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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9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루손섬에 가다
슬픔에 강해지는 법은 아마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다. 키앙안에서 추억이 아직도 가득한데 내 몸은 지금 바타드 사이먼 산장에 있다. 아침에 사진도 여러 장 찍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헤어졌던 키앙안. 약속했다, 꼭 다시 돌아가기로!
바타드의 계단식 논은 나가카단 계단식 논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더 웅장하고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계단식 논이었다. 사이먼 산장에서 바로 보이는 모습 역시 너무 웅장해서 그 기에 눌리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새로운 곳에 와서 그 분위기에 적응하고 있을 때쯤 다 같이 모여서 팀을 짜고 게임을 했다. 지금까지 했던 공정여행에 대해 종이에 적는 것이었는데, 우리 팀이 많이 뒤처졌다. 일주일 가까이 공정여행을 하고 있는데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스스로 부끄러웠다.
공정여행은 다른 패키지 여행과는 달리 정말 공정하게 하는 여행이다. 우리만이 아니라 현지인들도 공감하고 서로 교감하면서 하는 여행이다. 그동안 알았던 공정여행에 대해 말해 보자면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해 왔던 공정여행을 다시 떠올리면 생각보다 더 많은 곳에 공정하게 여행을 했던 것 같다.
게임을 하는 이순간이 지금까지 해 온 여행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기에 정말 좋은 순간이었다. 어쩌면 이런 순간이 내가 바랐던 공정여행의 순간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다른 단순한 여행들은 좋은 곳에서 자고 좋은 곳만 보고 지내는 자기 만족 여행인 반면에 우리는 그보다 현지인과 소통하고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서로를 위한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
새벽 다섯 시 반쯤 우리 열아홉 명은 모두 건강하게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도착한 한국은 겨울의 추운 바람으로 우리를 반겨 주었다. 12박 13일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크게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여행에 함께해 준 모든 동생, 언니, 오빠, 선생님들께 정말 감사했다. 사실 여행을 가기 전에는 수많은 고민과 걱정이 있었다
여행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계단식 논을 배경으로
여행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친해져서 교감할 수 있을까, 단순히 시간만 보내다가 끝나는 여행은 아닐까. 이외에도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필리핀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떠나기 전 걱정은 단 한 번도 생각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순간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해발 2천 미터에 위치한 마을을 향한 트래킹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 느끼는 감정이 다르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서로가 받는 느낌을 단순히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할 수 있었던 시간이 많았다. 공정여행이 아니었다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순간도 너무나 많았다. 홈스테이 가족들과의 식사와 대화 그리고 취미를 공유할 수 있었던 순간들, 단순히 눈에만 담는 것이 아닌 직접 계단식 논 복원을 통해서 몸과 마음에 담을 수 있게 해 준 순간들,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많은 필리핀 사람과 인연을 맺고 서로 친구가 될 수 있게 도와준 것 등이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공감만세의 사회공헌으로 운영되는 시티오바칼 어린이집에서 1일 공부방 선생님으로 활동했다.
한국에서 고3이라는 순간은 아마 생각할 것도 제일 많고 어지러운 시기라고 생각한다. 잠시 쉼터라고 생각하고 갔던 여행에서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될 만큼 깊은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고마운 여행이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필리핀이 비록 아직 모두 알지는 못하지만 밝고 좋은 인식으로 바뀔 수 있어서 감사하다. 필리핀에서 만났던 수많은 분과 했던 약속처럼 꼭 필리핀에 가서 모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친구들과 줄지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계단식 논’을 탐방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만난 호진 언니, 학인 오빠 재욱, 하린, 가현, 중원, 지훈, 가람, 다훈, 다빈, 소정, 희선, 사빈, 재형, 지후, 강이까지 그리고 우리 모두를 이끌어 주고 끝까지 함께해 주신 노진호 쌤, 연어 쌤! 이번 여행이 행복했던 이유는 모두가 함께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