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0호] 선생님 숙제했어요

숙제한 사람: 엄은솔, 이수연  |  숙제한 날: 8월 31일

은솔이는 자신 있게 자긴 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그러면서 종일 잘 생각을 하더라고요. 선생님 숙제를 완벽하게 하도록 수연이가 출동했어요. 9시 30분에 은솔이 집에 들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은솔이를 지켜봤어요. 은솔이는 10분에 한 번씩 자세를 바꾸더라고요. 10분 이상 같은 자세를 한 적이 없었어요. 그러다 은솔이가 오랫동안 가만히 있을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때면 책상을 툭툭 쳤어요. 은솔이가 자주 잠들었거든요. 은솔이는 감옥에 갇힌 것 같다며 괴로워했어요. 저는 어쩌다 교도관이 되었지요. 오후 세 시까지 그렇게 함께 했어요. 나른한 오후였어요. 어쩌다 저도 은솔이 옆에 누웠어요. 그러다 잠이 들었어요.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잤나 봐요. 자고 일어나 모든 것을 파하고 정리했어요. 선생님.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하라’고 강요받았던 모양이에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어요. 다음은 은솔이가 보내는 편지예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하루는 정말 길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니 도리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루라는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을 하고 있구나. 매일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작하고 그만하기를 반복하면서도 더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고 자신을 다그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선생님, 꼭 많은 일을 해낸 날만을 잘 보낸 하루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오늘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은 어른들의 말처럼 정말로 덜 소중히 보낸 날인 걸까요?”


글 사진 월간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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