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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4호]지금은 필연적으로 그때가 될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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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앞’ 잡지 <스트리트 H>를 찾아가는 길에 기차를 탔다. 앞좌석 등받이에는 어김없이 이 꽂혀 있었다. 월간 토마토를 발행했던 초창기부터 최근까지 끊임없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KTX 매거진처럼 만들면 안 되냐는 것이었다. 여행과 문화를 콘셉트로 삼은 KTX 매거진은 시원한 사진이 강점인 잡지다. 사람들이 하도 많이 들고가니 그 수량을 감당할 수 없었는지, 한때는 다른 사람을 위해 다 본 후에 제자리에 놓아 달라는 내용의 안내문이 실려 있던 것도 본 기억이 있다. 그때는 그런 생각을 했다. 어차피 외주 제작인데 우리도 입찰에 참가해서 한번 만들어 볼까, 그때는 글자가 빼곡한 KTX 매거진을 만들겠다. 이번 여행길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군가 가져가야 할 것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 싶었다. 승객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패드 혹은 노트북을 열어 집중하고 있었다. KTX 매거진처럼 만들라, 는 얘기를 들을 때는 짜증이 복받쳤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스마트폰 대신 KTX 매거진을 들춰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숨을 내쉬며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확인하고 급한 메일에는 답장을 보냈고,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며 키득거렸다. 평일인데 서울역은 복잡했다. 공항철도를 이용해 ‘홍대앞’ 역에서 내렸다. 이번 기획을 잉태했던 제주컨퍼런스에서 사실 가장 충격적인 발제는 스트리트 H였다. 서울에서 ‘홍대앞’을 지역으로 해석해 내고 그곳에서 차근차근 기록해야 할 핵심을 뽑아 아카이빙 하는 모습이, 무언가 프로페셔널 해 보였다.
특히, 스트리트 H가 말하는 지역 ‘홍대앞’은 행정기관에서 편의에 따라 나눈 경계선과는 상관 없는 구획이다. 잡지를 발간하는 그 시간 내내 ‘홍대앞’ 지역은 끊임없이 팽창했고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그 안에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움직였다. 그 지역을 스트리트 H는 주목했다. ‘홍대앞’ 역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야 한다는 정지연 편집장의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작심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멀었다. 서울의 거리 감각은 우리가 갖고 있는 거리감과 약간의 오차가 있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최단거리를 찾았다는 확신은 없다. 몇 번을 물어, 지역 명칭을 만들어 낸 홍익대학교 정문 앞을 지났고 그곳에서 조금 더 걸어가 KT&G가 그곳에 세워 둔 ‘상상마당’을 발견했다. 몇 년 전 그곳에 취재를 왔을 때와는 주변 풍광이 너무 많이 달라졌다. 상상마당마저 없었다면, 같은 곳이라 짐작할 수 있는 건 도로 가운데를 가로질러 설치한 주차장뿐이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릴 때 정지연 편집장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마침, 스트리트 H 사무실 근처 골목 초입에 서 있었다. 1층에 ‘작업실’이라는 카페가 있는 건물 3층이었다. 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바로 스트리트 H 사무실 출입문이다. 서울에 있는 사무실에 그리 많이 들어가 본 적도 없는데, 스트리트 H 사무실은 서울 사무실 특유의 공간 효율성을 극대화한 형태였다. 디자인 사무실 특유의 모던함이 느껴지면서도 따뜻했고, 그 안에 노곤하게 쌓여 있는 피로감도 엿보였다.
7월 컨퍼런스 이후에 첫 만남이었다. 술잔을 앞에 놓고 긴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은 없지만, 동종 업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유대감이 느껴졌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작점으로 최근 제달에 잡지를 발간하지 못한, 역사가 제법 깊은 한 잡지 이야기를 꺼냈다. “워낙 오래되었고 탄탄한 마니아층이 형성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잘 쌓는 게 가장 중요하지요. 어떻게든 잘 지켜 내는 것도 중요한데, 그 안에서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겨울 수밖에 없죠. 조금만 비슷한 내용으로 지속해도 흥미도가 떨어지는데, 같은 내용을 담더라도 어떻게 새롭게 담아낼 것인가 연구해야죠.” 장성환 발행인이 즉각적으로 의견을 밝혔다. 대부분 인터뷰는 가벼운 한담으로 시작한다. 이 원칙에도 혁신이 필요하겠다. 바로 훅 들어왔다. 고개를 끄덕이며 철저하게 동의할 수밖에 없는 지적이었다. 월간 토마토가 선택한 이번 기획도 ‘혁신’을 추동하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다. 풀리지 않는 혁신의 실마리를 찾아 전국의 지역 잡지사를 찾아 떠난 것이다. 분명, ‘혁신’이 필요한 시대다. 지금까지 너무 지루하게 살았다. 그것이 설혹 강요라 할지라도 ‘다른 틈’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한 계간지를 발행하는 대표님을 만나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지속가능성이 중요한 건 아니다. 너무 억지로 지속가능 하려 노력하니까 문제가 생긴다. 끝나면 끝내고 산화하자! 억지로 생명 연장하지 말자! 그러다보면, 무리수가 생긴다.’라고요.” 정지연 편집장 역시 다른 발행인의 이야기를 빌어 강한 메시지를 날린다. 멋지다. 우리의 만남은 이렇게 ‘쎄게’ 시작됐다. 스트리트 H는 2009년 6월호가 창간호다. 창간호를 발행하기 전, 정지연 편집장은 2007년부터 2008년까지 뉴욕에서 체류했다. 그곳에서 아주 좁은 지역을 대상으로 발행하는 로컬 매거진을 처음 접했다. 해당 지역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사건, 인물을 보여 주었는데 단기 여행자에게 굉장히 유용했다. 그걸 모아서 귀국했다. 당시 정지연 편집장은 이제 막 출판 일을 시작했던 시기였고, 장성환 발행인은 <디자인스튜디오 203>을 창업한 지 3년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뉴욕 생활을 단행본으로 내려고 준비하면서 ‘홍대앞’에 있었던 카페 일렉트로닉스 사진이 필요했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심지어 이 카페를 오픈한 안상수 씨도 이 사진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 사건이 스트리트 H를 창간하는 결정적 계기였지요. 문화예술 생태계, 인디의 고장, 요란한 수식어는 많은데 정작 아카이브된 정보는 너무 없는 거예요. 지역에 콘텐츠가 그렇게 많은데요. 장성환 발행인이 디자인을 하고, 난 취재할 수 있으니까. ‘단순하게 경량화해서 힘 들이지 말고 하자.’라고 생각했죠.” 1, 2호를 어찌 내긴 했는데, 생각보다 품이 너무 많이 들었다. 그때부터 재능기부로 잡지 발행을 도와줄 사람을 찾는다는 공고를 냈고 지금까지 왔다. 스트리트 H는 일반적으로 ‘홍대앞’이라 부르는 공간이 지닌 가치를 인식하고 기록의 필요성을 인식한 최초의 매체인 셈이다. 그리고 그 기록 방식이 무척 독특하고 차별성을 갖는다. 이런 특징은 장성환 발행인의 이력과도 무관치 않다. 아니 밀접하다. 그는 연합뉴스 그래픽 뉴스를 초기에 세팅하고 인포그래픽에 관한 연구와 작업을 오랜 시간 이어왔다.
“물론, 수익을 고려하고 스트리트 H를 창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한된 지면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 주어야 하니까, 집약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으로 인포그래픽 등 디자인적 돌파구를 찾은 것이지요.”
스트리트 H는 총 16면이다. 여기에 지도와 주제별 정보로 채운 인포그래픽 포스터 한 장을 별도로 끼워 배포한다. 일반적으로 나오는 월간 발행 잡지 중에는 분량이 적은 편이다.
“또 우리가 별도로 포토그래퍼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없으니까. 비주얼적인 혁신을 사진에서 크게 기대하기도 어려운 형편이죠. 이런 상황과 정보 집약 니즈가 디자인적으로 표현된 겁니다.”
필요에 의해 나온 결과라고는 하지만 스트리트 H의 인포그래픽은 많이 회자되는 시도다. 인터뷰를 줄줄이 풀어 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스트리트 H는 인물 인포그래픽을 시도한다. 딱 한 면에 인물에 관한 독자가 알고 싶은 모든 정보를 압축한다. 디자인적인 심미성은 눈길을 붙잡아 두기에 충분하고 많은 고민을 통해 엄선한 내용을 독특하고, 시스템적으로 완벽하게 배치해 가독성을 높여 준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장성환 발행인의 디자인 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는 디자이너를 흔히 시각적인 부분에만 참여하는, 뒤에서 담기만 하는 존재로 인식하는데 잘못된 생각이에요. 스트리트 H에서 만드는 인물 인포그래픽은 기획부터 인물 섭외, 인터뷰까지 모두 디자이너가 진행합니다. 정보 디자인을 대학에서 강의하는데, 학생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 줍니다. ‘꼴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콘텐츠를 이해하고 내러티브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디자인의 역할이 원래 그런 것이다. 근데 우리 사회 디자인은 꼴에만 집착하는 형태로 퇴보했다.’ 디자이너가 전문가로서 직업적 윤리를 가지고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다른 이야기를 할 때보다 장성환 발행인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언젠가 대전에서 강의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디자인에 관한 장성환 발행인의 이런 철학은 정보 디자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지도’와 연결돼 스트리트 H가 이 시대 존재 의미를 분명히 갖는 한 영역을 구축했다. 창간 때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계속해 온 ‘홍대앞 지도’ 작업이다. 정지연 편집장은 장 발행인의 지도에 관한 애정을 ‘집착자’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홍대앞은 2012년 이후 젠트리피케이션이 본격화됐습니다. 우리가 창간할 당시와 지금 홍대앞을 비교해보면 많은 것이 달라졌지요. 당시에 의미 있던 공간 중 상당수가 지금은 우리 지도 위에 남아 있을 뿐입니다. 지도는 정보 디자인의 오래된 형태입니다. 처음에는 위치 정보를 제공하는 정도이지만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 지도를 발행한 그 시기의 사회 구조를 볼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는 중요한 자료지요. 실제로 우리가 2009년 창간 당시부터 지도를 만들었는데, 그때 홍대앞 범위와 지금의 범위는 상당히 달라요. 문화적인 관점에서 홍대앞이죠. 창간 당시에는 연남동은 아예 보이지도 않고 상수역까지도 안 갔어요. 근데 지금은 그곳을 모두 포함하지요. 그만큼 넓어진 거예요. 우리가 10년을 만들면 모두 120장의 홍대앞 지도가 만들어집니다. 네이버나 구글도 지도를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걸려 한 번씩 업데이트 하는데,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업데이트 하잖아요. 매우 조밀한 정보를 담을 수밖에 없어요. 누군가는 이 120장의 지도가 담은 데이터를 보고 무언가를 연구하고 중요한 정보를 끄집어내겠지요.”
장성환 발행인에게서 본인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관한 확신이 느껴졌다. 스트리트 H는 창간부터 7년 차에 접어든 현재까지 일관성 있게 관통하는 ‘중심’이 분명했다. 따라하겠다고 당장 달려들어도 절대로 따라갈 수 없는, 절대적인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한 시점에서는 이미 지나온 시간을 거슬러 올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 차별성이며 경쟁력이다. 어수선하게 널려 있는 월간 토마토의 정보를 지금이라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이 정리에는 많은 시간과 인력, 그에 따른 자본이 필요하다. 시작 단계에 기획이 치밀하지 못하면 나중에 뒤처리하며 낭비해야 할 것이 이렇게나 많다.
스트리트 H는 총 16면이다. 여기에 지도와 주제별 정보로 채운 인포그래픽 포스터 한 장을 별도로 끼워 배포한다. 일반적으로 나오는 월간 발행 잡지 중에는 분량이 적은 편이다.
“또 우리가 별도로 포토그래퍼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없으니까. 비주얼적인 혁신을 사진에서 크게 기대하기도 어려운 형편이죠. 이런 상황과 정보 집약 니즈가 디자인적으로 표현된 겁니다.”
필요에 의해 나온 결과라고는 하지만 스트리트 H의 인포그래픽은 많이 회자되는 시도다. 인터뷰를 줄줄이 풀어 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스트리트 H는 인물 인포그래픽을 시도한다. 딱 한 면에 인물에 관한 독자가 알고 싶은 모든 정보를 압축한다. 디자인적인 심미성은 눈길을 붙잡아 두기에 충분하고 많은 고민을 통해 엄선한 내용을 독특하고, 시스템적으로 완벽하게 배치해 가독성을 높여 준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장성환 발행인의 디자인 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는 디자이너를 흔히 시각적인 부분에만 참여하는, 뒤에서 담기만 하는 존재로 인식하는데 잘못된 생각이에요. 스트리트 H에서 만드는 인물 인포그래픽은 기획부터 인물 섭외, 인터뷰까지 모두 디자이너가 진행합니다. 정보 디자인을 대학에서 강의하는데, 학생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 줍니다. ‘꼴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콘텐츠를 이해하고 내러티브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디자인의 역할이 원래 그런 것이다. 근데 우리 사회 디자인은 꼴에만 집착하는 형태로 퇴보했다.’ 디자이너가 전문가로서 직업적 윤리를 가지고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다른 이야기를 할 때보다 장성환 발행인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언젠가 대전에서 강의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디자인에 관한 장성환 발행인의 이런 철학은 정보 디자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지도’와 연결돼 스트리트 H가 이 시대 존재 의미를 분명히 갖는 한 영역을 구축했다. 창간 때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계속해 온 ‘홍대앞 지도’ 작업이다. 정지연 편집장은 장 발행인의 지도에 관한 애정을 ‘집착자’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홍대앞은 2012년 이후 젠트리피케이션이 본격화됐습니다. 우리가 창간할 당시와 지금 홍대앞을 비교해보면 많은 것이 달라졌지요. 당시에 의미 있던 공간 중 상당수가 지금은 우리 지도 위에 남아 있을 뿐입니다. 지도는 정보 디자인의 오래된 형태입니다. 처음에는 위치 정보를 제공하는 정도이지만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 지도를 발행한 그 시기의 사회 구조를 볼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는 중요한 자료지요. 실제로 우리가 2009년 창간 당시부터 지도를 만들었는데, 그때 홍대앞 범위와 지금의 범위는 상당히 달라요. 문화적인 관점에서 홍대앞이죠. 창간 당시에는 연남동은 아예 보이지도 않고 상수역까지도 안 갔어요. 근데 지금은 그곳을 모두 포함하지요. 그만큼 넓어진 거예요. 우리가 10년을 만들면 모두 120장의 홍대앞 지도가 만들어집니다. 네이버나 구글도 지도를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걸려 한 번씩 업데이트 하는데,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업데이트 하잖아요. 매우 조밀한 정보를 담을 수밖에 없어요. 누군가는 이 120장의 지도가 담은 데이터를 보고 무언가를 연구하고 중요한 정보를 끄집어내겠지요.”
장성환 발행인에게서 본인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관한 확신이 느껴졌다. 스트리트 H는 창간부터 7년 차에 접어든 현재까지 일관성 있게 관통하는 ‘중심’이 분명했다. 따라하겠다고 당장 달려들어도 절대로 따라갈 수 없는, 절대적인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한 시점에서는 이미 지나온 시간을 거슬러 올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 차별성이며 경쟁력이다. 어수선하게 널려 있는 월간 토마토의 정보를 지금이라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이 정리에는 많은 시간과 인력, 그에 따른 자본이 필요하다. 시작 단계에 기획이 치밀하지 못하면 나중에 뒤처리하며 낭비해야 할 것이 이렇게나 많다.
미디어 환경이 많이 변한 건 사실이지요. 1990년대, 2000년대 초반까지 가졌던 잡지 영향력과 파급력이 많이 줄었잖아요. 사람들이 이제는 많은 품을 들여야 하는 잡지보다는 스낵 컬처적인 것을 선호하잖아요. 심지어는 동영상도 1분 30초가 넘으면 안 본다는데. 이런 상황에서 잡지가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는 또 어려운 숙제예요. 잡지는 잡다한 것을 모아 놓은 거잖아요. 이런 전통적인 시각을 뒤집는 잡지, 한 가지 주제를 집약적으로 밀도 있게 다루는 잡지가 경쟁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그건 단행본과 어떤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 직면할 수밖에 없죠.”
스트리트 H에서도 꼬리를 물고 고민을 이어 갔다. 살아남을 수 있는 혹은 미래가 보장된 잡지 형태를 고민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은 우리 정서 안에서 잡지 범주 안에 넣어 두기에는 애매한 형태를 보이기 일쑤였다. 종이 매체도 마찬가지였고 대안으로 여기는 웹에서의 구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동의할 수 있는 건, 소장하고 싶거나 정기구독을 통해 볼 가치가 충분한 콘텐츠를 담아내는 매체여야 한다는 점이다. 당연히 웹에서 구글링을 통해 얻을 수 없는, 유일무이한 콘텐츠여야 한다. 결국, 콘텐츠 자체가 경쟁력을 가져야 하고 여기에는 시각적인 부분도 중요하게 포함된다. 시각적인 부분은 스낵 컬처적인 것을 선호하는 현대 독자의 경향성을 파괴하고,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하며 가장 효율적인 도구로 보인다.
정지연 편집장은 대화 도중 올해 프랑크푸르트 북페어를 취재한 사람이 보내온 리포트 중 흥미로운 이슈 한 가지를 전해 주었다.
“출판의 미래는 누구도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종이책의 미래는 걱정이다.”
스트리트 H에서도 꼬리를 물고 고민을 이어 갔다. 살아남을 수 있는 혹은 미래가 보장된 잡지 형태를 고민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은 우리 정서 안에서 잡지 범주 안에 넣어 두기에는 애매한 형태를 보이기 일쑤였다. 종이 매체도 마찬가지였고 대안으로 여기는 웹에서의 구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동의할 수 있는 건, 소장하고 싶거나 정기구독을 통해 볼 가치가 충분한 콘텐츠를 담아내는 매체여야 한다는 점이다. 당연히 웹에서 구글링을 통해 얻을 수 없는, 유일무이한 콘텐츠여야 한다. 결국, 콘텐츠 자체가 경쟁력을 가져야 하고 여기에는 시각적인 부분도 중요하게 포함된다. 시각적인 부분은 스낵 컬처적인 것을 선호하는 현대 독자의 경향성을 파괴하고,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하며 가장 효율적인 도구로 보인다.
정지연 편집장은 대화 도중 올해 프랑크푸르트 북페어를 취재한 사람이 보내온 리포트 중 흥미로운 이슈 한 가지를 전해 주었다.
“출판의 미래는 누구도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종이책의 미래는 걱정이다.”
우울하긴 하지만, 도서 출판 및 종이 매체 전반에 걸쳐 퍼져 있는 고민의 핵심을 파고든 명제다. 정지연 편집장은 또 한 웹툰 업체가 텀블벅(소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활용해, 웹에서 완결한 웹툰을 종이책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사례를 소개했다.
“웹에서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올렸기 때문에 고비용이 들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한다는 확신이 없는 종이 출판을 굳이 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근데 마니아 독자층의 요구가 무척 거셌나 봐요. 텀블벅에 프로젝트를 올린 거죠. 특별 에디션을 만들겠다고 한 거예요. 대신에 보상의 층위를 아주 세밀하게 쪼갰어요. 패키징 방식이나 주인공 피규어 등 다른 소품 등을 활용해서요. 순식간에 목표한 펀딩금액을 초과했다고 하더라고요.”
이 일화를 소개해 준 것은 앞으로 잡지를 포함한 종이매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는 ‘책’이 갖는 독특한 속성을 마케팅 기법으로 활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수제 제본이나 패키징 형태의 변화를 통해 특별 에디션을 제작하는 방식 말이다.
경쟁력 있는 독창적인 콘텐츠가 완벽한 디자인 작업을 통해 아무나 소장할 수 없는 특별 에디션으로 세상에 나온다면, 이를 소장하고 싶은 욕망이 우리 인류의 마음 속에 싹틀 수 있는 것일까?
스트리트 H에서 나와 필름을 되감듯 찾아갈 때의 역순으로 간 길을 되짚어 왔다. 갈 때보다 훨씬 빨리 서울역에 도착한 듯했다. 점심으로 미역국 백반 한 그릇을 모두 비웠는데, 동행한 기자와 나, 모두 배가 고팠다.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예매한 기차 시각까지 여유가 좀 있었다. 햄버거를 우적거리며 둘은 심각했다. 편집장과 취재기자 중 누가 더 무능력한지를 토로했다. 자학을 빙자한 상호 비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치열했다.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속이 허한 것이었다.
돌아오는 기차는 ITX였다. KTX보다 시간이 더 걸렸지만 편안했다. 대전에 도착했을 때 비가 흩뿌렸고 사위는 어두웠다.
혁신을 이야기할 때 얼마나 빨라야 하는지에 관한 시간 개념은 사실 분명치 않다. 그럼에도 혁신은 순식간에 번개처럼 이루어져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는 이유를 모르겠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데, 필연적으로 지금은 그때가 되고 말 운명이다. 일단, 간다.
“웹에서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올렸기 때문에 고비용이 들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한다는 확신이 없는 종이 출판을 굳이 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근데 마니아 독자층의 요구가 무척 거셌나 봐요. 텀블벅에 프로젝트를 올린 거죠. 특별 에디션을 만들겠다고 한 거예요. 대신에 보상의 층위를 아주 세밀하게 쪼갰어요. 패키징 방식이나 주인공 피규어 등 다른 소품 등을 활용해서요. 순식간에 목표한 펀딩금액을 초과했다고 하더라고요.”
이 일화를 소개해 준 것은 앞으로 잡지를 포함한 종이매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는 ‘책’이 갖는 독특한 속성을 마케팅 기법으로 활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수제 제본이나 패키징 형태의 변화를 통해 특별 에디션을 제작하는 방식 말이다.
경쟁력 있는 독창적인 콘텐츠가 완벽한 디자인 작업을 통해 아무나 소장할 수 없는 특별 에디션으로 세상에 나온다면, 이를 소장하고 싶은 욕망이 우리 인류의 마음 속에 싹틀 수 있는 것일까?
스트리트 H에서 나와 필름을 되감듯 찾아갈 때의 역순으로 간 길을 되짚어 왔다. 갈 때보다 훨씬 빨리 서울역에 도착한 듯했다. 점심으로 미역국 백반 한 그릇을 모두 비웠는데, 동행한 기자와 나, 모두 배가 고팠다.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예매한 기차 시각까지 여유가 좀 있었다. 햄버거를 우적거리며 둘은 심각했다. 편집장과 취재기자 중 누가 더 무능력한지를 토로했다. 자학을 빙자한 상호 비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치열했다.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속이 허한 것이었다.
돌아오는 기차는 ITX였다. KTX보다 시간이 더 걸렸지만 편안했다. 대전에 도착했을 때 비가 흩뿌렸고 사위는 어두웠다.
혁신을 이야기할 때 얼마나 빨라야 하는지에 관한 시간 개념은 사실 분명치 않다. 그럼에도 혁신은 순식간에 번개처럼 이루어져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는 이유를 모르겠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데, 필연적으로 지금은 그때가 되고 말 운명이다. 일단, 간다.
글 이용원(yoleew@naver.com) 사진 성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