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9호] 힐링이 필요한 시간 갑천으로 가자

갑천 라이딩과 유유자적 족욕 타임

스무 살,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삶을 펼친다는 막연한 설렘을 안고 대전에 왔다. 대전역에 내려 유성으로 버스를 타고 오면서 인상적이었던 대전의 풍경은 바로 시내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하천이었다. 대전은 대전천, 유등천, 갑천 세 하천이 도시의 곳곳을 다니며 시민과 만난다. 그리고 시민은 그 하천길을 따라 여가를 즐긴다. 참 낯선 풍경이었다. 내 고향 대구에도 ‘신천’과 ‘금호강’이라는 강이 흐르고는 있지만 나의 생활권과는 거리가 먼, 그저 다른 동네 이야기였을 뿐이다. 

                 
대학생활이 시작되고 대전에서의 삶이 쌓여 갈 때, 추억의 배경에서 갑천은 늘 빠지지 않는 장소였다. 한밤의 산책도, 두근두근한 첫 데이트도,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자전거를 타고 엑스포다리의 야경을 바라보기도 하고, 작심삼일 다이어트 대작전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다.

도시 안의 생태공간, 월평공원

갑천이 우리동네 산책로의 모습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시민들의 생활공간이 아닌 도시에서 벗어난 자연의 공간, 도솔산과 더불어 자리한 생태습지인 월평공원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갑천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대전도시철도 1호선 월평역에서 2번 출구로 나와 조금 걷다보면 ‘타슈’정류장이 보인다. 타슈 자전거를 빌려 갑천대교 옆 육교를 지나 천변 자전거 도로를 통해 곧장 남쪽으로 폐달을 밟다 보면 점점 도시의 풍경은 사라지고, 물의 향기가 짙어지는 곳, 월평공원의 입구가 나온다. 월평공원은 자전거 출입이 금지돼 입구에 있는 자전거 보관소에 잠시 세워 두고 걸어 들어갔다. 월평공원으로 들어가자마자 마치 ‘이웃집 토토로’에 등장하는 시골마을 뒤편 숲 속이 연상됐다. 그리고 녹색의 풍경 뒤로는 모델하우스의 포스터처럼 도안지구의 아파트들이 보인다. 아파트와 생태습지가 공존하고 있는 묘하고 낯선 풍경의 이질감이 나쁘게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저 아파트의 모습이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면 어땠을까? 마치 월평공원이 아파트의 정원과 같은 모습으로 생기를 잃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월평공원은 도안갑천지구친수구역개발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아파트 단지와 호수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라고 한다. 인간은 왜 외부의 대상을 자신의 관리와 통제 하에 두려고 하는 것일까? 자연(自然)이라는 단어는 스스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말을 할 수 없는 자연을 대변해 주기 위해 언어라는 선물을 받았다는 말이 떠올랐다. 스스로 존재하려는 자연의 대변인이 아닌 관리자가 되겠다는 인간의 오만함이 소름 끼치게 다가왔다.

                             

                        

유흥의 거리에서 휴식의 거리로, 유성온천 족욕체험장

다시 월평공원의 입구로 나와 자전거를 타고 만년교를 지나 유성온천역 주변의 ‘타슈’ 정류장에 자전거를 반납하고 유성온천 족욕체험장으로 향했다. 유성온천이라고 통칭되는 유성구 봉명동 일대는 ‘온천’이라는 휴양지 느낌보다는 유흥가의 이미지가 훨씬 강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유흥가의 이미지를 가족과 함께하는 여가공간으로 전환시켜 준 것이 바로 2007년 조성된 ‘유성온천 족욕체험장’이다. 족욕체험장에는 부모님과 함께 나들이 나온 꼬마숙녀들, 군것질 거리를 함께 나눠먹으며 애정표현을 즐기는 젊은 커플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모여 담소를 나누는 동네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족욕을 즐기고 있었다. 

              

             

엄마의 저녁상, 촌돼지찌개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서 피곤한 다리를 온천에 담그고 살짝 졸았다 깼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흘러갔고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힐링의 마침표를 찍는 것은 엄마가 차려 주는 맛있는 밥상이다. 하지만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에게 엄마의 밥상은 어쩌다 한 번 있는 이벤트와 같다. 엄마의 밥상이 그리울 때 찾는 곳이 바로 엄마식당이다. 

유성구종합사회복지관에서 약 150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곳의 주력메뉴는 ‘촌돼지찌개’이다. 돼지고기 앞다리살에 감자, 애호박, 버섯, 두부 등을 넣고 고추장양념으로 끓여 낸 음식이다. 

처음 대전에 와서 촌돼지찌개를 접했을 때는 당황스러웠다. ‘고추장으로 찌개를 끓일 수 있단 말이야?’ 20년 동안 대구에 살면서 고추장으로 찌개를 끓인다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나만 못 먹어 봤나?’라는 생각에 부모님과 사촌형, 누나들, 고향친구들에게 고추장으로 끓인 찌개를 먹어 본 적이 있는지 물어봤지만 누구도 먹어 보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촌돼지찌개와 어색했던 첫 만남의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집에서 직접 촌돼지찌개를 끓이고 있다. 

               

              

힘이 들 땐 하늘을 봐

어릴 적 보았던 동화의 내용이다. 옛날에 부모님을 잃어버린 아이들을 거둬 키우던 맘씨 좋은 부부가 있었다. 그 부부는 아이들의 부모님을 찾아 주기 위해 아이의 이름을 풍선에 적어 지붕에 매달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땅을 보며 다녔기 때문에 누구도 지붕 위의 풍선을 보지 않았다. 부모님을 잃어버린 아이가 백 명이 되고, 풍선도 백 개가 되었을 때, 집이 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제야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부모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삶의 무게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막혀 있는 땅만을 바라보고 산다. 삶의 무게에 목이 무거울 땐 갑천으로 가자. 월평공원에서 시선을 멀리 던져보기도 하고, 유성온천 족욕체험장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자. 그럼 혹시라도 날아다니는 집을 발견할지도 모르니. 


글 사진 이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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