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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90호] 한뼘그림책 북콘서트
검게 타버린 노란 깃발을 차마 마주하지 못하고 인터넷 창을 닫아버렸다. 두려웠다.
‘이제 그만하라.’라고 외치는 비난의 목소리와 무자비한 욕설이,
그렇게 외치는 사람들이 두려웠던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다.’라며 방관해버리는 스스로의 모습이 두려웠다.
불편함이 싫었고, 힘듦이 무서웠다.
그렇게 못 본 척, 못 들은 척 검게 타버린 노란 깃발을 외면했다.
65명의 어린이 동화, 동시, 그림 작가가 모였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세상을 향해 작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 뼘 남짓 되는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동화와 동시를 채웠다. 무자비한 욕설과 비난의 목소리를 내는 이에게 깨끗하고 선명한 목소리로 4월 16일, 그날의 일과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차곡차곡 한 장씩 글과 그림이 모였다. 그렇게 모인 한뼘 그림은 ‘세월호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한데 모여 한뼘그림책이 됐고, 팔랑팔랑 바람에 휘날리며 대한민국 곳곳에 한뼘갤러리를 펼쳤다. 서울 광화문에서 시작한 한뼘갤러리는 안산, 부천, 원주, 전주, 부산, 제주 등 여러 지역을 거쳐 9월 11일 대전에 펼쳐졌다. 11일과 12일은 대전시청 북문에서 13일과 14일은 대전 은행동 은행교에서 한뼘그림을 전시했다. 한뼘갤러리와 함께 9월 13일 토요일 오후 4시, 대전 대흥동에 자리한 계룡문고에서는 한뼘그림책 북 콘서트를 진행했다.
한뼘그림이 줄줄이 은행교 다리 난간에 자리 잡았다. 다리 끝에는 작은 테이블 몇 개를 펼쳐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그림을 보다 다리 끝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지난 7월 대흥동 새누리당사 앞에서 일인 시위를 벌이던 ‘엄마의 목소리’ 최영연 씨를 다시 만났다. 반갑게 인사하는 그녀는 언제나처럼 씩씩하게 다리를 오가며 사람들에게 서명해달라고 외쳤다. 테이블에 놓인 서명 종이 위에 이름을 채웠다. 몇 번째인지 모를 서명. 마주하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심정으로 또 한 번 이름을 적었다.
은행교에서 계룡문고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계룡문고 안 행사장은 아이와 어른들로 북적거렸다. 이날 열린 북 콘서트에서는 ‘세월호 이야기’를 만든 65명 한뼘작가들 중 네 명의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김환영, 정재은 동화작가와 유하정 동시 작가, 안효순 어린이 그림 작가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만든 한뼘 그림과 이야기를 소개했다.
“처음부터 목적을 가지고 65명 작가가 한 번에 모인 것은 아니에요. 처음에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작지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몇몇 어린이 동화, 동시, 그림 작가가 모였어요. 그분들의 지인, 또 어린이 동화, 동시 작가 온라인 카페에서 입소문을 타고 관심 두던 작가들이 하나둘 모이게 됐죠. 사실 이렇게 큰 반응은 예상치 못했어요. 서울 광화문에서 그림과 글을 전시하고 끝내려고 했는데, 여러 지역에서 함께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7월 중순부터 시작한 전시가 벌써 두 달째 여러 지역에서 계속되고 있어요. 고마운 마음이 커요.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요.”
네 명 작가와 함께 안산 단원고 2학년 3반 유예은 학생 어머니가 행사장을 찾았다. 예은이 엄마는 우리가 밝혀야 할 진실은 무엇인지, 이를 위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담담하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정부는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고 숨기고 조작했습니다. 언론은 진실을 은폐했고, 유가족을 괴물로 만들어 버렸죠. 보상은 필요치 않습니다. 진실을 밝혀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북 콘서트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한 시간가량 진행했다. 그림자 연극과 노란 엽서 꾸미기 등 아이들이 쉽게 이해하고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행사가 끝나갈 무렵 한 남자아이가 노란 엽서에 쓴 편지를 사람들에게 읽어 주었다.
“세월호야 미안해. 욕심 많은 어른 때문에 네가 바다에 빠져버렸어. 하지만 세상에는 착한 어른도 많으니 너무 원망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