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4호] <특집> 잡지의 미래를 묻다

 
연말 특집을 기획하며 적잖은 고민을 했다. ‘연말은 정리, 연초는 계획’이라는 습관적인 사고가 머리를 지배했다. 그 틀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가지 못했다. 편집회의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끊임없는 자기 비하와 자기 학대 이후에는 늘 고성이 오갔다. 그 끝은 무기력한 침묵이 자리했다. 편집회의는 매체를 만드는 이에게는 형벌과도 같은 시간이다. 그 형벌이 조금 더 무거웠던 것은 올해 발행하는 마지막 호라는 부담때문이었다.
 
하루하루 일상을 사는 사람에게 12월의 삶이 크게 다를 것은 없다. ‘크리스마스’라는, 우리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시간이 설렘을 주거나 우리가 설정한 1년 12개월 중 마지막 한 달이라는 것이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뿐, 일상적인 삶이 별다를 것은 없다. 정말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어제의 삶과 달리 오늘의 삶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계기’라는 것은 때론 의지가 박약한 이들에게는 훌륭한 동기부여일 수 있다는 사실까지 애써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측면에서 내년은 월간 토마토에게도 특별한 시간이다. 5월이면 창간한 지 만 9년이고 그 시점을 지나는 순간 10년 차에 접어든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10년이라는 시간도 큰 의미는 없다. 어차피 매달 월간 토마토를 발행한다는 행위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지나온 불확실한 시간을 실체가 분명한 양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의미는 있다. 온통 ‘시간’의 개념이 머릿속을 맴돌던 그때, 우리가 선택한 기획은 ‘잡지의 미래를 묻다’였다. 그것이 출판이든 아니면 매체든, 다른 수단이 아닌 종이 위에 인쇄하는 전통적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지닌 ‘감수성’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과학적 근거도 없으면서 이 시대에 ‘종이 감수성’이 사라진다면, 더는 사람 냄새 나는 세상이 아닐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기록의 보존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디지털 저장 기기가 지닌 태생적 한계를 이야기하면서 종이만큼 완벽하고 안전한 저장매체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대적 우위론을 펼친다. 그럼에도 놀랄 정도로 짧은 시간에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끊임없이 진화하는 디지털 영역을 바라보며 태연자약하기란 힘겹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일을 수행하는 사람을 찾아보겠다는 마음을 먹은 건, 어쩌면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기획을 편집회의에 꺼내 놓고도 갑론을박이 오갔다. 월간 토마토 독자에게 이것이 범용적으로 다가설 기획이냐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위험부담이 크지만, 우리 매체를 선택한 독자에게 ‘잡지’ 혹은 ‘종이 매체’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이것이 우리만의 착각일 가능성도 농후하지만 기획을 뒤집기에 ‘형벌’은 너무도 가혹했다.
 
이번 기획을 통해 광주에 근거지를 두고 잡지를 발행하는 <전라도닷컴>과 수원에서 골목잡지라는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며 계간으로 발행하는 <사이다>, 홍대앞에서 매월 발행하며 서울에도 지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스트리트 H> 세 곳을 방문해 관계자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또 잡지의 미래를 묻는 기획인 만큼 잡지에서 일하고 싶거나 현재 잡지를 발행하거나, 잡지를 발행하는 데 참여하는 20대 세 명을 한자리에 초청해 그들의 생각을 들었다. 어쩌면 이 기획은 지난 7월, 제주도 컨퍼런스에 참여했을 때 잉태한 건지도 모른다. 제주 컨퍼런스는 지역출판과 지역잡지 활성화를 주제로 열렸다. 지역에서 출판 내지 잡지를 발행하는 사람이 모여 경험을 나누었다. ‘지역문화잡지연대’가 이 컨퍼런스 중심 축을 형성했다. 각 잡지사가 발제를 맡았다. 모르는 사이도 아니었고 일상적 교류를 통해 어떻게 잡지를 만드는지도 잘 알았다. 그럼에도 컨퍼런스가 끝난 뒤에 큰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멍했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그 여운은 제법 오래갔다. 컨퍼런스가 열렸을 때, 우리 월간 토마토는 99호를 한창 만드는 중이었다. 100호를 코앞에 두고 껍데기에 불과한 그 숫자에 취해 비틀거리며 하늘을 향해 빈주먹질을 해 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100호도 만들지 못하고 넘어질 줄 알았느냐?’며 말이다. 그리곤 ‘불안감과 초조함’은 100호 발행이라는 객관적 사실 뒤에 가만히 숨겨 둔 채 애써 무시했다.
컨퍼런스는 그 사실을 명확하게 만들어 주었다. 매달 발행하는 한 권 한 권이 이미 문화인류학 분야의 훌륭한 출판물이라는 평가를 받는 잡지,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다양한 문화예술 행위가 벌어지는 공간을 지역으로 해석해 긴 시간을 내다보며, 졸가리가 분명한 아카이브 작업을, 세련된 디자인으로 꿋꿋하게 펼치는 잡지, 마을 골목골목을 저인망어선처럼 샅샅이 훑어가며 이 시대 기록이라는 행위가 지닌 새로운 의미를 드러낸 잡지까지. 그 사이에서 표류하는 우리 <월간 토마토>의 애매모호한 정체성이 불안감과 초조함의 원인이었다.
 
형벌과도 같은 ‘편집회의’ 시간은 이미 99호를 준비하기 한참 전부터 길어지고 있었지만 주체의 피로 누적과 소진에만 원인을 돌렸다. 사실 우리는 좌표를 잃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좌표 따위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당위성에 기대어 누구도 쉽게 부정할 수 없는 선언적 명제에만 매달렸다. 암흑천지 공간 안에 갇힌 채, 손으로 더듬적거리며 10년 가까운 시간을 흘려보냈다. 애매모호함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 분명하다. 2016년은 분명 월간 토마토에는 계기다. 매년 1월호를 내면서 버릇처럼, 그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잡지를 리뉴얼 했다. 2016년은 창간 9주년을 넘어 10년 차로 접어드는 해다. 별 다를 것 없는 시간의 흐름이지만 ‘계기’로 삼아 볼 만하다. 이를 준비하는 12월을 맞이하며 ‘순례’를 떠났다. 만나는 이들에게 ‘잡지의 미래’를 물으며 그 틈에서 슬며시 ‘월간 토마토의 미래’를 발견하고 싶었다. 12월 호 특집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용원(yolee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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