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4호]자신의 영혼을 골목어딘가에서 만나고

 
수원에서 발행하는, ‘골목잡지’라는 부제가 붙은 <사이다>는 2012년 4월에 창간했다. 계간으로 발행하는 ‘무가지’다. 처음 사이다를 만났을 때, 제호가 무척 탐났다.
지금은 발행을 중단했지만, 인천에서 나온 <옐로우>라는 잡지가 제호를 가져가도 괜찮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라는, 고 서영춘 선생의 노래가 떠올라서다.
물론 골목잡지 사이다가 의미하는 것이 인천 앞바다에 떠 있던 그 ‘사이다’는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마을과 마을 등 우리 주변의 수많은 ‘사이’에 관한 이야기를 담으려 만든 잡지다.
중의적 의미로, 이 관계를 톡 쏘는 음료수처럼 청량한 사이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담았다고 한다. 그러니, 인천 앞바다에 떠 있던 것과 전혀 관련이 없지는 않다. 지구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관계’에 관한 고민을 잘 담아낸 제호다. 호기심도 불러일으키고 말이다.
사이다가 근거지로 선택한 행궁동은 잡지가 담은 색깔과 무척 닮았다. 처음 찾은 사람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세월에 곰삭은 오래전 시간이 현대와 교묘하게 얽혀 무척 매력적인 향취를 품어 낸다.
최근에 개봉했던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영화를 촬영한 장소다. 함께 동행한 에디터는 이곳저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영화 이야기를 꺼냈다. 난 영화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이 맞고 그때가 틀린 건지, 지금이 틀리고 그때가 맞는 건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다만 성 안 동네, 행궁동은 무엇인가를 하고 싶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그 행궁동의 오래된 한옥을 수리해 사이다가 입주했다. 천정을 없앤 내부에서는 제멋대로 굽은 서까래가 여전히 용을 쓰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접한 도로보다 살짝 낮은 곳에 야트막한 지붕을 얹은 한옥은 겸손한 느낌을 담은 안정감을 주었다.
아무리 세월의 무게가 짓눌러도, 충분히 견딜 수 있다는 당당함도 느껴진다.


 


 
 
골목잡지 사이다를 발행하는 곳은 (주)더페이퍼다. 기획디자인 회사로 1997년에 창업했으니 곧 20년이다. 이 회사 대표이사 겸 사이다 편집장을 맡은 최서영 씨는 스스로를 ‘도시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서울이 고향이고 결혼 전까지 직장생활도 서울에서 했던 사람인데 그렇다.
“결혼하고 수원에서 살면서도 이곳에 계속 살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수원에 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가 계속 살거면 ‘내 삶이 곧 일이 되는 걸 찾아야겠다.’라고 생각한 거죠.”
크게 ‘문화’라는 개념으로 접근했고 주변 사람들과 ‘스터디 모임’을 만들어서 학습을 시작했다. 그 테두리 안에서 다양한 고민이 이루어졌고 최 편집장은 ‘잡지를 만들어야겠다.’라고 결심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오랫동안 살아온 큰 도시에서 우리 이야기를 담는 게 없다는 건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돈이었는데, 당시 우리 회사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의 50%를 내놓겠다고 생각했지요.”
마음을 먹은 후에는 주변 잡지사와 신문사를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했다.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최 대표를 말렸다. 이미 앞서 잡지를 창간해 5년 정도 운영하다가 손을 든 한 지인은 그 과정에서 집도 팔아먹었다며 뜯어말렸다. 잡지를 창간하겠다는 지인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며 어깨를 토닥여 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내게도 “정말 꼴 보기 싫은 부잣집 아이에게 잡지를 만들라 꼬드기면, 삼대가 써도 남을 재산을 한 번에 날려 먹게 만들 수 있다.”라며 말린 사람이 있었다.
산업적 측면에서 잡지가 지닌 ‘노동 집약적 구조’를 엿볼 수 있는 말이다. 노동집약적이라는 말은 곧 막대한 자본이 투여된다는 의미다. 그렇게 생산한 제품(잡지)이 현대 사회에서 엄청난 부가가치를 약속해 주는 필수재가 아니라는 건 순환의 문제를 낳는다. 제3세계 국가로 공장을 옮겨 그릇을 착취하지 않는 이상,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만들어 내기란 녹록지 않다는 얘기다.
“기존 전통 방식의 생산과 유통이라면 문제가 있겠지만, 저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했어요. 우선, 잡지학교를 열어서 10개월 정도 강의를 진행했고요. 그렇게 사람을 모았지요. 유가지가 아니라 무가지로 잡지를 창간했으니까 원고료는 없었어요. 주변에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람 등 자원을 모았어요. 무엇보다 이건 ‘일’이 아니니까요. 하고 싶은 사람이 모여서 만든 결과물인 거죠.”
최서영 대표의 이런 방식은 사이다가 기존 산업구조 안에 들어가지 않고 그 경계 밖에 존재하도록 만들었다. ‘무가지’라는 특성이 지닌 자유로움이다. 계간지로 창간했지만 매번 시간을 맞춰서 내지 못했고, 심지어는 매년 네 권씩을 만들지 못할 때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 역시 무가지이기 때문이다. 때가 되어 사이다를 기다리는 독자에게 미안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구독료를 받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그 미안함이 덜했다.
 
 
지금도 50명 가까운 지역 자원이 주제와 상황에 따라 사이다 제작에 참여한다. 초창기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중심 기획은 (주)페이퍼 내부 구성원이 생산하고 나머지 콘텐츠는 주제에 맞는 글쓰기와 사진찍기를 외부 필진에게 의뢰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게 있어요. 처음 사이다를 창간했을 때부터 방향성은 달라진 게 없지요. 우리 동네 이야기, 그 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니까요. 그런데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정형화되는 것 같아요. 처음 사이다가 나왔을 때는 디자인 회사에서 만든 것 같지 않고, 약간 어설픈 틈이 있었거든요. 그것이 사이다만의 톤을 만들었고요. 근데 지금은 잘 정리되고 안정적인데 오히려 그게 더 아쉽더라고요.”
최서영 편집장이 이야기하는 아쉬운 점이 무엇인지는 쉽게 알아먹을 수 있었다. 삶이 살아 있는 도시 골목과 그 안에 사람 이야기를 기록하는 잡지가, 바로 그 골목을 닮아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예쁜 진열장에 진열해 둔 ‘상품’이 아니기를 원한다.
“그런 점 때문에 무료로 배포하는 거예요. 5,000부 정도 인쇄하죠. 근데 우리가 만약에 유료로 만들어서 독자에게만 전달한다고 하면…. 글쎄요, 한 500부 정도 나갈까요? 그렇게 힘들게 에너지를 쏟아부어서 만드는데 너무 아깝잖아요.” 
그것이 무슨 마음인지 잘 안다. 월간 토마토 독자가 지금의 절반도 되지 않았던 초창기에 힘들게 만들어 냈거나 아니면 더 많은 사람이 읽고 의미를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콘텐츠가 있다. 그런 콘텐츠를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여 다시 한 번 월간 토마토에 소개하는 마음도 같은 마음에서다. 최서영 편집장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도 무료로 배포하는 잡지를 만들었어야 했나, 생각했다. 천성적으로 귀가 얇은 것이 문제다.
사이다는 이미 구력이 만만치 않은 (주)페이퍼라는 회사에서 발행하는 잡지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지금도 페이퍼 수익금을 사이다 제작하는 데 써요. 그래도 작년과 재작년에는 집에서도 가져다 썼는데, 지금은 그렇지는 않아요. 사이다를 꾸준히 제작하면서 우리가 생산하는 콘텐츠에 세상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일이 만들어지거든요.”
 


 
사이다가 골목을 취재하면서 만나는 지역 이야기 중, 사이다에 담기에는 너무 광범위하지만 꼭 기록해 두어야 할 이야기가 있다. 이런 이야기는 수원시나 문화재단 등에 그 기록의 당위성을 주장한다. 합리적 제안과 사이다가 지금까지 보여 준 결과물은, 시나 재단 등이 이 주장을 수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한국 전쟁 당시에 수많은 실향민이 경기도에 정착했고 그중에 특히 경기 남부에 많이 계시거든요. 그분들이 이제 나이가 있어서 빨리 기록하지 않으면 모두 잊히니까 기록해 둘 것을 제안했고 ‘경기도메모리DB구축사업’과 연계해 단행본을 만들어 냈죠. 또 최근에는 옛날 ‘수여선’이라는 철도가 지났던 마을을 취재하게 되었어요. 여주에서, 수원, 인천, 서울을 연결했던 철도였죠. 이와 관련한 기록을 제안했어요. 이미 1972년에 폐선했지만 당시 철도 기관사가 많이 모여 살았던 마을을 사이다가 취재하게 된 것이지요.”
사이다에서 담아내는 콘텐츠는 이런 측면에서 무한 확장성을 지녔다. 중요한 것은 이 기록의 중요성을 지역사회, 특히 가장 안정적인 재정과 인력을 지닌 정책 결정, 집행 기관이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사이다가 이와 관련한 사업 파트너로서 확실한 입지를 구축할 만큼의 성과를 보여 주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결과물을 차근차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사이다를 제작할 때 참여하는 지역의 자원은 이런 일련의 작업에도 전문가로서 지위를 갖고 참여한다. 이렇게 구성한 팀을 최서영 편집장은 ‘드림팀’이라고 표현했다. ‘매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매개’로서 가치를 지닌다. 그 가치를 최대 역량으로 끌어올리는 구실을 제대로 해내고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월간 토마토는 너무 폐쇄적인 속성을 지닌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아니면 유가지와 무가지가 갖는 태생적 성향의 차이 때문인지 헛갈린다.
최서영 편집장은 이 상황에서 내년에 ‘스토리텔링형 여행 잡지’를 창간할 계획이라고 언질을 준다. 제대로 된 잡지를 발행할 만큼 빵빵한 인적 자원을 확보했다고 자신한다. 내년 2016년은 ‘수원화성방문의해’다. 수원화성 축성 220주년을 기념한 프로젝트다. 빠르다. 사이다와 지역의 밀착성은 여러 측면에서 강력했다. 잡지가 담고 있는 콘텐츠뿐만 아니라 그를 기반으로 만들어 내는 다양한 2차 사업이 왕성하고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철저하게 상호적이었다.
“제가 일을 하면 확장해 나가는 것이 병적이에요. 저만 마음이 바쁜 거지요. 계속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만들어요. 필요하면 시장 단독 면담 요청해서 만나서 할 얘기를 다 하죠.”
부끄러웠다. 점점 더 많은 일을 하려고 움직이는 편집장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일을 줄일 것인가를 고민하는 편집장의 차이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조언을 해 주었다. 기획팀장보다 더 급하게 뽑아야 할 사람은 운전해 주고, 엄청난 일정을 정리해 줄 비서일 듯하다고 말이다. 그것도 크게 웃으면서, 큰 소리로 당당하게 말했다.
 
사이다가 창간 때부터 손에 쥐고 놓지 않는 발행 목적은 기록을 통한 발간물 형태로만 구현되지는 않는다. 지역에서 일종의 씽크 탱크나 정책 기획 집단으로서 기능을 수행한다. 요즘 유행하는 디자인 씽킹이 지역에 기반을 두고 올바른 철학, 방향성과 결합했을 때 어떤 일을 펼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였다.


지역의 다양한 기관에서 매년 수없이 쏟아 내는 비매품 발간물을 모아 정리해 둔 ‘지역 역사 · 문화 작은뿌리 도서관’을 사무실 한쪽에 마련해 둔 것은 아주 소소한 시도에 불과하다. 우연히 접한 수많은 발간물 중에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것이 많았는데, 시민에게 제대로 노출도 되지 않은 채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다고 한다. 최서영 편집장은 이런 발간물을 한곳에 모아 도서관을 만들었다.


“우리가 먼저 제안하는 사업도 있지만 사이다가 지닌 성격이나 느낌을 아는 기관에서 의뢰가 많이 오기도 해요. 대표적인 예가 ‘세월호 1주기 전시’였어요. 우리가 전시기획 전문 업체가 아니지만 일반적인 전시가 아닌 만큼 사이다에서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평소에 사이다와 관계를 맺었던 심리연구소 분들과 사진 작가, 대학 교수, 연구자 등을 불러 모아 드림팀을 구성했지요. 사이다에 대한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는 거죠.”
장기적인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2013년 수원 행궁동은 한 달 동안 아예 자동차가 들어가지 못했다. 2013 수원 세계 생태교통 축제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이 프로젝트 후속작업으로 올해는 ‘2015생태교통체험학교 골목행차’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도 사이다에서 맡아 진행했다. 단순하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과업은 아니었다. CI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매뉴얼을 만들고 골목해설사를 활용해 단순 교육이 아니라 투어프로그램 시스템을 안정화시키는 일련의 작업을 진행했다. 단순한 투어가 아닌 생태교통이 지닌 사회적 가치를 그 투어에 담아야 하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최근 최서영 대표가 관심을 두는 지점은 ‘청년’이다. 많은 도시에서 ‘청년’에 관심을 두지만 서울과 무척 가까운 수원은 특히 많은 고민 지점이 있다.
“지역에 청년이 없어요. 모두 서울에 직장을 잡으려 하고 놀기도 서울에서 놀죠. 가까우니까요. 공간이 문제일까, 사람이 문제일까를 고민하다가 일단 공간을 만들어 놓고 자연스럽게 청년들이 모이게 하자고 생각했죠. 청년이 수원에 들어오려는데 다리가 없잖아요. 우리가 만든 공간이 그런 다리 구실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탄생한 프로그램이 ‘평상’이다. ‘평상 위 상상’의 줄임 말이다. ‘평상’이 활용한 공간은 사이다 사무실 바로 옆, 대로에 접해 있는 상가 건물 1층을 임대해 만들었다. 1년간 운영할 수 있는 운영 자금은 경기문화재단에서 ‘별별예술프로젝트’ 사업비를 받아 충당했다. 청년 문화예술 네트워크 ‘평상’은 그렇게 시작했다.


작은 사무실에는 정말 평상마루를 짜서 넣었다. 동네 어귀에 놓인 평상에 아무나 앉아 잠깐 쉬어 갔던 것처럼, 편안한 공간이 되기를 희망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많은 청년이 이곳을 들락거리며 놀았다. ‘팟캐스트’도 만들고 ‘구글 활용법’ 강의도 하고 ‘상상평상’이라는 인쇄물도 발행했다. 사이다에 소개한 적이 있는, 골목길 오래된 여인숙으로 MT도 떠났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에서 동네 사람과 그리고 청년, 지역 사이에 관계 맺기라는 사이다의 철학이 관통했다.
“지원을 받아서 일회성으로 사업을 마무리 하면 그냥 이벤트밖에는 안되잖아요. 그래서 시장을 만났어요. 지역에서 청년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청년몰과 같은 사업을 제안했지요. 그리고 그게 받아들여져서 지금 한창 지역의 청년문제와 관련한 정책을 수립 중이에요.”


현재 사이다를 발행하는 (주)페이퍼 직원은 대표를 포함해 여덟 명이다. 두 명을 더 뽑으려고 채용공고를 낸 상태다. 이 인원이 모든 일을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지역의 인적 자원과 결합해 프로젝트 팀을 구성한다고 해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기본적으로 투여해야 할 에너지라는 것이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한다. 최서영 편집장과 함께 사이다의 철학을 지역에서 구현해 내는 동료들에게 묻고 싶었다. 얼마나 ‘동의’하는지, 힘들지 않은지, 그러나 관뒀다. 작년에 만났던 구성원을 올해 그곳에서 다시 만난 것이 그저 반가웠다.


“토마토도 그렇고, 사이다도 그렇고 한 번 태어난 이상 생명이 있어요. 저도 얘가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어요. 잘하든, 못하든 한 번 생긴 건 없어지기 어렵잖아요. 물론 산업으로 보면 잡지의 미래는 어둡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사이다를 산업으로 보지 않거든요. 사이다는 그냥 사이다예요. 사이다를 일로 만난 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짧지 않은 시간 이어진 대화를 정리하며 신발을 구겨 신고 마당에 내려섰다. 이곳에서 눈이 내리는 걸 보면 예쁘겠다고 생각하며 처마를 보았을 때 그런 글귀를 발견했다.
‘자신의 영혼을 골목 어딘가에서 만나고 누군가에게 도둑질당한 삶의 시곗바늘을 되찾게 될지도 모른다’
난 나의 영혼을 만났는가, 난 내 삶의 시곗바늘을 도둑맞지 않고 잘 간수하고 있는가, 난 누군가의 삶의 시곗바늘을 도둑질하고 있지는 않은가. 


 
글 사진 이용원(yoleew@naver.com) 녹취 이혜정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