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9호] 그림, 내 삶의 전부

꿈을 좇다

서른 중반이 넘어서야 겨우 꿈을 좇아 달리기 시작했다. 꿈을 꿀 수 없던 ‘그곳’에서 대한민국으로 건너 온 지 2년, 한남대학교 회화과에 재학 중인 오성철 씨를 만났다.

성철 씨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쉽게 말해 북한에서 대한민국으로 귀화한 새터민이다. 2012년 대한민국에 건너와 2년째 대전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림을 배우고 싶었던 그는 대전에 도착하자마자 한남대학교 회화과에 입학 원서를 제출했다. 합격통보를 받고 정식 입학을 하기도 전부터 학교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 대한민국에 왔다는 그는 방학도, 쉬는 날도 없이 시간이 날 때마다 학교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우스갯소리로 ‘내 종교는 그림이다.’라는 말을 해요. 그만큼 그림이 좋아요. 북에서 여기로 넘어오는데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그 3년을 그림만 생각하며 버텼으니, 그림이 저를 살린 거죠. 북에서 그림쟁이라 하면 남들보다 조금 편하게 사는 직업 정도로 생각해요. 자신의 가치와 생각을 표현하기보다는 체제선전, 우상화를 위한 그림을 주로 그리니까요. 군 생활 10년 동안 선전선동부에서 홍보 포스터 그리는 병사로 있었어요. 간부들 따라다니며 풍경화 그리고 포스터 그리고 그랬죠. 근데 그게 무슨 그림이고 예술이에요. 그래서 여기로 온 거예요.”       

군 제대 후 강 건너 중국에 물건을 팔러 다니며 겨우 생계를 이어나갔다. 먹고 살기도 바쁘던 그때 문득 꿈이 뭘까 생각했다. 일 때문에 드나들던 중국의 자유로운 모습에 큰 영향을 받기도 했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나도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며 살고 싶다는 생각에 중국을 거쳐 대한민국에 왔다.

  

  

그림 그리고 나

“우리가 사는 삶이 형이상학적이잖아요. 실체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요. 그런데 그런 형이상학적인 삶과 가치를 표현할 수 있는 게 그림이라고 생각해요. 그림은 사람이 직접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잖아요. 또 그림을 보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어요. 삶을 확장하는 거죠. 그래서 그림을, 예술을 하고 싶었어요. 먹고 사는 일이야 웬만큼 하면 되죠. 평생 그림 그리며 살고 싶어요.”

한남대학교에 다니며 북에서는 볼 수 없던 다양한 그림 형식과 기법을 접하게 됐다. 새로움은 그를 휘몰아쳤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 또 자신이 직접 본 것을 닥치는 대로 그렸다. 자신만의 개성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도 그를 압박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남에게 보이는 모습 말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마음을 차분히 하고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있다.

“북에서 본 그림이라고는 미화된 리얼리즘이 전부예요. 처음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신기하고 새로운 것들이 한 번에 쏟아지니까 정신을 못 차렸어요. 그래서 무작정 따라 그렸죠. 지금은 고전주의에 관심을 두고 내 이야기와 잘 연결해 보려고 고민하고 있어요.”

그림은 그림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고전주의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말로 그림 그리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자신은 그림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북에서는 쌀 한 가마니 이고 가면 겨우 다섯 가지 기본색 포스터물감이랑 바꿔줘요. 그때 색을 섞어 쓰는 버릇이 지금까지 남아있어요. 제 그림을 보면 전체적으로 색감이 탁해요. 지금은 뭐 천국이에요. 돈만 있으면 뭐든 구할 수 있잖아요. 그림으로 끝까지 가보려고요. 이것저것 안 해본 것, 못해 본 것 없지만 결국은 그림인 것 같아요.”

  

  

얼마 전 오랫동안 보지 못한 누이와 연락이 닿았다. 장가는 갔느냐고, 아픈 곳은 없느냐고 누이는 묻는다. 하나뿐인 동생 소식이 얼마나 간절했을까. 내 걱정은 말고 건강하게 살아만 있어달라는 누이의 마지막 당부가 자꾸 성철 씨 귓가에 맴돈다.

  

  

“제가 잘 되는 게 누이에게도 저에게도 좋은 일인 것 같아요. 그것 말고 뭐가 있겠어요. 더 열심히 그림 그려야죠.”


글 사진 박한슬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