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90호] 마을 만드는 사람들
일요일 오후 네 시면 월평동 한살림 사무실에 청년들이 모인다. 고등학생, 대학생이 주로 모이고 중학생도 몇 명 모인다. 이들이 모여서 함께 하는 것은 농사다. 함께 농작물을 기르며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고 수확의 기쁨을 느끼며 농부의 땀방울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은 팜살롱이다.
어느 일요일 오후 네 시, 팜살롱 구성원들이 모이는 한살림 사무실을 찾았다. 평소 평균 열 명 정도 구성원이 모이는데 이날은 다섯 명이 모였다. 구성원 네 명이 ‘대장’이라고 부르는 백종운 씨의 설명으로 모임을 시작한다. 백종운 씨는 농작물에 꼬이는 벌레에 관해 설명하고 친환경 농약을 만드는 법을 설명했다.
“계란 노른자와 식용유를 섞어 물에 희석해 뿌리면 돼. 마요네즈 성분이라고 보면 되는데, 시중에서 사기보다 직접 만들어서 뿌려 보자고.”
백종운 씨의 설명을 듣고 구성원들은 계란에서 노른자를 분리해 풀고 식용유와 함께 믹서기에 갈아 물에 희석한다. 친환경 농약으로 쓰는 난황유를 대야 한가득 담고 텃밭이 있는 옥상으로 향한다. 팜살롱의 텃밭은 빌딩 옥상이다. 넓지 않은 공간에 깻잎, 배추, 고추, 방울토마토 등 다양한 농작물이 한 자리씩 차지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충남대학교 농과대학 후문 아래 땅에서 농사지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게 돼 이곳 옥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팜살롱의 모체 격인 모임은 2010년에 만들었다. 백종운 씨는 군대에서 씨앗을 구해 이것저것 기른 것을 계기로 전역 후에 직접 땅에 농작물을 심고 기르기 시작했다. 2009년에 친구들과 작게 시작한 일이 2010년에 모임 형태를 띠어 지금까지 온 것이다. 2010년 시작한 모임이지만, 올해부터 팜살롱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백종운 씨가 대학교를 졸업하며, 대학생이 주축인 모임에서 빠지려고 했지만 신규 회원에게 농사짓는 법을 알려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껴 계속 함께하고 있다.
“구성원들에게 풀 좀 뽑으라고 했더니, 옥수수를 뽑아 놓았더라고요. 땅콩이 왜 땅에서 자라느냐고 묻기도 하고요. 도시민도 농사일에 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먹는 거니까요. 농촌 가서 농사를 짓자는 게 아니고, 도시민의 일을 그대로 하면서 농사에 관해 알고 농사를 지어 보는 것이 필요해요. 교육도 되고 농사, 생명의 소중함도 알게 되고요.”
“어릴 때 말고는 식물을 기를 일이 없잖아요. 신선했어요. 어린 나이로 돌아간 것 같았고요. 감자를 심고 다음 주에 와 봤는데 싹이 난 거예요. 신기해서 계속 오게 됐어요. 열무, 상추, 오이, 가지, 토마토, 땅콩, 강낭콩, 고구마, 배추 심고 길러 봤어요. 수확하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뿌듯해요. 충남대학교 땅에서 농사지을 때는 평일에도 가서 옥수수를 봤어요. 옥수수랑 사진도 찍었어요.”
노의정 대표는 작년부터 농사를 지었다. 미술봉사를 하다가 ‘대장’을 만났고 ‘대장’이 같이 텃밭을 가꾸어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해 함께하게 됐다. 이날 모인 다섯 명은 다니는 학교도, 전공도, 나이도 다르지만, 생명을 싹 틔우는 것이 좋아 한데 모인 이들이다.
지금은 빌딩 옥상에서 농사를 짓지만, 땅에 직접 농사지을 때는 자연과 자연 속의 자신을 느끼며 땀의 의미와 수확의 기쁨도 함께 느꼈다. 잠시 도심을 떠나, 자연 속에서 흙을 밟고 만지며 식물이 싹을 틔우고 결실을 보기까지를 지켜보는 하나의 활동이 구성원들을 변화하게 했다. 구성원들은 농작물을 키우며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했고 생명의 소중함을 느껴 가고 있다.
“예전에는 식물이 꺾여 있든 말든 신경을 안 썼어요. 그런데 이제는 생명을 소중히 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키우는 농작물이 꺾여 있으면 ‘누가 꺾었어.’ 하면서 속상해해요. 농작물 만질 때도 조심조심 만지고요.”
신지현 씨는 농작물 하나하나를 소중히 만지면서, 흙을 가까이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이야기한다. 팜살롱 구성원들은 이전에는 몰랐던, 같은 땅에 함께 사는 존재들에 눈길을 주게 되었다고, 길가에 피어난 들꽃 하나도 귀히 여기며 혹시 밟지는 않을까 돌아가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구성원들은 환경을 생각하게 됐다. 사람들이 테이크아웃 컵을 자주 쓰고 무심히 버리는 일이 안타까워 테이크아웃 컵에 흙을 담아 상추를 심어 나누어 주고 후기를 받아 상품을 주는 활동을 했다. 팜살롱의 작은 실천, 작은 도전이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 냈다.
“예전에는 싼 것들만 찾았어요. 오이 하나를 사도 가장 싼 걸 사 먹었죠. 그리고 예쁜 것만 찾아서 사 먹었죠. 그런데 직접 키워보니까 무엇이 좋은 채소인지 알겠어요.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싸고 예쁜 것만 좋다고 사 먹어요.”
노의정 대표는 농사를 지으면서 바른 먹거리에 관해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말한다. 신지현 씨와 오승현 씨는 자취하면서 한 끼, 두 끼 대충 때우는 일이 많았는데 직접 농사지으며 거둔 농작물들로 ‘건강한’ 요리를 해 먹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수확하는 농작물이 많으니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밥을 먹는 일도 많아졌다. 가끔 수업 시간에 봉지 한 가득 상추를 싸가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인기가 좋다. 직접 채소를 키워 먹는 것의 좋은 점이 또 있다. 오승현 씨는 채소 고유의 맛을 느끼며 미각을 살릴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한다.
“조미료 맛에 길들었었는데 내가 직접 기른 채소를 먹다 보니 채소의 풍미를 느낄 수 있게 됐어요. 상추를 심어도 여러 종류를 심어 봤거든요. 상추 종류마다 맛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전에는 상추가 고기 먹을 때 곁드는 하나의 도구였는데 이제는 상추 하나만으로도 밥을 맛있게 먹어요.”
상추를 따는 날은 팜살롱 잔칫날이다. 밥을 해 다른 반찬 없이 상추와 고추장을 함께 비벼 먹으면 이것보다 더 맛있는 게 있나 싶을 정도로 맛이 좋다. 무엇보다 안전하게 직접 기른 먹거리라는 것이 마음을 놓이게 한다. 노의정 대표는 친구들 사이에서 바른 먹거리를 전파하기 위해 애쓴다고 말한다. 패스트푸드는 먹지 않고 친구들에게도 패스트푸드를 먹지 말라고 권한다.
만난 지 오래된 사이가 아니더라도 팜살롱 구성원들은 서로 가족처럼, 친구처럼 지낸다. 서로 아무런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고 자기 일을 잠깐 멈추었을 때, 휴식할 때 만나는 사이니 더욱 편하고 뜻 깊은 사이가 되었다. 농사를 주제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팜살롱 내부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다. 친환경 농작물 생산지를 방문해 농사법, 육종법을 배우고 일손을 돕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 교류하며 자연스레 도시와 농촌의 교류 장을 만든다.
팜살롱 구성원들은 텃밭을 가꾸며 변화한 자신을 느끼기에 다른 이들에게 텃밭 가꾸기의 좋은 점, 중요성을 홍보하려 한다. 그 노력 중 하나가 이동식 텃밭이다. 헌 자전거에 상자로 이동식 텃밭을 만들어 보급한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도시농업이 조화를 이룬 결과물이다. 이동식 텃밭으로 많은 농작물을 수확할 수는 없지만, 어디에서나 사람과 생물이 교감할 수 있다는 것과 팜살롱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팜살롱 구성원들은 도시농업에 관심은 있지만 선뜻 농사를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교육이나 관리를 해 주고픈 마음이 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기에 여러 사람에게 배우는 시간을 자주 보낸다. 백종운 씨는 현재, 한살림에서 도농교류를 담당하고 있고 최근에 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팜살롱 구성원들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
“팜살롱 안에서 자신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역할을 찾는 게 저희 목표예요. 단순히 ‘평생 농사로 먹고 살아야겠다.’가 아니라 팜살롱을 통해 또 다른 꿈을 실현하는 것을 꿈꾸고 있어요.”
백종운 씨는, 경작이 주가 되는 다른 텃밭 동아리와 팜살롱의 다른 점은 개인의 역할을 찾는 데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서양화를 전공하는 노의정 대표는 이동식 텃밭의 상자를 직접 꾸몄다. 이런 식으로 구성원들은 팜살롱에서 자신의 전공과 특기를 살려 또 다른 역할을 찾아가고 있다.
현재 팜살롱 구성원들은 농사지을 땅을 구할 방법을 찾고 있다. 그동안 지역 대학교의 허가를 얻어 대학교 소유 땅에 농사를 지어 왔는데, 그렇게 할 수 없는 실정이 되었다. 구성원 대부분이 학생이다 보니 땅을 임대할 금전적 여유가 없어 땅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빌딩 옥상에 마련했던 텃밭도 소유주의 반대로 없애야 할 상황이다.
웬만하면 많은 것을 구성원들 손으로 직접 해결하려고 하는데, 가끔 주변에서 보내오는 시선이 곱지 않다고 백종운 씨는 말한다. 대학생들이 공부 안 하고 농사지어서 뭘 하느냐는 시선도, 스펙을 쌓으려고 모임에 잠깐 나왔다가 종적을 감추는 이들도 팜살롱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너희가 해 봤자 얼마나 하느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학생들이 열심히 하는 일에 응원도 해 주고 참여도 해 주시면 좋겠어요. 전에 한 학생 부모님이 오셔서 같이 고구마를 캔 적이 있었어요. 저희가 꿈꾸는 건 그런 모습이거든요. 저희도 항상 열려 있으니까 지역민이 쉽게 다가왔으면 좋겠어요. 말 그대로 좋은 마을을 만드는 거죠.”
올해 팜살롱이 중점적으로 이끌어나가고자 하는 활동은 이동식 텃밭과 옥상 텃밭 경작 그리고 전봇대 등에 상자 텃밭을 만드는 것이다. 또 도시농업과 관련한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려고 계획하며, 11월에는 수확한 농작물로 프리마켓을 열고자 한다. 도시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유쾌하게 농사짓고자 하는 팜살롱의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