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0호] 건강한 체질의 힘

언론매체의 변화에 관해, 그 의미에 관해 들었다. 우리 지역의 언론을 평가하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월간 토마토에 관해 물었다.
김재영 교수는 “월간 토마토가 언론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언론으로서 제 역할을 하라는 질책은 아니었다.
그는 월간 토마토가 언론으로 기능하기보다는 대전 문화의 거점이 되는 플랫폼이기를 바랐다.

 

대전에는 언제 오셨나요. 어떤 계기로 충남대학교 교수가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유학 갔을 때만 빼고는 서울을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유학 다녀와서부터 서울이 답답하고 싫더라고요. MBC에서 일하다가 처음 교수가 된 곳이 세종대학교예요. 그러다 2003년에 충남대학교에 올 기회가 닿아 아예 대전에서 살려고 내려왔어요. 이제 대전이 삶의 터전인데 여전히 휴양 온 것 같은 기분이에요. 밤에 대학원 수업이 있을 때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다시 연구실로 돌아와 커피 한잔 하면서 이런 게 행복이구나 생각했어요. 저녁이 있는 삶도 살면서 제 할 일도 하는 삶이죠. 서울에 있을 때는 안 그랬거든요. 애들 잘 때 집에 가는 날도 많았고 어디를 놀러 가더라도 볼 것을 항상 싸 짊어지고 갔어요.

 

 

어째서 대전에서는 그런 삶이 가능할까요? 대전만의 분위기라든가 사람들의 특색 같은 것이 있나요?

대전에 산다고 도시에서 누리지 못하는 혜택은 없어요. 그야말로 서울에 비해 여유로우면서 인프라 자체는 잘 갖춰진 도시예요. 특별하게 느끼는 대전, 대전시민의 기질은 없는 것 같아요. 대전은 편해요. 지역 텃세를 느껴본 적도 없고요.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도 많으니까요.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나왔는데 대전에 동문회가 있을 정도예요.

 

 

외지인이었다가 대전에서 살게 된 언론정보학과 교수님이 보시기에 우리 지역 언론의 상황은 어떻고 특징은 무엇인가요?

한국 사회에서는 언론매체가 ‘견적’이 안 나와요. 특히 지역 인쇄 매체는 구독료 수입만으로 운영하기 어렵고 광고 수입도 한정돼요. 지역 자체에 평생 삶의 기반을 형성할 수 있는 자족 기능이 없으니 이 안에서 언론도 구조적 한계가 있어요. 언론이 잘한다고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그런데 더 아쉬운 점은 언론이 그 ‘견적’ 범위 안에서만 활동한다는 거예요. 장렬하게 열심히 하다가 사망하는 곳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경제적 이해타산을 기준으로 삼아 활동하는 언론은 제대로 된 언론이 아니죠. 저는 언론이 적자를 내면서 해 봤으면 좋겠어요. 아마 교수니까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거겠죠.

 

 

과거 4대 매체라고 했던 것들의 틀이 깨지고 매체의 성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또한, 요즘은 디지털 퍼스트를 넘어서 모바일 퍼스트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변화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시는지요?

 

 

그동안 언론매체들이 변화하려는 시도를 많이 했죠. 이제는 4대 매체 중심 환경은 깨졌어요. 언론 주체의 진입 장벽도 없어졌어요. 과거에는 일정 규모의 돈, 시설, 인력을 갖추지 못하면 언론사 역할을 못 했는데 지금은 아니죠. 일인 미디어 시대가 됐어요. SNS에서 더 신속하게 생생한 뉴스를 확인할 수 있고 전달할 수 있죠. 진입 장벽이 깨진 것은 물론 경쟁구도도 달라졌어요. 언론의 경쟁자는 동종이 아니라 프로 야구 경기도 될 수 있고, 예술의전당, 게임이 될 수도 있어요.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이 언론매체에 공신력을 부여하고는 있지만, 일정 조직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언론이라고 보지는 않아요. 그런 곳은 고루한 느낌마저 들고요.

 

 

요즘의 매체 환경 속에서 교수님은 월간 토마토가 어느 위치에서 어떠한 역할을 한다고 보십니까.

4대 매체로는 할 수 없었던 소통이 현재 매체 환경에서는 가능해요. 소셜 미디어 식의 흐름은 점점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것이 사라지거나 대체된다고 보지는 않아요. 월간 토마토가 왜 오프라인으로 잡지를 낼까 싶지만, 소프트웨어를 담아내는 데 적합한 하드웨어는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여전히 책을 선호하죠. 잡지도 그런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봐요. 그리고 월간 토마토는 한정된 특수한 수요층을 지니고 있습니다. 문화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죠.

 

 

잡지를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전의 문화를 살리기 위한 방편으로 매체를 운영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게 좋아요. 언론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언론은 방편일 뿐이죠. 원래 월간 토마토는 대전의 문화적인 무언가를 집합시키는 플랫폼 구실을 하고 있다고 봐요. 외형은 그렇지 않더라도 플랫폼 전략을 쓰고 있는 거죠.

 

 

그렇다면 교수님은 월간 토마토가 언론의 역할을 한다고 보시는지요?

언론이라는 말에 대응되는 영어 단어는 없어요. 주로 우리나라에서 언론이라고 하면 여론 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걸 말하죠. 월간 토마토에 문화예술정책 관련 내용이 실리지만, 언론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돌아가는 시스템은 언론의 연장선상이지만, 그런 걸 지향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오히려 월간 토마토가 대전 문화의 거점이 되면 좋겠어요. 흩어져 있는 자원을 모아 묶어서 역량을 발휘하는 거죠.

 

 

월간 토마토 100호를 만들면서, 잡지로서 언론으로서 어떻게 기능할 수 있을까 교수님께 묻고 싶었는데 의외의 대답이 나온 것 같습니다.

월간 토마토가 100호를 내는 것은 자연스럽게 느껴져요. 잡지를 보면서 계속 발행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100호를 낸다는 사실보다 놀라운 건 구독자가 천 명 가까이 된다는 거예요. 오래전에 구독자가 5백 명쯤 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더 확장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현재 구독자가 천 명 가까이 된다는 게 예사로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반대로 생각하면, 월간 토마토가 구독자 천 명을 지니지 못할 정도의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까요?

우리나라 시장이 콘텐츠로 승부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에요. 선두주자의 장벽이 높고 틈바구니는 없죠. 정상적인 시장이라고 보지는 않아요. 시장에서 승리하는 쪽은 따로 있어요. 언론도 마찬가지죠. 조선일보 타이틀을 갖고 있으면 성향이 어떻든 간에 사람들이 무서워하죠.

 

 

희망이 없다는 뜻으로도 들립니다.

그 희망을 언론의 장벽이 깨졌다는 점에서 찾아야죠. 개인은 틀릴 수 있지만, 우리는 틀릴 수 없다는 게 만고의 진리거든요. 그동안에는 모일 수 있는 환경, 플랫폼이 없었어요. 과거에는 수능 오류라든지 군내 성폭력 문제가 없었을까요?

 

 

문제를 제기했는데 언론에서 보도를 안 해 주면 조직에서는 따돌림을 받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문제를 제기하면 규합이 되죠. 사회 부조리가 자리 잡을 겨를이 별로 없어요. 이 시대 흐름을 한마디로 하면 ‘Power to the people’이에요. 누구든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사회적 발언권을 가질 수 있어요.

 

 

월간 토마토가 형성할 수 있는 생태계, 시장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월간 토마토는 지역에서 자족할 수 있을까요?

대전의 문화 기반이 취약하다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월간 토마토에서는 꽤 흥미로운 여러 모색을 볼 수 있어요. 월간 토마토가 플랫폼, 근거지 역할을 하는 거예요. 취약한 대전 문화의 잠재적 수요를 끄집어내면서 외연을 넓히는 게 나름대로 시장을 형성하는 단초인 거죠. 월간 토마토는 전형적인 오프라인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시도하는 일 자체는 트렌드에 맞아요.

 

 

100호를 맞이한 월간 토마토에 바라는 것, 기대하는 모습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초심은 있었는데 일하며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생활인이 될 수도 있어요. 초심으로 돌아가 원래 하려던 것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 본령을 천착하라고 100호를 맞는 월간 토마토에 주문하고 싶습니다. 또 소셜미디어 시대에서는 인쇄 부수보다 소셜 미디어 망에 얼마나 흘러가는지가 중요합니다. 월간 토마토가 좀 더 소셜 마인드를 키웠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질타와 응원의 말씀도 부탁드립니다.

저는 신문 일주일 치를 한 번에 몰아서 봐요. 주말이 되면 신문 읽는 것도 일이에요. 다른 매체를 구독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아는 제가 월간 토마토를 구독한 이유는 그 발상이 좋아서, 응원하고 싶어서예요.  돈을 벌려고 했으면 이런 방식으론 안 했을 거라는 확신도 들었고 나름대로 알찬 시도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평소에 월간 토마토를 잘 읽지는 않아요. 그런데 출장 갈 때면 다른 책들과 함께 꼭 챙겨요. 다른 걸 읽다가 시간이 없으면 못 보는 거고요. 그런데 월간 토마토는 한 번 펴면 아주 오래 읽어요. 그렇다고 좋았던 게 뭐냐고 묻는다면 딱히 기억에 남는 것도 없어요. 그게 좋은 것 같아요. 무색무취인데 여운이 있어요. 크게 인기는 없더라도 이 비정상적인 시장에서 성장하기까지 해요. 이것이 나중에는 역사가 되는 거예요. 혹시라도 월간 토마토가 망해서 또 다른 무언가가 나온다고 하면 그때의 문화 환경은 또 다른 거거든요.

 

 

구독자가 천 명 가까이 되고 채용설명회에 50명이 올 정도면 그 무게를 가볍게 여기면 안 돼요. 대단한 거예요. 진심의 힘이라는 게 있잖아요. 건강한 체질은 암암리에 전파되거든요. 월간 토마토에 그러한 힘이 있다고 봐요. 
 

 


글 사진 성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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