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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00호] 차가 점령한 중앙로를 다시 사람에게로
원도심 일대를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Barrier Free로
대전역 앞에서 충남도청 앞까지 중앙로는 다른 도로와는 좀 다르다. 약 1.1km 길이로 곧게 뻗은 도로는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도청 현관 앞에서 대전역 쪽을 바라보면 막힘없이 시선이 대전역 근방까지 닿는다. 잘 보이지 않는 부분도 연상작용을 통해 쉽게 그려진다. 잠깐 시간을 들이면 중앙로와 그 인근에서 보냈던 과거 어느 시점의 한 장면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근대 도시 대전이 출발할 때부터 주요 도로였다. 그러니 도로 이름도 ‘중앙로’겠지. 다양한 원도심 활성화 정책을 펴지만 때에 따라 원도심 범위가 왔다 갔다 한다. 그럼에도 이 중앙로를 기준으로 좌우 지역이 원도심 핵심 구역이라 볼 수 있다. 이 중앙로를 한때 대중교통전용지구로 검토했고 사실상 확정해 용역착수보고회까지 열었는데, 어느 순간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다. 불과 5년 안팎의 일인데 말이다.
몇년 전부터 중앙로 인근을 둘러싼 관심이 거의 융단폭격 수준이다. ‘익사이팅 대전’을 통해 다양한 사업에 적잖은 예산을 투입하고, 말도 많았던 으능정이 LED 거리도 막대한 예산을 들여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LED시설 이름은 대전 스카이 로드다. 옛 충남도청에서 조만간 개강할 시민대학, 4월 25일부터 11월 30일까지 열릴 기획전시 ‘충남도청사 그리고 대전-역사가 된 건축, 시간을 담다’와 매주 화요일 옛 충남도청에서 열리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도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축제와 아트프리마켓 같은 연속 프로그램도 원도심에서 진행한다. 이와는 별도로 골목길재생사업도 펼친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지금도 다양한 아이디어 및 정책 회의가 끝없이 이어지며 언제든 새로운 사업은 준비 중이다. 그 물량이 개국이래 최대가 아닐까 싶다.
이 정도라면 원도심이 북적거리지 않고서는 배겨 내기 어렵겠다. 사람이 많이 모여 원도심에서 밥 사 먹고 차와 술 마시느라 지갑 좀 열어주면 ‘활성화 정책’은 일단 ‘성공’이라 평가할지도 모르겠다. 원도심 활성화 정책 방향과 목적이 그러했으니 말이다. 이런 수많은 정책과 그에 따른 공적예산 투입을 중단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 우리는 정책적으로 원도심에 ‘생명유지장치’를 인위적으로 부착한 채 사망선고를 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가? 아직 생명유지장치를 부착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이처럼 막대한 공적예산을 투입하려면 그 당위성을 정리하는 것이 먼저다.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문화예술’을 접목하면서 예산의 상당부분은 이와 관련한 사업으로 흘러든다. 어디 쇠락한 지역이 한두 곳이며 사양길로 접어든 산업이 한두 개더란 말인가? 그런데 왜 아무런 의구심도 없이 이 공간, 이 분야에 수많은 정책을 수립하고 예산을 투여하는 데 우리는 저어함이 없는 걸까?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말이다.
대전 원도심은 경부선 철도가 지나면서 대전역을 들이고, 공주에서 대전으로 충남도청을 이전하면서 ‘근대도시 대전’이 출발한 곳이다. 이것은 ‘근대 도시’라는, 대전을 설명하는 수식어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정체성’과 관련한 부분이다.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원도심이 갖는 ‘근대 경관’과 ‘근대 건축물’에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것도 이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원도심이 이런 근대 역사성만을 지닌 곳은 아니다. 원도심에 우리가 주목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건, 이곳이 우리가 다시 열어 보아야 할 ‘백업 공간’이기 때문이다.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안전하게 백업해 두는 것처럼 우리는 의도하지 않게 백업 공간을 만들어 두었던 것이다. 정말 다행이다. 중요한 모든 것을 한꺼번에 날려버릴 불상사를 막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곳을 지금 우리는 ‘원도심’이라고 부른다.
단순하게 정리하면 원도심이 생긴 건 신도심 때문이다. 도시 확장과 신도심 건설을 떼어놓을 수 없다. 신도심 건설은 부동산 투기, 택지 개발, 아파트 건설, 신도로 건설 등 자본주의 시스템을 유지시킬 수많은 ‘소비처’와 ‘투자(기)처’를 만들었다. 이는 개인이나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변화를 가져왔다. 여기서 원도심은 가치 변화를 가져오기 전, 백업 공간이 된다. 도시를 끊임없이 확장하고 자본주의가 심화될 수록 우리는 ‘사람’을 사람이 아닌 ‘소비자’로 보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내수시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구 1억 명 이상이 필요하다.’라는 상식아닌 상식이 통용된다. 출산장려 정책을 펴는 이유 중 하나는 ‘인류 멸종에 관한 불안감’이라기 보다는 ‘미래 소비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보수주의 성향을 가진 경제학자가 토론회에 나와 ‘통일’만이 문제 해결지점이라 외친다. 북한에 있는 수많은 사람도 그에게는 ‘소비자’였다. ‘돈’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등장하며 벌어진 빌어먹을 현상이다.
원도심은 완벽하지는 않아도 최소한 지금보다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았던 그 시대 흔적을 담고 있다. 그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그 백업 시점에서 잘못 흘러간 과정을 되새겨 보고 올바른 ‘가치’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보자는 거다. 어울리는 비유일지 몰라도 불교에 사판승 도움을 받아 이판승이 수행에 집중할 수 있는 것처럼 이 도시도 최소한 다른 측면에서 새로운 가치와 미래를 상상할 공간이 필요하다. 그곳이 바로 원도심이다. 당연히 여기서 핵심은 ‘사람’이어야 한다. 이 ‘사람’을 ‘소비자’로 인식하는 순간, 이 곳은 신도심과 차별이 없으면서 경쟁력도 갖지 못하는 그저 그렇고 그런, 구린 공간일 수밖에 없다. 이 원도심이라는 백업 공간에 ‘문화예술’을 접목하려는 시도에 동의할 수 있는 건, 문화예술의 본령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은 대전 원도심이 갖는 ‘경쟁력’을 설명한다. 이 경쟁력은 ‘소비’를 최대 가치로 조성한 신도심과 차별할 수 있는 근사한 조건이다. 가치가 다른 공간, 그렇기에 원도심에서 시간은 신도심보다는 느리게 흘러야 한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이 공간에서 우리는 쫓기지 않으며 상상해야 한다. ‘인문학적 상상’이다. 지금껏 우리가 펼쳤던 상상은 인문학적 상상과는 전혀 다른 상상이다. 원도심에 쏟아 붓는 그 수많은 정책 대부분이 ‘자본중심적 상상’의 결과물이다.
수많은 예산을 확보해 원도심에 털어넣고 있는 지금이 냉동고에 갇혀 언제 세상 구경할지 모를, 잊힌 고등어 신세가 되어버린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 사업’을 다시 끄집어내야 할 때다. 이 사업은 계획대로라면 2011년 완성했어야 한다. 충남도청과 대전역까지 중앙로 1.1km 구간을 보행자와 대중교통 중심 도로로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중앙로 6차선 중 2차선을 줄여 차도를 4차선으로 조정하고 이곳에는 버스와 택시만 통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일반 차량은 오후 11시부터 오전 6시30분까지만 통행을 허용한다. 보행 공간은 현재 3.5m에서 7.5m~10m로 확장하고 중앙분리대로 1.5m 공간을 사용한다. 넓힌 보행공간에는 분수대와 소공연장, 조경 등으로 새로운 거리 문화를 만들겠다는 방침도 정했다. 이와 함께 중앙로를 권역별 테마거리로 조성할 계획도 함께 밝혔는데 이 대목은 무척 일반적이고 뻔해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겠다. 원도심 중심 도로를, 그것도 대전이라는 도시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성을 갖는 중앙로를 ‘자동차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발상이 이 계획에서 핵심이다. 다른 건, 다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고민을 시작하는 것이 나을 듯 하다.
중앙로를 차가 아닌 사람에게 돌려주는 것은 이후 이곳에서 펼칠 모든 정책에 기조를 제시하는 일이다. 차에게 주었던 여섯 개 차선 중 두 개를 돌려받는 것이 아니라 아예 네 개 내지는 다섯 개 정도를 돌려받았으면 좋겠다. 돌려받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다음 문제지만 원칙을 정하자면 급하게 가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는 대중교통 전용지구가 중단된 것이 전화위복일 수 있다. 이 사업을 논의할 시점에 함께 진행한 ‘목척교 르네상스 사업’이 이후 많은 논란을 가져온 걸 고려하면 말이다. 원도심 활성화 과정에서 ‘문화 예술’을 상권 활성화를 위한 도구로 바라볼 때 실패를 가져올 수 있는 것처럼 대중교통 전용지구를 추진하는 방향도 ‘상권활성화’에 집중해서는 안 된다. 문화 예술을 활성화 하면 해당 권역에 상권활성화가 자연스럽게 뒤따라 오는 것처럼 걷는 ‘사람’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을 중심에 놓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럴 때 상권활성화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효과다.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하느냐는 정책 수립 세부 내용에서 많은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새롭게 이 문제를 논의할 때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광범위한 논의를 진행했으면 좋겠다. 중앙로 대중교통 전용지구 조성사업을 핵심에 두고, 올초 ‘방담산책’에서 거론했던 것처럼 원도심 일대 보행 도로 전반에 관한 고민도 함께 말이다. 대전 원도심 구역은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arrier Free) 인증 욕심을 낼만한 곳이다. 장애인, 노인, 어린이, 임산부, 누구든 편하게 대중교통으로 원도심에 접근해 맑은 공기 속에서 자유롭게 편안하게 걸으며 다양한 문화 예술을 즐기며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원도심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