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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89호] '이곳'과 '그곳'의 이야기
조용한 동네가 잠깐 소란스럽다. 중구 선화동 창작공간 이유에 손님이 북적인다. 공간을 들여다보며 이것저것 질문한다. 예술이라는 공통분모가 많은 이야기를 서슴지 않고 끄집어내게 한다. 이날 창작공간 이유에 모인 사람은 열네 명이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작가 여섯과 서울 문래동 대안공간 정다방 프로젝트(이하 정다방)에서 온 손님이 이곳에서 만났다. 서울에서 온 손님은 박무림 정다방 대표와 이동민 코디네이터, 신희원, 서유진, 문해주, 노정연, 최은숙, 정운 작가다. 창작공간 이유에서 이들을 맞이한 이들은 이유있는 공간의 이길희, 이상규, 권재한 작가와 부부 작가인 이동훈, 최윤희 작가, 대전창작센터에서 레지던시 중인 권영성 작가다.
8월 18일부터 20일까지 정다방의 예술인학습공동체가 대전을 방문했다. 예술인학습공동체는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지원하며, 예술창작의 구심점이 될 소규모 예술인 공동체 조직의 활성화를 돕는다. 정다방에서 진행하는 예술인학습공동체의 큰 주제는 “그곳에 가면”이다. 지난 5월부터 시작한 모임은 11월까지 매월 두 번의 학습모임과 네 번의 워크숍으로 짜여있다. 워크숍은 2박 3일 일정으로 서울 문래동, 대전, 제주, 김해까지 네 곳에서 일어나는 예술의 특징과 그곳만이 가진 장소적 특징 등을 연구한다. 대전 워크숍의 주제는 ‘예술과 테크놀로지’였다.
대전에 방문한 8월 18일, ‘예술과 과학’이라는 주제로 대전시립미술관 김준기 학예연구실장의 강의를 들었다. 19일은 창작공간 이유와 대전시립미술관 포럼에 참여하는 일정이었다.
“정다방을 운영하는 박무림입니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을 만나서 교류하고,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문래동도 특색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곳만의 색이 분명합니다. 작가들이 어디에 사느냐가 작업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네 명의 작가가 만든 창작공간 이유에서 작가들은 서로에게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주로 장소에 관한 이야기였다. 대전이라는 지역과 선화동이라는 장소에 관해 이상규 작가가 설명했다.
“선화동은 오래된 것과 새로 생겨나는 것이 공존하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남아 있는 것을 보며 영감을 얻기도 하고, 갑자기 사라지는 것도 깊이 들여다보게 하죠. 아무래도 지역에 열린 공간을 마련했기 때문에 이곳의 이야기와 역사에 더 관심을 두게 되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이곳에 사는 분들과 뭔가를 함께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 있습니다.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을 조금씩 변화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정다방이 자리한 문래동 역시 한국사회의 변화에 따라 많은 얼굴을 담아낸 동네다. 1930년대 동양방직, 종연방직 등 섬유공장이 들어서면서 개발되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이 사옥정이라 불렀으며 광복 후 1952년 문익점의 목화 전래와 물레 제작 사실과 연관하여 문래동으로 이름 붙였다. 70년대 들어 많은 철강소가 들어섰고, 철강산업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그것도 잠시, 90년대 이후 외환위기를 겪는다. 빈 공장이 늘고, 점점 사람이 줄었다. 2000년대 들어 예술가들이 자리 잡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문래동은 많은 언론의 소비대상이 되었다. 언론이 소비한 공간은 대중이 소비한다. 대중이 소비하기 시작하는 공간은 상권이 들어선다. 점점 상권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상업적 가치가 높아졌다. 많은 예술가가 ‘홍대’에서 그러한 법칙을 겪었다.
“아직 문래동이 임대료가 많이 오르진 않았지만, 분기점이 온 것 같습니다. 한 번 공간이 빌 때 기본적으로 1년 정도는 비어 있었는데, 이제는 나가면 바로 다른 점포가 들어오는 현상이 나타나니까요.”
19일 오후 7시부터는 대전시립미술관 일정이 이어졌다. 이날 대전시립미술관 세미나실에는 ‘과학예술포럼’이 열렸다. 대덕연구단지 과학자들과 예술가, 시민사회단체 등이 세미나실을 채웠다. 대전이라는 도시에서 과학과 예술을 어떻게 접목할 것인지에 관한 각 분야의 고민이 이어졌다. 대전은 대덕연구단지라는 지역의 특성 때문인지 과학과 예술이 함께 쓰이는 때가 많은 도시다. 정다방 역시 낯선 두 낱말이 함께 쓰이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대전 워크숍의 주제를 ‘예술과 테크놀로지’로 잡고, 함께 하는 포럼에 참여했다.
20일, 중구 대흥동 스페이스씨와 동구 소제동 방문을 끝으로 문래동에서 온 손님들은 서울로 떠났다. 창작공간 이유에서 손님을 맞이한 이길희 작가는 “그 지역에 가야 만날 수 있는 작가들을 대전에서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무래도 대전 원도심에서 일어나는 많은 활동이 부각이 돼서 이곳에 들르시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지역과 사람을 함께 만난다. 그곳의 장소성을 들여다보고 고민한다. 박무림 정다방 대표는 대전의 청년작가들이나 과학과 함께 하는 예술의 움직임 등을 지켜보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았다.
“젊은 작가는 얼마나 열심히 움직이느냐가 가장 중요하죠. 작가가 스스로 개인적인 역량을 키우고, 나아가서 그들이 자리한 공간도 조금씩 변할 수도 있고요. 함께 하는 작가들이 이것을 토대로 어떤 일을 만들어낼지도 기대하는 부분이에요. ”
대안공간 정다방 프로젝트
A.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도림로 475(문래동4가 7-1) B1
T. 02.2633.4711
이유있는 공간의 창작공간 이유
A. 대전 중구 선화서로 64(선화동 18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