그 위에 다양하게 프린트한 실리콘 패치를 덧씌우고 특수 안경을 쓰면 옷 위로 글씨나 그림이 나타나요.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인식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에요. 마커(Mar -ker)로 내가 원하는 모양이나 글귀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요. 다양하게 프린트한 패치를 옷 어디든 부착할 수 있어 나만의 개성도 담고, 경제적으로 효과적인 옷이 되는 거죠.” (헬렌(Helen) 작가)
어떤 옷을 입어도 예쁘지 않던 이야기 속 여주인공은 자신의 개성과 매력을 잘 표현한 이 옷을 입고 k-pop스타 최종 우승자가 된다. 함께 이야기를 만든 아이들은 2050년에 정말 이 옷을 만들 수 있다면 꼭 입을 거라고 말한다.
“지금은 이미 만들어진 옷을 사는 거지만 이 옷은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잖아요. 돈도 적게 들고요. 꼭 사 입을 거예요.” (추수빈 중리중 3)
오염: 공기를 정화하는 마스크
“부자일수록 마스크 장식이 화려하고 크기도 커요. 저희 나름대로 빈부격차에 대한 이야기도 넣은 거죠. 2050년 대전은 이 마스크 없이 숨 쉴 수가 없어요. 대기 오염이 너무 심각하거든요. 마스크에 공기 정화 장치가 달려있어 숨 쉴 때마다 저절로 공기가 정화돼요. 우리가 만든 이야기는 어떤 여자아이가 잃어버린 마스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에요. 담배처럼 생긴 정화 파이프를 사기도 하고 수염도 길러보지만 모두 별 효과가 없죠. 결국엔 마스크를 다시 찾게 돼요.” (홍민지 한밭고 1)
마스크는 얼굴 절반을 가린다. 정말로 사람들은 이 불편한 마스크를 쓰고 2050년 대전 거리를 돌아다닐까. 그렇다면 미래 미(美)의 기준도 함께 변하지 않을까. 잠시 상상에 빠졌다.
“정말로 과학적 요소를 집어넣어 마스크에 공기 정화 기능을 부착할 수 있죠. 하지만 그렇게 만들기엔 시간이 부족해요. 대신 마스크 옆으로 비눗방울이 뿜어져 나오는 기능을 넣었어요. 공기 정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죠. 마스크는 전체적으로 철제 재료를 이용해 만들 거예요.” (이승연 작가)
(왼쪽부터) 마스크 시뮬레이션, 회의 하는 모습
아이들과 함께 만든 작품은 8월 26일부터 9월 4일까지 한국표준과학연구소와 11월 10일부터 12월 19일까지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 대학교에서 두 차례 전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