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0호] 공간 앞에서 상상하다 Squat을 바라는 건 아님!

너무 오랫동안 한자리에 서 있으면 주변 풍경에 스며들어 뭉개진다.
익숙함은 그토록 잔인하다.
풍경에 스며들기 전에 쏠렸던 관심도 부스스 흩어져버린다.

 

Squat;
쪼그려 앉다, 웅크리다, 라는 뜻을 가진 낱말로 1800년대 중반 오스트리아 목동이 남의 목초지에 양떼를 몰고 들어간 것에서 유래했다. 그 이후 빈민, 노동자 그룹 등이 빈 공간을 점거하며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의 산물로 이어지다가 최근에는 예술가들이 강력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 예술행위로 승화시켰다. 이들이 던지는 메시지 중 하나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너무 심한 공간 사유화에 관한 저항이었다. 1999년 프랑스 파리에서 세 명의 예술가가 정부와 프랑스 금융그룹 공동 소유 건물로 십 년 넘게 방치했던 건물을 점령했고 다른 예술가가 합류하면서 역사에 남을 스쾃을 벌였다. 현재는 파리시에서 매입해 공공시설로 운영하며 연간 4만 명이 방문하는 명소가 되었다. 직접 가 보지는 못했다. ‘로베르네 집’이다.

 

 

오래전, 대흥동 갤러리아백화점 사거리 모퉁이에 건축물이 얼만큼인가 올라가다가 멈췄다. 멈춘 시간 동안, 분양을 받았다가 낭패를 본 사람들의 허탈한 한숨 소리도 건물 안에 갇혔고, 짓다 만 도드라진 건축물에 보냈던 세간의 시선도 흩어졌다. 주변 어떤 건물보다 우뚝 솟았지만 그대로 풍경 속에 녹아 뭉개졌다.

 

 

터를 매입한 순간부터 따지면 이제 13년이 지나간다. (주)BS 그룹이 2000년에 터를 사들여 지난 2002년 올리비아 쇼핑몰로 분양을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수많은 사람의 꿈이 얽혀 장밋빛을 뿜어냈다. 2004년, (주)BS 그룹이 도산하면서 움직임이 멈췄다. 2006년, 새 인수자가 등장해 꼬인 매듭이 풀리는가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후로 지하 8층, 지상 15층 규모의 이 덩치 큰 건물은 그냥 골칫덩어리였다. 건물 외벽도 온전히 막지 못한 채 또 추운 겨울을 그냥 날 모양이다.

 

 

가을바람에 실려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곧 해결점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한 소식통은 “건물 공매를 추진 중이고 7개 이상 대형 업체에서 눈독을 들이고 있다.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일반적으로 공매를 진행하면 본래 건물이 지닌 가치보다 훨씬 싼 가격에 건물을 사들일 수 있어 돈이 있는 업체에서는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라는 논거까지 제시하면서 이번에는 해결이 날 것임을 강조했다.

 

 

새주인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그 큰 공간을 모두 채울지도 궁금하다. 고개를 한껏 치켜들고 공간을 바라볼 때 서울 마포구 서교동, 소위 홍대 앞 KT&G 상상마당이 떠올랐다. KT&G 상상마당은 지하 4층에 지상 7층 건물이다. 공연장과 영화관, 갤러리, 전시장, 스튜디오 등 문화예술 관련 시설이 꽉 들어찬 이곳은 다양한 흐름을 만든다. 반면에 블랙홀처럼 콘텐츠와 사람을 빨아들이며 주변 공간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무참히 짓밟는다는 비판도 있다. 거대한 것이 태생적으로 지닌 속성이다. 야생마를 길들이듯 운영주체의 의지와 치밀한 전략이 없다면 이 속성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도 대흥동 한쪽 모서리에 자리한 올리비아(혹은 메가시티존)가 내년에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사뭇 기대된다. 이 건축물 안에서 마냥 소비만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흥동 네거리에서 이안과병원쪽으로 건너가면 그곳도 대흥동이다. 계속 직진해서 대전천 절반까지가 대흥동이니 제법 넓다.

 

 

대흥공원은 대흥동네거리와 으능정이네거리 사이쯤에 있다. 그곳에도 풍경에 스며들어 뭉개진 건물 한 채가 있다. 2층 건물이다. 대흥동 노인회관 뒤쪽 벽에 붙어 있다.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없어 애를 먹다가 한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 건물이 놓여 있는 땅은 공유지에요. 공원용지일 거예요. 그 위에 건물을 지은건데. 예전에 대전지역 일간지 지국이 있었어요. 그러다 그곳이 나가고 그냥 저렇게 방치돼 있는 거지요.”

 

 

지적도를 살펴보아도 공원용지 안에 있다. 건축물 등기부등본으로 실마리를 찾아보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해당 도로명 주소와 건물번호를 확인해 봤지만 해당 건축물 관련정보를 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만 떴다. 확인한 정보만으로 놓고 볼 때, 무주공산일 가능성도 농후했다.

 

 

이 건물을 지어 놓은 대흥공원에는 커다란 히말라야 시다가 자라고 비교적 관리를 잘 하는 공중 화장실도 있다. 볕이 잘 들고 조용해 제법 적잖은 사람이 이용한다. 그중에는 방황하는 청소년도 제법 있는 모양이다. 청소년 관련 기관에서 운영하는 이동 쉼터 차량이 공원 옆에서 야간에 활동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2012년 1월호(57호)에서 월간 토마토는 작은 공원에 ‘콘테이너 도서관’을 예쁘게 설치하고 은퇴한 어르신에게 관리를 맡겼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 대흥공원이 적절해 보인다. 또 정체불명의 2층 건물은 안전 진단 후 리모델링을 해 ‘청소년 아지트’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 역시 2012년 2월호(58호)에 월간 토마토가 주장한 바다. 보호나 갱생, 교육 시설이 아니니 오해해서는 안 된다.

 

 

노인회관과 청소년 시설, 대흥공원과 공원 위 콘테이너 도서관이 어우러지면 좋은 그림이 나오겠다.

 

 

 

대흥공원에서 대각선으로 또 다른 건물이 풍경에 뭉개져있다. 밥이 맛있는 맛나식당 길 건너편이다.

 

 

공사가 꽤 진척되었는데 어떤 연유로 중단한 채 풍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각이 진 상층부를 제외하고는 5층 건물이다. 내부를 확인하지 못해 정확히 구조를 알 수는 없지만 중앙부분이 뚫려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H빔의 붉은 빛깔이 여전히 선명하다. 콘크리트 부분에는 빗물자국이 있긴 하지만 튼튼해 보인다. 오히려 건물 외곽을 둘러싼 펜스에 녹이 많이 슬었다. 눈에 보이는 건물 외곽만 보면 마무리 공사만 잘 진행하면 언제든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는 보인다. 문제는 막대한 마무리 공사비용과 매매가인 모양이다.

 

 

“근 20년이 넘어간 것 같은데, 서울에 있는 S기업 소유 건물로 알고 있어. 바닥만 200평은 된다지. 사람들 사이에서는 한 30억 원은 넘겨달라는 거 같어. 마무리 공사하는 데도 대략 15억 원 이상은 가져야 하고. 대략 50억 원이 필요한 건데. 쉽게 작자가 나설 수 없지.”

 

 

건물에 얽힌 내막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높은 호가 때문에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건물이 아니라는 이야기만 들렸다.

 

 

이 건축물이 놓인 블록으로 보면 ‘대흥동 문화예술의 거리’와 ‘으능정이 문화의 거리’에 모두 접해 있다. 각 거리에서 동쪽과 남쪽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관에서 매입을 추진하면 그 의지를 떠나 호가가 높아지면서 어려움이 있다곤 하지만 이 공간은 욕심난다.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모시키면 주변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지다. 더군다나 대흥동 문화예술의 거리와 으능정이 문화의 거리에 이 블록까지 연결된다면 뒤집어 놓은 L자 축을 구성한다. 점이 선으로 연결되고 이는 곧 면으로 확장할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앞에 소개한 대흥공원과 정체불명의 2층 건물, 대흥동노인회관 등 자원과 연계해 다양한 상상도 풀어놓을 수 있다. 이곳과 가까운 대종로 큰길가에 면해서는 아신극장 1관과 마당 소극장 등 연극전용 소극장 두 곳도 자리했다.

으능정이네거리와 대흥동네거리를 연결하는 6차선 넓은 도로가 마음에 걸리지만 심리적 문제일 뿐 실제 거리는 멀지 않다.

 

 

으능정이 거리에 몰려드는 10대들에게 소비가 아닌 다른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도 어른들 몫이다.

 

 

 

원도심 핵심 공간 중 한 곳인 대흥동 일대를 걷다 보면 이처럼 욕심나는 공간, 그냥 두기 아까운 공간, 무엇에 쓸 지 궁금한 공간이 수도 없이 많다. 위에서 소개한 공간 말고도 대종로 큰길에 접한 작고 아담한 공간 두 채와 제법 넓은 면적에 대규모 기관이 입주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옛 ‘토끼와 거북이 요양병원’ 등이 있다. 이런 공간을 일상적으로 접하면서 간혹 머릿속에 ‘스쾃(Squat)‘이 떠오른다.

 

 

철딱서니 없이 스쾃을 종용하거나 바라면서 대상지를 물색하러 돌아다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 아래에서 공간의 지나친 사유화를 문제 삼는다는 건 요즘 정서에 무척 맞지 않다. 스쾃을 공유경제로 풀어 놓은 언론 보도도 접했다. 세련미를 느낀다. 사회적 기업과 함께 공유경제는 왠지 덜 급진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대안으로 읽힌다.

 

 

여하튼 급진적인 무단 점거든 대안 공유경제 실현이든 문화예술의 거리 콘텐츠 강화와 축 연결 사업이든, 감각 있는 새 사업주의 파격적인 문화예술 영역 공간 할애든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 대흥동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풍경이 되어버린 건축물은 다시 풍경 밖으로 나와 아름답게 숨 쉬어야 한다.


글 사진 이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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