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90호] 김운하와 함께하는 책거리
내가 늘 곁에 두고 자주 읽곤 하는 책 가운데 한 권은 보르헤스의 에세이 모음집인 『만리장성과 책들』이란 책이다. 지적으로 무척 까다롭고 심원한 사유를 보여주는 산문이지만 그의 우아하고 간결한 문체 속에 담긴 은근한 유머 또한 놓칠 수 없는 기쁨을 준다. 그 가운데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라는 꼭지에 나오는 한 대목은 미셸 푸코 같은 진지한 철학자조차 배꼽을 잡고 웃게 만들었다. 바로 중국의 한 백과사전에 나온다는 황당한 동물 분류법 이야기다. 그 백과사전은 동물들을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a) 황제에 속하는 동물들 b) 박제된 동물들 c) 훈련된 동물들 d) 돼지들 e) 인어들 f) 전설의 동물들 g) 떠돌이 개들 h) 이 분류 항목에 포함된 동물들 i) 미친 듯이 날뛰는 동물들 j) 헤아릴 수 없는 동물들 k) 낙타털로 만든 섬세한 붓으로 그려진 동물들 l) 그 밖의 동물들 m) 방금 항아리를 깨뜨린 동물들 n) 멀리서 보면 파리로 보이는 동물들.
미셸 푸코는 보르헤스의 이 대목을 깔깔대며 웃었지만, 그런 웃음 속에서 자기 “사유의 전 지평을 산산조각 부숴버리는 듯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이 우스꽝스러운 환상적인 분류법을 통해 보르헤스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궁극적으로 <이 세계의 근원적으로 불가해한 모호함과 인간의 지적 불완전성>이었다. 존 윌키스가 비록 창의적으로 이 세계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는 완벽한 언어를 추구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세상이 무엇인가 알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분류하는 모든 행위는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전횡이라는 사실을 저런 농담으로 통렬하게 풍자한 것이었다.
세계는 근본적으로 카오스적이다. 예를 들어 실제 존재하는 동물과 식물 사이에는 탈경계적인 혹은 잡종적인 것들이 너무나 많다. 움베르토 에코가 책 제목으로까지 삼았던 오리와 너구리가 합성된 듯한 동물 오리너구리를 비롯하여 곤충을 잡아먹는 식충식물들, 그리고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지대에 존재하는 DNA도 없이 자가조립하는 박테리아들이 그 전형적인 예다. 또 최근 남미 안데스 산맥의 고지대에서는 곰의 얼굴에 너구리 크기만 한 올링귀토라는 동물이 새로 발견되기도 했다.
세계와 사물들에 대한 이런 철두철미한 분류 욕망은 어찌보면 지극히 근대적인 강박관념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근대인들은 오히려 이런 잡종성과 혼돈을 즐겼다는 증거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오늘날과 같은 하나의 중국이 형성되기 이전 시기 고대 동북 아시아의 신화를 묶은 『산해경』이란 책에서는 가히 상상력의 극한이라고 할 정도로 잡종과 혼돈의 유희를 보여준다. 이 책은 고대 중국의 오래된 지리·의학·역술·신화 등의 보고인데, 이 책이 그려내고 있는 세계상은 우리에게 익숙한 현실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요즘 표현으로 말한다면 ‘초현실적인’ 세계다. 이 세계는 왜 이런 세계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필연성도 제기할 필요가 없는 세계다.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지고 드러나는 세계일 뿐. 산, 바다, 동물, 식물, 인간, 모든 것이 즐겁게 뒤섞여 있고, 나란히 수평적으로 존재한다. 책의 순서도 동서남북이 아니라 남서북동, 그리고 중앙의 순서로 나아간다. 이런 식이다.
“작산(鵲山)에는 계수나무가 많고 금과 옥이 많이 난다. 이 산에 나는 어떤 풀은 모양이 부추 같은데 푸른 꽃이 핀다. 축여(祝餘)라고 하는 이것을 먹으면 배가 고프지 않다.…이 산의 어떤 짐승은 긴꼬리원숭이처럼 생겼는데, 귀가 희고 기어 다니다가 사람같이 서서 두 발로 달리기도 한다. 이름은 성성(猩猩)이며 이 짐승의 고기를 먹으면 달리기를 잘 할 수 있다.(‘남산경’).”
산해경의 세계에서 사는 인간을 포함한 동식물들도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포유류, 조류, 식물 등과 같은 질서정연한 분류체계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것들은 이성적인 분류체계 바깥에 존재한다.
가슴에 구멍이 나 있는 관흉국 사람들, 사람 얼굴에 물고기의 몸에 발이 없는 저인국 사람들, 너무 큰 귀를 두 손으로 붙들고 살고 있는 섭이국 사람들, 머리 하나에 몸이 셋인 삼신국 사람들, 입에서 불을 토해내는 염화국 사람들 등등.
<혼돈의 신 제강>
보르헤스는 『상상동물 이야기』라는 재미있는 책에서 역사에 등장하는 온갖 기괴한 상상속의 동물을 소개하고 있지만, 이 산해경이란 책에 등장하는 무수한 기이하고 신비한 상상동물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어느 산에는 호랑이 무늬를 한 말(馬)이 있는데 머리는 희고 꼬리가 붉다. 말인가 했더니 이름이 녹촉이다. 즉 말의 몸통을 가진 사슴이다. 하늘에는 꿩같이 생긴 새가 턱 밑의 수염으로 하늘을 난다. 물에선 뱀 꼬리에 날개를 갖고 있고 가슴지느러미를 달고 있는 소처럼 생긴 물고기, 새의 머리를 하고 살무사 꼬리를 한 거북이가 헤엄치고 있다. 돼지처럼 생겼지만, 날개가 달렸고 눈, 코, 귀, 입도 없는 혼돈의 신 제강이라는 동물도 있다.
이처럼 『산해경』이란 책은 무한히 넓은 상상세계의 지리학을 펼쳐보이며 편협한 인간 이성의 분류 강박을 비웃는다. 그 세계는 스스로를 이성적으로 정당화할 필요가 없는 세계다. ‘스스로 그저 그렇게 존재하는’ 무위자연의 세계다. 인종차별, 민족차별, 종교차별, 이념차별, 성차별로 끊임없이 자기중심적인 편견으로 차별과 싸움을 일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는 얼마나 다른가? 보르헤스의 유쾌한 중국식 백과사전의 분류법에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 미셸 푸코의 웃음은 바로 이런 모든 구별과 차별의 어리석음과 작위성에 대한 통렬한 깨달음의 웃음이다.
철학자 니체는 모든 개념이 은유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분별과 엄격한 경계와 존재들의 위계질서를 추구하는 개념이 사실과 진리를 표방할 때, 그것은 세계와 사물의 혼돈에 억지로 구멍을 뚫는 행위가 되고, 폭력이 된다. 상상력의 작동이 빚어내는 시적 은유는 일종의 혼돈과의 유희다. 오직 그런 시적 상상력만이 세계의 혼돈스런 본래 모습과 나란히 갈 수 있다.
보르헤스는 『상상동물 이야기』의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이 책의 제목은 햄릿 왕자, 점, 선, 평면, 관처럼 생긴 것, 입방체, 모든 창조와 관련된 단어들 그리고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과 신을 정당화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모든 것의 총체, 즉 우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