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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9호] 우리는 왜, 대전칼국수 축제를
공원에서 사흘간 축제가 열렸다. 서대전시민공원에서 열린 ‘대전칼국수축제’다. 지난 4월 22일부터 24일간 6만 명 정도가 다녀간 것으로 주최 측은 집계했다. 2013년에 제1회 축제를 열고 3년 만에 다시 연 제2회 대전칼국수축제는 중구 주최로 구비 1억 3천만 원을 들이고 대전중구문화원과 대전칼국수축제추진위원회가 주관이 되어 만든 축제다.
세 가지가 궁금해 사흘간 축제 현장에 종일 머물렀다. 먼저, 중구는 왜 대전의 대표 음식을 칼국수로 선정해 축제를 여는지. 사람들은 대전칼국수축제를 왜 찾는지. 대전칼국수축제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지. 축제 현장에서 많은 관람객을 만나 이야기 들었고 풀리지 않는 궁금증은 주최, 주관 단체와 전문가를 만나 확인했다.
대전칼국수축제는 ‘대전 대표 먹거리 축제’다. 축제장에서 받은 신문이 대전칼국수축제를 그렇게 안내한다. 신문은 대전이 왜 칼국수 도시인지 설명한다. 밭이 많던 시절, 밀을 많이 심게 되며 밀가루를 이용한 음식이 발달했다는 설, 6·25전쟁 이후 주둔한 미군부대에서 보유한 밀가루 일부가 외부로 반출되면서 칼국수의 밑천이 됐다는 설, 1960~1970년대 서해안 간척사업 노동자의 노임으로 밀가루가 지급됐고 그 밀가루를 돈으로 바꿔 주는 집산지가 대전에 형성되면서 칼국수가 발달했다는 설이 대전이 왜 칼국수 도시가 됐는지 뒷받침해 준다고 말이다.
또, ‘칼국수 도시 대전’에 관해서 대전칼국수축제는 주제전시관을 만들어 판넬과 영상 자료 등으로 설명한다. 그렇게 제2회 대전칼국수축제는 대전의 대표 음식이 왜 칼국수인지 근거를 찾는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 대전의 대표 음식으로 칼국수를 선정했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애초에 대표 음식에 관한 충분한 고민 없이, 제1회 축제를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기획했기 때문에 ‘대표 음식’ 축제의 당위성이 분명치 않다. 2013년 2월, 대전시가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자치구 공모사업을 했고 중구는 대전칼국수축제로 당선돼 9천5백만 원의 예산을 지원 받아 축제를 열었다. 중구에 칼국수 집이 많으니 축제로 사람이 모이면 원도심 활성화가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관람객을 ‘돈 쓰는 사람’으로 보는 간편한 심사다.
중구가 칼국수를 주제로 축제를 여는 것에 동의하더라도, 슬그머니 칼국수를 대전 대표 음식으로 만든 것에는 무리가 있다. 2009년, 대전시는 대전 대표 음식 브랜드화 품목으로 돌솥밥과 삼계탕을 선정했다. 당시, 칼국수와 두부두루치기는 특색음식으로 선정됐다. 그럼에도 중구가 대전 대표 음식을 칼국수라 말하고 이를 콘텐츠로 축제를 열었다.
시민이 대전의 대표 음식을 칼국수라고 여기며 축제를 열 만큼의 분위기가 형성되었는지 의문이다. 축제를 열기까지의 분위기를 만드는 과정, 혹은 대전의 대표 음식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하는 과정이 생략된 채 2013년에 제1회 그리고 올해 제2회 대전칼국수축제가 열렸다.
축제 기간, 서대전공원의 모습은 이렇다. 입구로 들어가면 오른편에 먼저 종합안내소와 응급의료소가 있다. 그 뒤로 길게 칼국수 푸드코트가 있었다. 열한 개 식당이 한 부스씩 차지했고 이곳에서 관람객은 칼국수를 사 먹을 수 있다. 입구에서 곧장 올라가면 판매 부스와 주제전시관이 있고 나머지 부스는 체험과 판매 부스로 이루어졌다. 칼국수 노래를 부르고 스토리 북을 만들어 보는 부스, 칼국수 반죽을 직접 밀어 면발을 만들어 보는 부스 등을 설치했고 푸드코트 맞은 편에는 무대를 만들어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공원 가운데에는 통밀과 밀가루가 깔린 풀을 설치해 아이들이 들어가 놀 수 있도록 했다.
먹거리 행사로는 하루에 한 번 푸드코트에서 무료시식을 했으며 무대에서는 부대행사로 칼국수 경연대회, 칼군무 경연대회, 칼국수 빨리먹기 대회, 칼국수 OX 퀴즈, 칼국수 골든벨 등을 진행했다.
축제 기간 내 만난 관객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왔는지, 재미는 있는지 물었다. 대전칼국수축제를 보러 거제도에서 왔다는 김태옥(70) 씨는 “대전은 유별나게 칼국수를 잘한다. 볼 건 없는데 칼국수 종류가 많아서 좋다.”라고 말했다. 용문동에서 온 황규태(70) 씨는 “사람 구경도 하고 칼국수도 먹고 괜찮은 것 같다.”라고 축제를 평가했다.
더운 날씨였지만, 푸드코트의 줄은 길었고 사람들은 한 시간씩을 기다려서 칼국수를 사 먹었다. 그리고 무대에서 벌이는 경품 행사를 비롯한 다소 빤하며 어느 축제에서라도 볼 수 있을 것 같은 프로그램도 빼놓지 않고 즐겼다.
야외에서 먹는 ‘칼국수 한 그릇’과 ‘무대 위 레크레이션’에도 사람들은 즐거움을 느꼈다. 축제란, ‘시민이 좋아하면 그만’인 것일지도 모르지만, 1억 3천만 원을 들여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면 사정이 다르다. 제2회 대전칼국수축제를 두고 한 시민은 “칼국수축제가 아니고 칼국수 야시장 같다.”라며 축제를 본 소감을 이야기했다. 그만큼 축제로서의 의미나 재미보다는 음식을 사 먹게 하는 행사 같다는 뜻이다.
원래도 왕버드나무 밑에 사람들이 모여 장구랑 꽹과리도 치고 담소를 나누고,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공원에서 관이 벌이는 축제에 무언가 다른 것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가 아니다. 칼국수를 사먹는 데 만족하는 축제가 아니라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하고 또한 미래를 그려 보며 보내는 즐거운 시간 말이다.
사흘 간의 축제는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뉴스를 보고 찾아왔다는 시민도 많았다. 시장, 5개 구청장, 시의회 의장 등이 개막식 때 찾아 대전칼국수축제에 응원과 격려,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성공적으로 치러진 축제, 단 2회만으로 시민에게 각인된 축제. 제2회 대전칼국수축제는 이렇게 평가되는 듯하다. 이러한 분위기를 몰아 내년에 제3회 대전칼국수축제를 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 되었고, 개막식에서 시와 다른 구의 지원도 약속 받았다.
축제에 볼거리가 없다고 불만을 표하던 사람들도 대전칼국수축제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대사동에 사는 이용근(59) 씨는 “1회 때 같으면 안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1회 때보다는 훨씬 낫다고 본다. 계속 진행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에게는 축제가 필요하다. 나들이할 만한 거리와 삶의 쉼표가 필요하다. 대화를 나누어 본 관람객들은 백이면 백, 대전칼국수축제의 존재를 반겼다. 비록 축제 장에서 먹는 칼국수가 식당에서보다 맛이 떨어지고 복잡했지만, 특별히 볼거리는 없었지만, 이것 역시 재미난 추억으로 여겼다.
사람들은 제3회 대전칼국수축제를 기다린다. 그러나 이것은 ‘대전칼국수축제’에 관한 갈망이 아닌 ‘축제’에 관한 갈망이기도 한다. 대전 시민이 진정으로 ‘일상에서 탈피해, 함께 만들어 가고 즐기는, 내가 사는 지역에 소속감을 기르는’ 축제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대전에 축제는 필요하다. 그런데 아직 대전칼국수축제가 필요하다는 설득 논리는 약하다. 대전의 대표 음식이 칼국수여야 하는 이유도 분명치 않다.
사흘간 축제를 지켜보며 칼국수축제가 아닌 두부두루치기축제나 떡볶이축제를 열었어도 크게 달라질 바는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3회 대전칼국수축제는 내년에 다시 열릴 것이다. 앞으로 대전칼국수축제는 축제를 여는 명분을 더 견고히 만들어 내야 한다. 명분이 없다면 축제는 존재할 이유를 잃고 만다. 명분을 만들고 나서는 대전과 칼국수의 관계, 그리고 칼국수에 관한 콘텐츠를 축제에 녹여야 한다. 그리고 콘텐츠를 시민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축제가 아닌, 함께 만들어 가는 축제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