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4호]계단을 오르면 닿는 고요한 책 공간

 
늦가을 비가 온다. 붉거나 노란 잎이 비를 맞고 떨어진다. 도서관 앞 계단에 단풍잎이 잔뜩 떨어져 있다. 비에 젖은 잎이 더욱 붉다. 전에는 붉은 벽돌로 된 계단이었고 군데군데 깨어져 있었는데 최근에 보수되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이렇게 아담한 도서관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노랑 상자와 스틸 느낌의 상자를 비대칭으로 포개 놓은 모양이다. 노랑 벽에는 동글동글한 구멍이 있는데 그곳에 작은 창이 달려 있다. <톰과 제리>에서 나오던 노란 치즈처럼 보이기도 한다. 주변에 잔뜩 우거진 들풀과도 잘 어우러진다. 도서관 입구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선다. 내부는 환하고 단정하다. 입구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왼쪽에 마련된 유아책 공간이다. 그림책 책장이 한쪽에 놓이고, 바닥에는 뽀로로 매트가 깔려 있다. 계단 두 개를 오르게 되어 있는 유아책 공간은 나무 난간이 곡선으로 둘러져 있어 아늑한 느낌을 준다. 넓은 서가 가운데는 아동책이, 도서관의 가장 안쪽에는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큰 책장이 자리했다. 창을 마주하고 놓인 책상은 어른들이 활용하기 좋아 보인다.
 
이곳은 자연과의 소통이 돋보이는 공간 구성을 보여 준다. 사각의 공간에 벽마다 창이 있어 숲이 잘 보인다. 나무와 덤불, 그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 새 소리가 이 공간의 고요에 윤기를 더해 준다. 나직한 새 소리는 집중력을 더 높여 주고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을 편안하게 만든다. 내가 즐겨 앉던 창이 마주 보이는 자리에 앉는다. 무궁화나무와 소나무, 상수리나무가 보인다. 이쪽의 나무들은 잎이 거의 다 떨어졌다. 누렇게 된 상수리 잎만 바람에 흔들린다. 고요한 공간에 책과 나만 있다. 백수 시절, 하루의 지루함, 어쩌지 못할 나른함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이곳으로 피신하곤 했었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나태함이 스르르 사라지고 텍스트에 집중하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책과 사색을 위한 공간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힘이 아닐까. 그 편안함은 이곳을 꾸미고 가꾼 이들의 세심함이 공간에 배여 있는 덕분이기도 하다. 2013년 6월 27일에 개관한 신성마을도서관은 금성근린공원에 자리해 있다. 유성구에서 이곳에 도서관 건물을 지으면서 신성동주민센터에 자리했던 작은 도서관이 이곳으로 옮겨 왔다. 평생학습원 소속이며 이곳에 상주해서 일하는 이들은 자원봉사자들이다. 모두 열여덟 명, 주민센터 시절부터 지금까지 10년을 이어 일하는 이도 많다. 잠시 후 몇몇 사람들이 들어와 교육실로 들어간다. 마을 성인 독서모임이라고 한다. 따뜻한 차 한 잔에 책 이야기, 사는 이야기가 닫힌 문 너머로 도란도란 들려온다. 자원봉사자가 타 준 믹스 커피가 달달하다. 책을 본다는 건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자연의 풍경은 글자가 고여 있는 페이지의 여백처럼 우리들의 마음에 빈 공간을 만들어 준다. 한 해가 지나가는 길목에서, 근처 도서관을 찾아 책과 함께 자신을 찬찬히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신성마을도서관
A. 대전 유성구 신성남로 27
T. 070.4200.6786
 
글 사진 이혜정(pyenjea@hanmail.net)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