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0호] 선생님 숙제했어요

숙제한 사람: 이수연  |  숙제한 날: 9월 21일

거제도로 3박 4일간 출장 갈 일이 있었어요. 4일째 되는 날, 숙소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가지고 온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갔어요. 자전거를 타고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나갔어요. 숙소에서 조금만 나가면 바다가 보였어요. 머물면서 한 번도 이쪽으로 와보지 못해서 마음이 들떴어요. 그렇게 바다를 따라 어디까지 갔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다 길옆에 있는 밭을 발견했어요. 선생님 생각이 났어요. 시간을 보니 아홉 시가 넘은 시간이었어요. 밭을 보고 조금 망설이다가 그냥 폴짝 들어갔어요.

욱 시원하게 갈라진 땅이 딱딱할까 봐 발을 움츠렸는데 아니더라고요. 촉촉하고 차가운 기운이 발바닥을 감싸고 몸으로 천천히 올라왔어요. 발에 힘을 주면 바닥이 푹 꺼졌어요. 그렇게 이쪽저쪽 남의 밭을 걷다가 문득 지나다니는 사람이 신경 쓰여서 고개를 홱 돌렸어요. 그런데요. 선생님. 제 쪽을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머쓱해져서 고개를 숙이고 손을 뻗어서 흙을 만지작거렸어요. 킁킁 냄새도 맡았는데, 바다 냄새가 났어요. 바다 냄새가 땅에도 스며든 것 같았어요. 그렇게 한동안 맨발로 흙을 밟다가 양말을 신고 땅을 밟았어요. 흙은 제 발을 안아주는 것 같았는데, 콘크리트 바닥은 제 발을 밀어내는 것 같았어요. 도시에서 사람들이 외로운 이유가 콘크리트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어요.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도 한동안 땅의 기운이 가시지 않았어요. 발바닥에 오랫동안 그 기운이 남아 있었어요. 숙소로 돌아와 양말을 벗는데, 발바닥이 흙색이 되어 있었어요. 어른이 된 이후로 그렇게 맨발로 다녀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또 오래 발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글 사진 월간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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