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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0호]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곳
- 리차드 브라우티건
지난 5월 15일 문을 연 송어낚시 갤러리는 리차드 브라우티건의 소설 <미국의 송어낚시>에서 그 이름을 따 왔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이곳도 ‘모든 것이 될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아직 어떠한 성격으로 규정하지 않았고 유수진, 이흥석 대표는 그저 이곳이 ‘자유로운 공간’이 됐으면 하고 바란다.
2006년, 대흥동에 문을 연 카페 비돌은 주택을 개조한 그만의 매력으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전시, 공연, 영화 상영 등 다양한 일이 비돌에서 이야기되고 벌어졌다. 이상한 건, 단 한 번도 비돌의 두 대표가 어떠한 것을 해 보자며 먼저 제안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비돌을 찾는 사람들이 비돌에서 이런 일들을 하고 싶다며 먼저 손을 건넸다.
“우리에게 먼저 손 내밀어 준 게 너무 고마웠어요. 그렇게 비돌에서 전시도 공연도 했는데 카페에서 한다는 것에 장단점이 모두 있었어요. 비돌 오픈하고 끝날 때까지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비돌에 소품과 책이 많기 때문에 작품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게 단점이었어요. 그런 것들이 미안하기도 했죠.”
카페에서 하는 전시의 매력도 있지만, 유수진 대표는 조금 더 몰입도 있는 공간에서 전시를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흥석 대표도 비돌에 갤러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러다가 직접 실행에 옮겨야겠다고 마음을 정한 게 작년 겨울이다.
“20년 전에 설탕수박이라는 가게를 처음 시작할 때 1층에 미용실이 있었어요. 미용실 아줌마가 그만한다고 해서 자리를 얻어 갤러리를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때 갤러리를 했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어요. 시간을 병풍처럼 접어서 오므릴 수 있다면 갤러리를 했겠다 싶었어요. 리차드 브라우티건의 두 번째 소설 <워터멜론 슈가에서>에서 ‘설탕수박’이란 이름을 따 왔었는데, 20년 전으로 돌아가는 거니까 이번에는 첫 번째 소설 <미국의 송어낚시>에서 이름을 가져와야겠다 싶었어요.”
소설 <미국의 송어낚시>는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이흥석 대표는, 우리나라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 할 만한 무언가가 없었고 아직 실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갤러리 이름으로도 ‘송어낚시’가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여러 실험적인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제 생각대로 될 거란 생각은 안 해요. 그냥 자유로운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느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미술이 아닌 음악, 영화 등 다른 예술 영역도 펼쳐지기를 바라요.”
송어낚시 갤러리의 오픈 전시로 지난 5월 31일까지 한현아, 고현종 작가의 <Asphalt pool study>를 진행했다. 오픈 전시인 만큼 오랫동안 작업한 작가의 전시로 진행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흥석 대표는 두 작가의 작업이 송어낚시 갤러리와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두 작가는 회화와 영상 작업으로 송어낚시 갤러리를 채웠으며 오픈식에서는 인디미뇨뺀드와 함께 노래도 부르며 흥겨운 시간을 만들었다.
송어낚시 갤러리는 앞으로 다양한 전시를 계획한다. 주로 기획 전시가 이루어지지만 대관도 할 예정이다. 운영에 정해진 틀은 없다. 그저, 재미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유수진 대표는 송어낚시 갤러리가 ‘시원한 바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딱딱한 갤러리가 아니라 재밌고 즐겁게 놀러 올 수 있는 갤러리가 됐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조금 더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 만든 거예요. 큰 욕심은 없어요. 살아가는 데 조금 더 시원한 바람이 될 수 있는 장소가 되면 좋겠어요. 재미있는 소소한 바람이요.”
글 사진 성수진
송어낚시 갤러리 www.troutfishinggallery.com
대전 중구 대흥로 121번길 30-5 / 042.252.7001 / 14:00~2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