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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9호] 순천 기적의 도서관, 도서관 도시 순천
많은 사람이 기적의도서관을 안다. 어린이 도서관 만들기 운동을 펼쳤던 MBC TV 프로그램 ‘느낌표’의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를 통해서 그리고 정기용 건축가를 통해서 기적의도서관을 알고 기억한다. 순천 기적의도서관은 2003년, 처음으로 만든 기적의도서관이다. 이슈 속에 지어진 이 도서관은 10년이 더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시민의 삶에 스며들었다. 아이 그리고 부모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경계를 허물고 이들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아이들을 품는 공간
순천 기적의도서관이 위치한 곳은 ‘기적의도서관길’이다. 길의 이름이 될 만큼 순천시 내에서 존재감을 자랑한다. 본관이 395평 복층구조, 별관이 57평 2층 규모이고 8만여 권의 책을 소유하고 있다. 크기나 건축물의 형태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도서관은 아니다. 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사회로서, 마음 편히 뛰어놀 수 있게끔 또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끔 아이들을 포근히 감싸는 곳이다. 더불어 책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본관으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먼저 마주하는 곳은 ‘아그들방’과 ‘책놀이터’다. 아이들은 미끄럼틀이 있는 놀이터에서 정신없이 놀다가 잠깐 앉아 책장을 펼칠 수 있다. 잠을 잘 수도 있다. ‘코하는 방’을 따로 만들어 영유아 자녀를 재울 수 있도록 배려했다.
▲ 북스타트 부모교육센터
사서 데스크를 지나면 여느 도서관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자료실이 나온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책을 골라 ‘오목공간’으로 갈 수 있다. 오목공간은 바닥을 오목하게 낮추어 만든 공간이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잡기 놀이를 하기도 하며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대어 책을 읽기도 한다. 아이들은 이곳을 ‘수영장’이라고 부르며 어른들은 ‘목욕탕’이라고 부른다. 빨간색 소파와 파란색 소파를 ‘온탕’과 ‘냉탕’이라고 재미있게 칭하기도 한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북스타트 부모교육센터가 있다. 2014년에 개소식을 한 이곳에서 부모들은 다양한 육아서를 접할 수 있다. 센터 한쪽 방은 순천 기적의도서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료들로 구성했다.
동그란 공간에 만든 강당은 ‘모여서놀아요’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맞이한다. ‘마당도서관(정원)’과 ‘야외극장’도 도서관에서 빠지면 안 될 공간이다.
2층에는 ‘비밀의정원’과 ‘별나라다락방’이 있다. 두 공간 모두 아이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실내에서 벗어나 둥그렇게 길을 돌아 마주하는 비밀의정원은 아이들의 놀이터다. 오치근 작가와 함께 아이들이 직접 벽화 작업도 했다. 터널처럼 구성한 별나라다락방에서는 자연과학 서적을 읽을 수 있다. ‘작은미술관’은 그림을 전시하기도 하고, 수업이 이루어지기도 하는 곳이다. 입구에 이곳을 다녀간 그림책 작가들의 그림과 싸인이 있다.
▲ 별나라다락방. 아이들은 터널 같은 공간에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공간마다 부여한 기능과 그 모습이 다르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러한 구분이 없다. 아이들에게 이곳은 신나게 뛰어놀고 친구도 만나고 재미있는 일을 벌이는 놀이터다. 그런 아이들을 도서관이 감싼다. 넓게 뚫린 창이 하루 종일 따뜻하고 밝은 해를 품어 아이들에게 온기를 전한다.
아이의 삶과 함께하는 도서관
순천 기적의도서관은 이야기, 노래, 춤, 그림, 영상, 연극 등 다양한 콘텐츠의 프로그램으로 아이와 부모를 만난다. 책과 관련된 프로그램부터 책과 무관한 듯 보이는 프로그램까지, 소재와 주제가 다양하다.
지난 4월부터 ‘마당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직접 정원사가 되어 보는 ‘꼬마 정원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1년에 두 번 진행하는 ‘하룻밤 자기’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 말 그대로 도서관에서 하루를 자는 프로그램으로 담력 훈련도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어린이 사서’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아이들이 서가 한 칸씩을 맡아 직접 관리하며 사서가 어떤 일을 하는지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노란 조끼를 입은 아이들은 진지한 자세로 사서 역할을 수행한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며 공간에 대한 애착심을 기른다. ‘기적의 놀이터’도 인기 프로그램이다. 가족 단위가 모여 편해문 놀이운동가와 함께 전래놀이를 하며 노는 시간이다.
▲ 본관은 복층 구조로 구성됐다. 자연채광으로 1층과 2층 모두 밝다
순천 기적의도서관은 영유아에서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아이들과 그 연령대 자녀를 둔 부모를 대상으로 운영한다. 아이와 부모 모두 이곳을 편안하게 인식해서인지 어린아이를 둔 부모가 잠깐 어딘가에 가야 할 때, 도서관에 아이를 두고 갔다 오는 경우가 많다. 도서관이 문을 닫는 때까지 부모가 오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이는 엄마가 안 온다고 울고 직원들은 엄마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도서관을 재미있고 신나는 공간으로 함께 만들어 간다는 것은 순천 기적의도서관의 가장 큰 특징이다. 지금은 딱딱한 느낌이 아닌, 재미있는 놀이터로 도서관을 운영하는 곳이 늘었지만, 순천 기적의도서관이 처음 생길 때만 해도 흔한 모델이 아니었다.
▲숙제를 하는 아이들
운영 방식에 있어서도 새로운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 먼저, 순천 기적의도서관은 민과 관이 함께 운영한다. 지역사회의 민간인사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도서관을 운영한다. 부모들이 직접 자원봉사활동으로 참여하는 점도 특징점이다. 도서관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함께하는 봉사자들도 있다.
순천 기적의도서관은 아이들의 양육을 일정 부분 분담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양육의 책임을 나누고 새로운 형식의 교육 환경을 제공한다. 또 도서관에서 가정과, 학교에서 책 읽기 활동을 연결해 책 읽는 가족, 책 읽는 교실, 책 읽는 지역사회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순천, 책 읽는 인문 도시
현재 순천에는 일곱 개 공공 도서관과 50여 개 작은도서관이 있다. 작은도서관은 순천 어느 곳에서든지 걸어서 10분 이내에 위치한다. 1998년부터 순천시에서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1998년부터 어린이 도서 대출 수가 성인 도서 대출 수를 앞서기 시작했고 이것을 어린이 도서관의 필요성으로 인지했다. 그리고 2003년에 순천 기적의도서관을 유치하면서 순천시는 ‘도서관 도시’, ‘책 읽는 도시’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순천시 도서관 회원은 열 권의 책을 14일간 대여할 수 있다. 다른 도시의 도서관과 비교해 봤을 때 많은 양의 책을 긴 기간 대여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도서관 회원은 지역 서점에서 책을 할인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총 30%를 할인받을 수 있는데, 20%는 순천시에서 지원하고 10%는 지역 서점에서 지원한다.
순천시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은 각각 다른 특색을 지닌다. 순천 기적의도서관이 어린이가 중심이 되는 곳이라면 연향도서관은 청소년이 이용하기 좋은 곳이다. 조례호수도서관은 환경을 테마로 운영하며 해룡농어촌도서관은 농어촌 관련 콘텐츠를 강화한 곳이다. 삼산도서관은 성인이 이용하기 좋은 도서관으로 운영한다.
▲그림책도서관
시립 도서관 중 그림책도서관은 전국 최초의 그림책 도서관으로, 2014년 문을 열었다. 원래 중앙도서관이었던 곳을 그림책도서관으로 기능을 전환했다. 순천 기적의도서관과 비슷한 연령대를 대상으로 하지만, 그림책과 전시를 강화한 도서관이다. 그림책 원화전과 그림책 아카이브전을 꾸준히 기획해 진행한다. 유료 시설로, 개인 3천 원, 단체 2천 원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기적의도서관 1호가 있는 도시, 그림책 도서관 1호가 있는 도시, 걸어서 10분 내에 작은도서관이 있는 도시, 특색을 지닌 시립 도서관이 있는 도시….
열거한 짧은 말에 함축된 의미는 간단하지 않다. ‘도서관’이라는 살아 있는 존재가 함께하는 삶은, 보다 풍요롭고 재미있고 따뜻하고 행복한 삶이다. 순천시가 그 가능성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