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9호] 나무와 빛을 만나는 여정

5월을 한 주 남짓 남겨 둔 4월, 묵지근한 열기를 품은 바람이 불어온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도, 자전거를 탈 때도 그 바람이 내내 따라다닌다. 열기와 서늘함이 뒤섞여 더 거칠게 느껴지는 바람이다. 정부청사역에서 내려 618번 버스로 갈아탄 다음 한밭수목원 맞은편에 내리니 메타세쿼이아 가로수의 짙푸른 잎사귀들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한밭수목원에서 대전시민천문대까지 타슈를 타고 둘러보는 코스이다. 대전을 즐기는 데 ‘타슈’가 빠질 수 없다. 주말에 종종 자전거로 타고 다니던 길이라 그리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시민천문대 관측 시간에 맞추어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그래서 출발 지점인 한밭수목원은 전체를 들르기보다 가장 좋아하는 서원의 습지원만 가 보기로 한다. 

습지원 연못 한가운데 놓인 나무가 우주목처럼 우뚝하다. 수면 위로 살짝 올라온 둔덕에 버드나무과로 보이는 나무 한 그루가 파랗게 잎을 틔우고 서 있다. 검은 수면에 나무의 모습이 그대로 비친다. 뿌리는 지구의 중심까지 뻗어 있고 가지는 우주까지 뻗은 신화 속 위그드라실처럼, 이 나무의 가지가 닿은 허공 어딘가에 별이 있고, 저 깊고 어두운 연못물 아래로 뻗은 뿌리가 지하 세계 어딘가에 닿아 있을 듯하다.

한밭수목원을 나와 대전엑스포시민광장에서 타슈를 대여한다. 휴대폰 소액결제로 간단히 자전거를 빌리고 탄동천으로 향한다. 대전의 매력은 자전거를 타기에 좋은 강변이 아기자기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초보자들도 너무 무리하지 않고 탈 수 있는 적당한 코스가 많이 있다. 자전거를 타고 시민광장에서 엑스포다리로 접어든다. 엑스포다리에서는 갑천이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인다. 다리 건너 왼쪽으로 돌면 천변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천변을 따라 대덕대교까지 달리다가 국립중앙과학관 쪽 방향으로 접어들면 탄동천이 나온다.

탄동천은 갑천으로 흘러드는 소규모 하천으로 주변에 우거진 수풀과 고적한 길이 매력적인 곳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하천 정비 중이라 강 한쪽은 죄다 파헤쳐져 본래의 모습을 잃었다. 그나마 오래된 벚나무와 느티나무가 늘어선 오솔길은 여전히 운치 있다. 작년 여름,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던 생각이 났다. 같은 길 위를 달리고 있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이토록 다르다는 게 신기했다.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자전거로 30분쯤 달리면 신성동이 나온다. 연구단지종합운동장을 지나서 나오는 삼거리에 타슈 정거장이 있다. 그곳에 타슈를 반납하고 대전시민천문대는 걸어서 간다. 종합운동장 맞은편 쪽에 천문대 푯말이 서 있다. 7시에 천체투영관 관람이 시작되는데, 이미 7시 2분이다. 시간이 늦으면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 별을 관측하는 주관측실은 7시 20분부터 관측이 시작된다. 그래서 보통 천체투영관을 30분 관람하고 난 뒤에 주관측실로 가서 별을 보는 게 일반적인 수순이다.(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운영을 하는데 홈페이지에서 시간표를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http://star.metro.daejeon.kr)  


모두들 천체투영관 관람 중인지 주관측실 앞은 인적이 없다. 어스름이 깔린 시간, 불도 켜지지 않은 복도에 혼자 앉아 기다린다. 이곳은 우주정거장인 듯 고요가 깊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 외관을 감싼 철제 빔들이 그런 느낌을 더한다. 새소리가 이곳이 지구별이라는 걸 알려 준다. 문득 우주의 미아가 된 거 같다. 자전거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달려왔을 뿐인데, 이곳은 다른 별처럼 낯설다. 잠시 후 복도에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밀려든다.


주관측실 원형 돔이 열린다. 열려진 천장을 향해 대형 천체망원경이 별을 따라 움직인다. 접안렌즈에 눈을 대니, 줄무늬가 선명한 동그란 목성이 보인다. 네 개의 위성도 목성 주위에서 반짝인다. 주관측실에서 나와 보조관측실로 간다. 보조관측실에는 여러 대의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다. 태양 다음으로 밝은 별이라는 시리우스를 관측한다. 쨍한, 한 점의 빛이 눈에 들어온다. 시원하다. 


밖으로 나오니 사방에 제법 어둠이 깔려 있다. 가로등 불빛이 환하다. 아주 긴 여행을 끝내고,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하늘에 별은 점점 밝아지고언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신성동에 불빛이 켜져 있다. 우리가 한 그루 나무라면 낮에서 밤으로, 지하에서 우주로 뿌리와 가지를 뻗는 존재가 아닐지. 그래서 나를 만나는 여행은 늘 그렇게 길다. 

                 

                 


글 사진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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