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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00호]
충남도청터에 주민의 학교,
도서관이 세워지길 소망하다
지난 호 토마토(45호, 2011년 1월)에서 충남도청 터 활용과 관련한 기사에서 다뤘듯, 내포 신도시에 신 도청이 완공되고 나면 충남도청은 빈 곳이 된다. 지역에서는 그 활용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문화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했으면 한다는 측면에서는 이견이 없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에 관해서는 건물 규모나 재정적인 규모 때문에 섣불리 입을 열기 곤란한 것이다. 다만, 일부 시민이나, 관계 기관에서는 곧 팔순을 맞이하는 충남도청 건물이 지닌 역사성과 장소성 덕분에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바뀔 것이라 점치는 것 같다. 사실 서울역이나 여타 공공성을 띈 근대 건축물의 활용 사례만 봐도 대부분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토마토의 글쟁이들은 생각해 봤다. 장차 ‘옛 충남도청’이 될 현 도청사가 보다 활기 넘치는 곳이 될 순 없을까? 하고. 대전시민의 품으로 돌아온다는데 ‘어린이 단체 손님’이나 ‘어르신’ 등 특정 연령대가 찾는 박물관보다는 문턱이 낮아 누구도 가벼운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생활터전’과 가까운 모습을 한 공간이 진정한 ‘환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잘 지은’ 박물관이라 할지라도 전시 내용이 정기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한두 번 와본 사람이 또 오진 않을 것이다. 따라서 집행부에서 집객의 범위를 전국으로 보고, 국립시설로 만들려 하는 것이다. 그렇게 ‘충남도청 터가 도서관으로 바뀐다면’의 가정은 시작됐다.
때마침 트위터에 지역 내 한 국립대 도서관이 일반회원 예탁금을 기존 5만 원에서 10만 원으로 올린다는 글이 올라왔다. 알아 보니 예탁금을 내고도 3개월여간 이용실적이 없으면, 탈퇴 처리 되고 기한 내 예탁금을 찾아가지 않으면 국고환수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식 경쟁력을 강화한다고 목 놓아 부르짖는 사회에서 일반인이 전문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문이 갈수록 좁아지는 것이다. 과연 공공도서관에서는 그 욕구를 충족시켜줄 순 없을까?
사실 부산대 이용재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도서관,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한국의 도서관은 주민의 곁에 없다.”라며 혹평했다.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은 그저 ‘거대한 독서실’로 기능 하였을 뿐, ‘민중의 대학(people's college)’이 되어 본 적이 없다.”라는 것이다. 이용재 교수는 공공도서관의 바람직한 역할에 대해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남녀노소 지역주민의 학교’”라며 “그러나 보통학교처럼 점수를 매기고 서열을 가리지 않는다. 이용자 각자가 존중받고 정서적, 지적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공기관인 것이다.”라고 정의 내렸다. 이용재 교수는 우리나라 도서관의 전반에 관해 말한 것이지만 대전의 공공 도서관은 그간 얼마나 ‘주민의 대학’으로서 기능 하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즉, 지역에 비슷한 역할을 하는 22개의 도서관이 구역마다 있다고 해도 시민 하나하나의 잠재적 능력을 부화시켜 줄 부화기로서의 도서관은 없었다는 뜻이다.
물론 ‘도청 터가 도서관으로 바뀐다면?’이라는 가정에 부정적인 의견도 적지 않았다. ‘꿈에 그린 듯 쉬운 일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도서 구입비, 유지비도 만만찮을뿐더러 우리나라에서 도서관이란, 학생과 일반인이 시험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려고 공부하는 ‘독서실’과 다름없는데 그런 기능은 이미 한밭도서관을 비롯한 기존 도서관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느냐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도서관은 기존의 기능 외에 한층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이다. 즉,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의 거점이며, 시민의 잠재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도서관에 어떠한 기능이 있기에 시민의 잠재적 능력을 끌어내 사회를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장치라고 말하는 것일까.
일본 재미(在美) 저널리스트로서 미디어와 공공 공간, 인터넷과 시민 사회 등을 주제로 취재·집필활동을 하는 스가야 아키코 씨는 2004년 자신의 저서 『미래를 만드는 도서관』에서 뉴욕공공도서관은 세계 유수의 컬렉션을 소장했으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낮은 문턱을 자랑한다고 말한다. 사용 목적은 물론이고 사회적 지위나 국적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귀중한 고문헌을 열람하기 위한 교수 추천서도 필요 없다. 특히 뉴욕공공도서관의 비즈니스와 과학으로 특화시킨 컬렉션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며, 고가의 데이터베이스를 아낌없이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그야말로 시민의 대학인 것이다. 뉴욕공공도서관 때문에 이사하지 않는 뉴욕 시민도 있을 정도다.
그만큼 뉴욕공공도서관은 뉴욕시민에게 있어 생활 터전과 마찬가지다. 생활이 궁핍한 저널리스트는 자료수집부터 원고작성, 메일발송까지 모두 도서관에서 처리한다. 그런가 하면 딸의 고교 중퇴를 계기로 고교 교사가 되려고 대학에 재입학한 한 엄마는 도서관에서 졸업논문을 쓰고, 구직자는 취업관련 전문 인력과 서적이 갖추어진 도서관에서 얻은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구직활동을, 창업자는 도서관 내에서 사업 아이템을 찾는다.
이렇듯 ‘공공도서관’은 시민 개인을 비롯한 후원을 받지 못하는 시민의 조사 능력을 높이고,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상상해 보자. 충남도청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한층 배가시키는 ‘인문학 도서관’ 내지는 ‘과학산업비즈니스 도서관’을. 포커스를 ‘문화’에 맞춘다면 도청 본관 건물뿐만 아니라 ‘타운’화 돼 있는 도청 내 부속건물까지 지식정보를 기반에 둔 ‘인문학 카페’, ‘문화예술창작지원센터’, ‘문화예술 아카이브’, ‘상영관’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충남도청의 도서관화’라는 대전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우선 대외적으로는 도서관이 과학의 도시, 근대도시, 회의도시 등 자의적 혹은 타의적으로 부유하는 대전시 이미지를 하나로 묶는 포괄적 시설이라는 것이다. 또한, 특수성과 전문성을 지닌 도서관이라면 고급지식을 얻고자 서울로 향하는 발걸음을 되돌릴 수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역으로 다른 지역에서, 국외에서도 찾아오는 공간이 될 수 있다. 관광 명소가 달리 있으랴.
또한, 내부적으로는 누구나 마음껏 전문자료에 접근하고 검색•수집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함으로써 ‘보편적 복지’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교육에 식판혁명만 보편적 복지는 아니다. 지식에 접근하는 통로 역시 보편적 복지로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
다행히 이와 같은 글쟁이와 뜻을 함께하는 이들도 있었다. 어린이도서관협회 강영희 회장과 대전도서관연구회 이지만 사서 등이다. 강영희 회장은 “도서관이 고시원이 되어 있는 풍경은 우리나라의 비틀린 교육열 모습일 뿐, 도서관에 자기가 가지고 간 책을 보는 것은 횟집에 회를 가지고 가는 격”이라며 도청을 도서관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에 공감했다.
그런가 하면 이진만 사서는 “현재 도청사가 거리상 한밭도서관이나 테미도서관 등과 가깝다는 점이 새로 도서관을 세우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라면서도 “보기에 따라 기존의 도서관과 삼각 벨트를 형성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도 같다.”라는 의견을 이야기했다.
물론, 도청 터가 도서관으로 바뀌길 바라는 마음에서 꺼내 든 이야기지만, 고급전문도서 구입비, 운영비, 사업비, 기금마련 등등 막상 도서관으로 바뀐다 해도 풀어야 할 숙제는 그야말로 홍수다.
그래도 도청 터가 주민의 학교로 환원되길 꿈꾸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힘들고 더디 간다고 해도 결국엔 그 길을 가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