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0호] '과학의 도시 대전'에 어울리는 콘텐츠가 필요하다

이벤트가 아닌,
시민 역량 확대와 도시 문제 해결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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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이라는 도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로 이 도시의 ‘정체성 찾기’를 꼽는다. 반골 기질이 뚜렷한 사람 중에는 ‘도시 정체성’이 도대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호들갑인 줄 모르겠다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중도파 정도는 ‘도시 정체성이 없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라며 이런 기초 위에 우리가 원하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면 된다.’라는 궤변같지만 제법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도시 정체성에 관한 논의는 시민 영역에서만 갖고 있는 문제 인식은 아니다. 행정기관도 이런 저런 정책 사업을 통해 이런 문제 인식을 표현한다. ‘대표 축제’를 찾겠다는 의지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인식의 발로다. 한때 이런 고려 끝에 ‘양반’과 관련한 축제를 열기도 했고, 칼국수 축제나 견우직녀 축제도 만들었다. 과학의 도시답게 매년 대전 싸이언스페스티벌도 개최한다. ‘대전 국제푸드&와인페스티벌’은 이런 맥락에서 도대체 도시 정체성과 어떤 연관성이 있느냐는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행정기관이 주최하는 도시 축제를 그 도시의 ‘정체성’과 연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

 

 

공식적으로 ‘대전’이라는 도시와 관련해 정체성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구호는 있다. ‘과학의 도시 대전’이다. 그럼에도 ‘정체성 찾기’가 계속된다는 사실은 이 구호가 아직 큰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아니면, ‘과학의 도시’라는 정체성을 표현하는 꾸밈말은 인정하겠지만 비교적 현대에 와서 발현된 정체성이니 그것말고 좀 더 근원적인 다른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과학의 도시’라는 수식이 붙은 데는, 우리 도시의 일부 공간 활용 특성과 특정 대학이 들어선 것이 미친 영향이 크다. 그리고 이것 역시 도시 정체성을 파악하는데 주요 변수인 건 분명하다. 여하튼 지역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덕연구개발특구도 있고 ‘KAIST’나 ‘UST’와 같은 과학으로 특성화시킨, 전국적 인지도를 자랑하는 대학교와 대학원대학이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충분히 고개를 끄덕여 줄 수 있다.

 

 

그럼에도 대표 정체성으로 삼기에는 뭔가 날로 먹은 듯한 느낌이 강하다. 정체성이라는 것이 꼭 수백 년 이상의 역사와 엄청난 노력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형성된 조건만을 가지고 정체성이라고 주장한다면 원하는 수준의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여전히 ‘정체성 찾기 논란’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모양이다. 도시가 ‘정체성’을 찾으려는 이유는 도시 공동체 구성원이 정서적 유대감을 갖고 이 유대감을 기초로 공동체성을 회복하거나 강화하면서 합의한 도시 미래를 그리고 꿈꾸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이 도시 정체성은 그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는 방향성을 제시하기에 중요할 수밖에 없다.

 

 

2

그런 측면에서 대전문화재단이 벌이고 있는 ‘아티언스 대전’은 주목할 만한 시도다. 지난 2011년부터 ‘예술과 과학의 만남’이라는 콘셉트로 진행하면서 재단이 에너지를 쏟는 주요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아티언스 대전’은  다섯 가지 세부 프로젝트로 나눠 진행한다. 아티언스 랩, 아티언스 랩+, 아티언스 오픈랩, 아티언스 포럼, 아티언스 캠프다. 이중 ‘아티언스 랩+’는 올해 처음 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마다 연사를 초청해 다양한 강연도 펼치고, 캠프에 참가해 과학적 상상력을 통해 작품을 만드는 작업을 예술가와 함께 진행하기도 한다. 과학적 영감과 예술적 영감을 결합한 시도다. 이외에도 ‘아티언스 대전’에 참여한 작가는 과학과 기술이라는 측면에서 받은 새로운 영감을 토대로 작품 세계를 더욱 확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 다양한 평가가 있겠지만 일련의 과정을 놓고 볼 때, 과학의 도시 대전에서 벌이기에 콘셉트라는 측면에서는 적절한 프로젝트다.

 

 

‘과학의 도시 대전’이라는 정체성을 이야기하며 ‘아티언스 대전’을 주목하는 이유는 무척 익숙한 낱말임에도 머릿속에만 맴돌뿐 일상적이지 않은 ‘과학’을 우리 곁에 좀 더 가깝게 가져왔다는 측면에서다. 문제는 좀 더 가까울 뿐, 바짝 붙어서지는 못했다는 데 있다. 현재 우리 삶에서 ‘과학’이나 ‘예술’이나 여전히 낯선 대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 둘의 조합이 시너지를 발휘하며 친숙하게 다가오게 하려면 그에 걸맞는 기획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티언스 대전’이 섬처럼 고군분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다른 프로젝트나 혹은 상징, 일상적 프로그램과 연결하지 못한 채 예술과 과학의 접목만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은 그 자체로 한계가 명확한다.

 

 

구 차원에서는 연구단지 대부분과 카이스트, UST 등이 소재한 유성구가 조직에 ‘교육과학과’를 두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최하는 것이 눈에 띈다.

 

 

7월부터 9월까지 유성구 과학마을 드림콘서트라는 이름으로 ‘과학은 내친구’ 프로그램을 도서관을 순회하며 개최한다. 사이언스 매직쇼와 3D증강현실체험이 주요 내용인 과학체험을 무료로 진행한다. ‘유쾌한 과학수다_ 과학마실’이라는 이름으로 노은도서관에서 다양한 과학자를 강연자로 초청한 강의를 준비해 구민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KAIST 멘토와 함께하는 과학진로탐색 캠프를 진행했고, “대한민국 과학의 요람 유성구와 카이스트가 함께 하는”이라는 부제가 붙은 유성으로 떠나는 과학여행이라는 1박2일 프로그램도 8월 15일부터 16일까지 열 계획이다. 토요일엔 과학소풍, 동아리 과학교실 운영, 우주과학 캠프 등도 유성구가 “가까이 있는 과학, 생활속의 과학마을 조성”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벌이는 사업이다. 과학협력계에는 담당 1명을 포함해 모두 4명이 해당 업무를 운영한다.

 

 

조직 구성과 프로그램만 열거해 놓고 보면, 유성구는 ‘과학의 도시’다.

 

 

3

“대전시의 허세작렬 캐치프레이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겐 과학보다 우리지역에 사는 과학자나 그들의 과학적 상상력이 시민공동체 속에 녹아들어야 과학도시에 사는 진짜 자부심이 생기지 않을까요? 일례로, 엑스포과학공원에 과학이 언제 있었나요? 사이언스페스티벌에 정말 시민과 공감대를 형성할만한 퍼포먼스가 있었나요? 아니면 ‘그래, 대전은 과학도시지!’라고 느낄만한 상징적인 뭔가가 존재했나요? 그냥 대덕연구단지가 있었을 뿐이지요. 섬처럼 말이죠.”

 

 

지역성을 가득담은 다큐멘터리를 연출 제작하는 박종선 PD의 지적이다. 시민이 ‘과학의 도시 대전’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 관해 어떤 태도를 지녔는지를 잘 보여 준다.
대전문화재단의 ‘아티언스 대전’이나 유성구가 보여주는 도드라진 프로그램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우선 깨야할 태도는 대전이라는 도시의 공간에 부여한 기능과 그 공간 안의 구성원이나 시설에만 기대려는 태도다. 인적, 물적 자원을 최대한 끌어내 연계하고 협력하며 도시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자세는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특구에 있는 정부 출연 연구소는 운영 예산이 미래창조과학부를 통해 나오기 때문에 지역과 연계하려는 노력이나 대전시와 업무 협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인식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대전시가 정부 과제를 가져와 직접 지원을 하는 형태가 아니라면 실질적으로 기대할 수 없는 부분이지요.”

 

 

대덕연구개발특구를 주 출입처로 삼은 한 매체 현직 기자의 분석이다. 대전에서는 수많은 연구소가 ‘과학의 도시’라는 수식어에 상당한 근거를 준다는 인식을 갖고 있지만 정작 대상이 되는 연구소 측에서는 ‘대전시’가 소재한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한때의 대전시 안에 교류와 소통이 없는 ‘섬’과 같은 존재라는 평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우리가 공간 기능이라는 측면에 기대려는 태도를 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캐치프레이즈 자체가 이상한 건 아니에요. 다만, ‘과학의 도시 대전’이라는 것에 걸맞은 정책이나 투자가 부족한 것 같아요. 시민입장에서 과학도시로서 특별한 것을 못 느끼는 거죠. 다른 시에는 없는 관련 기업에 혜택이라든가, 시민에게 무언가 특별한 콘텐츠나 혜택을 줄 수는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과학 관련 이벤트를 비롯해 다양한 문화사업을 펼치고 있는 회사에 다니는 한 관계자의 이야기다. ‘과학의 도시’다운 면모를 일상적 삶을 사는 시민이 체감하기에는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

 

 

‘정체성’을 찾아야 할 이유가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공유하고 그 지점을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시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전제라는 측면에서 이 캐치프레이즈가 공허하게 느껴지는 원인이다.

 

 

4

‘과학의 도시 대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이제와서 슬그머니 내리기에는 너무 많이 걸어왔다. 시간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딱히 말도 안 된다.’라는 반론을 펴기에도 애매하다. 도시 구성 요소라는 측면에서 분명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캐치프레이즈가 시민 사이에 실질적 합의를 끌어내고 도시 미래를 설계하는 큰 방향성 중 하나로 삼아야 하는 것은 지금 단계에서 어찌보면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 우리 시가 지닌 몇 가지 특성을 내세우며 과학의 도시라 우기는 건 너무 옹색하다. 가깝고도 먼 낱말 ‘과학’을 우리 도시에서는 어떻게 규정하고 색깔을 입힐 것인 지부터 결정해야 한다. 고민의 출발지점은 사실 이곳부터다.

 

 

우선, 범용적으로 사용하는 ‘과학’이라는 낱말을 우리 대전시의 캐치프레이즈에서는 어떤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부터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두루뭉술 “그냥, 과학, 그거 알잖아?”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과학의 도시 대전이 그래서 어떤 도시냐?’ 라는 질문에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미약하게나마 진행하고 있는 관련 프로젝트 내지는 프로그램도 별다른 성과없이 단순한 이벤트로 정리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우선 주목해야 할 부분은 ‘도시 역량’이다. 앞서 박종선 PD가 언급한 ‘과학적 상상력’이라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몇 년 전부터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은 과학계에 중요한 화두다. 기저에는 창의성의 극대화라는 성과 기대뿐만 아니라 ‘과학’이 어디에 복무해야 하는가에 관한 윤리적 측면에서의 고민도 내포되어 있다. 이런 만남이 물리적 만남이 아닌 화학적 결합을 통해 시민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전이되어야 한다. 평생학습 등 다양한 기존 제도와 시스템 속에 시의 이런 방향성이 녹아들어야 한다.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은 결코 아니다.

다른 하나는 이런 시도가 향해야 할 구체적 ‘결과물’에 관한 부분이다. 이 글을 준비하는 그 즈음, KAIST 배상민 교수 연구팀의 ‘스마트 박스쿨’이 독일 에드닷 어워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스마트 박스쿨’은 물품 수송에 사용하는 컨테이너의 효율성은 살리고 단점은 디자인을 통해 효과적으로 보완한 작품이다. 태양광 패널 설치와 빗물 정수 시스템 적용으로 독립 운용이 가능한 학교다. 아프리카 등 교육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과학의 도시 대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런 혁신적인 결과물을 이 도시 다양한 공간 다양한 분야에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도시의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고 이 공간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좀 더 행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과학을 일상 생활에서 만나야 한다.

 

 

그럴 때 시민은 공감하는 ‘정체성’을 기반에 두고 도시 미래를 함께 설계하며 꿈꿀 수 있다. 이것이 월간 토마토가 꿈꾸는 세상이다. 조건에 기댄 ‘구호’가 아닌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콘텐츠’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때다.

 


이용원 사진 성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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