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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0호] 이제 한번 나가서 놀자
2015년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이 개관하고 10년을 채웠다. 10년을 축하하고, 다음 10년을 생각하면서 도서관 식구들이 낸 아이디어가 버스정류장도서관이었다. 도서관 문밖에서도 책 빌리는 곳이 생기면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책을 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10년이 되니까 우리도 안에서 우리끼리 꽁당거리지 말고 지역에 나가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죠. 석교동에 작은 사무실이 많이 있는데, 온종일 사무실 지키는 사람들한테 버스정류장에 도서관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어요. 그때 막 다른 도시에서 전화부스에 작은 도서관을 넣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였어요. 마침 대전충남녹색연합에서는 버스정류장에 태양전지 설치하는 사업을 하면서 같이 대전시 주민제안사업에 공모하자는 제안이 있었어요. 근데 떨어졌죠. 그리고 올해 연락이 온 거예요. 대전시에서 버스정류장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작년에 주민제안사업에 냈던 버스정류장도서관을 여전히 해 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어요. 예산은 딱 버스정류장 만드는 것밖에 없다는 말도 덧붙였죠. 도서관 식구들과 이야기하고 연락드리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어요. 대화를 나누다 결국 ‘하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했죠.”
석교마을어린이도서관 강도영 관장의 전화를 받은 대전시 도로정책과에서는 우스갯소리로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했다. 설마 하겠다는 말을 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예산도 없고, 고행길일 게 뻔한 사업을 마을 사람들이 덥석 하겠다고 하니 나온 이야기였다. 올해 2월 말부터 도로정책과와 대전충남녹색연합, 석교동 주민들이 만나서 팀을 꾸렸다. 녹색버스정류장 만드는 과정을 찬찬히 밟았다. 무작정 버스정류장에 도서관 하나 세워 놓고 보라고 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녹색버스정류장은 세우는 게 아니라 세우고 난 이후가 문제인 시설이었다. 그러려면 주민 모두가 ‘내 것’, ‘우리 것’이라는 동의가 있어야 했다.
“어디에 세우면 좋을지부터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면 좋을지까지, 모두 함께 결정해야 했어요. 만들어 놓은 다음에 ‘너희 거야!’ 이렇게 하면 주민은 ‘이게 뭔데? 달라고 했어?’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교류가 있어야 유지가 되죠. 앞으로 버스정류장 도서관을 관리하고 유지할 사람은 주민이에요. 장소 투표부터, 아이들 그림대회까지, 주민이 선택하고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경험하게 하는 것, 그게 목표였어요.”
일단 후보지를 선정해야 했다. 후보지는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 활동가들이 주민과 함께 최대한 많이 신경 쓸 수 있는 버스정류장이어야 했다. 안타깝지만 두 곳으로 좁힐 수밖에 없었다. 1번, 석교동주민센터 정류장과 2번, 석교동치안센터 정류장, 두 후보지는 각 장단점이 있다. 석교동주민센터 정류장은 2번 후보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정류장이다. 주변에 상가도 많고, 급행2번 버스가 지나 주민이 많이 이용하는 정류장이기도 하다. 다만 좀 좁은 것이 단점이다. 그에 비해 석교동치안센터 정류장은 넓다. 배차 시간이 길어서 기다리면서 책을 읽기에 좋은 한적한 분위기다. 가까이에 석교초등학교가 있는 것도 장점이다. 다만 석교동주민센터 정류장과 비교하면 이용하는 사람이 적다는 단점이 있었다. 4월 22일부터 28일까지 투표를 진행했다. 1,673표 중 1,158표를 받은 석교동주민센터 버스 정류장이 당선되었다.
5월 5일에는 석교초등학교에서 ‘내가 상상하는 버스정류장도서관’이라는 주제로 그림그리기대회가 열렸다. 아이들은 이 도서관에 버스카드충전기가 설치되었으면 했고, 화장실이 있었으면 했다. 버스 안에도 도서관이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도 있었다. 이날 아이들은 우리 동네 버스정류장에 세울 도서관을 상상해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제 마을 사람들 인터뷰하고, 마을에 어떤 정류장 있으면 좋은지 이야기 듣는 작업을 할 거예요.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마을 사람 하나하나 만나러 다닐 수 있겠어요. 설문 조사도 하고, 버스정류장에 가만히 서서 관찰도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전문가들과 함께 마을도서관을 디자인해야죠. 마을 사람들이 ‘이런 시설 만드는 데 이렇게까지 하는구나, 이런 과정이 있구나.’라고 알면 좋겠어요. 고되고 생소한 일이지만 이것 역시 우리 마을을 만드는 데 필요한 훈련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만들어질 도서관은 양심 도서관으로 운영할 것이다. 누구나 책을 읽고 누구나 빌려 갈 수 있는 곳, 그리고 누구나 자신이 읽지 않는 책을 가져다 놓을 수 있는 곳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주민 모두가 자기 서재처럼 생각하면 좋겠다는 마음과 언젠가는 책 한 권도 분실하지 않고 운영될 거라는 주민을 향한 믿음 때문이다.
석교마을어린이도서관은 마을에서 크고 작은 활동을 계속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다. 우리 마을을 위해서, 결국에는 날 위해서 좋은 일이라서 했다. 그러다 보니 석교마을어린이도서관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래서 도서관 후보지를 결정하는 투표용지가 붙었을 때 사람들이 스티커를 들고 투표하고 관심 가질 수 있었다. “마을에서 함께 살면 어떨까요. 마을에서 사는 것 재미나세요? 이런 거 같이하면 어떨까요?” 석교동에는 계속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 있었다.
“프로젝트 함께하는 ‘살림’ 협동조합 이무열 대표님이 이야기했던 게 다른 마을 같으면 투표하고 결정하는 과정까지가 1년이 걸린다는 거예요. 투표지를 선정하는 것부터 어떤 시설을 만들지 결정하는 것까지 논의된 게 하나도 없으니까 더 오래 걸린다는 말이었겠죠. 석교동이어서 빨리 진행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관에서도 이런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하니까 믿고 기다려 주셨어요. 그것 역시 고마운 일이었죠. 그런데 분명한 건 다른 마을에도 시설이 들어갈 때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마을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와닿는 공간이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