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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90호] 전통혼례를 재현하다
매달 셋째주 토요일에는 대흥동 산호여인숙 골목 일대에서 짜투리시장이 열린다. 지난 9월 20일은 가을 들어 첫 번째 짜투리시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이날따라 유독 맑은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어우러져 짜투리시장 일대가 더욱 흥겹게 느껴진다. 산호여인숙 앞 골목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빈티지 소품, 팔찌, 천연화장품 등 각양각색의 물품들을 판매하는 개성 넘치는 판매자와 구매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이 꽉 찼다.
한편, 짜투리시장 맞은편에는 혼례 준비가 한창이다. 이 날은 열두 시부터 시작된 짜투리시장 이외에도 연극협동조합 나무시어터가 기획한 전통혼례재현극이 4시부터 예정돼 있었다. 전통혼례재현극이 아니라 진짜 혼례를 앞둔 듯, 산호여인숙 앞 골목 일대는 이른 오후부터 들썩들썩 거린다. 한켠에서 흥겨운 풍물놀이 연습이 한창인 모습, 한복을 입은 꼬마들이 까르르 웃으며 뛰어다니는 모습 등이 흡사 어느 잔칫집의 한 장면을 닮았다.
이윽고 네 시가 다 되어가자, 하객을 자처한 구경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혼례는 나무시어터의 앞놀이마당 하회별신굿으로 그 시작을 알렸다. 이어 신랑이 많은 이의 환호 속에 가마를 타고 입장했다. 사회를 맡은 오재진 씨는 “중간중간 어려운 부분은 현대식으로 재해석하고, 가부장적인 유습을 청산하며 개인주의를 탈피한 동시에 가족주의를 살린 전통혼례로 진행될 예정입니다.”라며 이 날의 행사를 소개했다.
“신부 입장!” 하객들의 커다란 외침 속에 오늘의 신부 민양운씨가 가마를 타고 입장했다. 오늘 혼례의 주인공은 민양운 풀뿌리여성마을숲 대표와 그의 남편 김종섭 씨. 결혼 후 22년만에 치르는 혼례에 쑥스러움과 기대감, 그리고 긴장감이 뒤섞인 표정이 영락없는 새신랑, 새신부다. 신랑, 신부가 입장한 뒤에는 정화의식이 있었다. 혼례청과 신랑, 신부의 앞날을 밝혀 준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어서 백년가약을 기원하는 맞절을 했다. 서예가 김진호 씨가 성스럽고 기쁜 소식을 하늘에 고하는 고천문 낭독을 위해 신랑신부의 앞에 섰다. “본래 ‘유세차~’로 시작되지만 제가 현대에 맞게 뜯어고쳤습니다. 2014년 9월 20날 대흥동 산호여인숙 골목에서 두 사람이 22주년만에 다시 한번 혼인을 올린다하니 경사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라고 운을 떼며 두 사람의 혼인을 축복했다. 이후 신랑, 신부가 서로가 마신 술을 합해 다시 나눠 마시며 일심동체가 되었음을 알렸다. 다음, 민양운, 김종섭 부부의 딸 김단비씨가 축하의 말을 전하기 위해 마이크 앞에 섰다. “어머니, 아버지가 극과 극의 다른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제가 다 자랄 때까지 잘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처럼만 건강하게 살아주시고, 두 분이서 좋은 곳도 많이 다니시며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김단비씨의 축사에 초례청 앞에 선 부부와 혼례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축하마당으로 판소리 명인 이명욱씨가 ‘사랑가’와 ‘가시버시 사랑’을 부르며 부부의 앞날을 축복했다. 하회별신굿 탈놀이를 축무로 혼례식이 마무리됐다.
민양운 대표는 “나무시어터에서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재밌겠다는 생각에 선뜻 신청했어요. 마침 오는 10월 4일이 결혼 22주년이라 의미도 있었고요. 남편과 워낙 성격이 극과 극이라 살면서 많은 일이 있었는데, 신청 후 이 날을 기다리는 한 달여 동안 지난 날을 반추하는 시간이 됐습니다.”라고 말하며 “혼례식이 힘들긴 했지만, 제가 아는 많은 분이 지켜봐주고 축하해줘서 너무 기뻤고, 이를 계기로 인생의 제2막이 시작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라고 전통혼례식에 참여한 소회를 밝혔다. 혼례재현식이 모두 끝난 뒤에는 혼례를 지켜본 하객들이 다함께 옹기종기 모여 잔치국수를 나눠 먹었다. 어떤 이들은 잔치국수와 파전에 거나하게 막걸리를 곁들이기도 했다. 산호여인숙은 음식을 준비하는 손길로 여느 잔칫집 못지않게 분주한 모습이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진다. 조금은 특별했던 가을의 첫 짜투리시장이 어느새 파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