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0호] 문화, 커뮤니티… 그리고 재생

서울은 특별하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인구밀집과 경제력 집중. 그것도 모자라 아파트와 공장을 더 짓겠다며 규제 풀라고 난리다.

서울도 나름 고충이 있다는 것, 인정한다. 한 때 번화했던 준공업지역이나 상업지역 가운데 심각한 공동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많고, 잘사는 동네와 못사는 동네 간 삶의 질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여러 통계와 수치는 서울이란 도시의 성장과 발전이 정체되고 있다고 얘기한다. 서울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 당연하다. 다만, 지방보다 덜할 뿐이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것은 서울의 대응책이다. 지금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재개발과 재건축을 진행하고 있지만, ‘문화(Culture)’라는 개념을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디자인’과 ‘창조도시’라는 세계 각지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면서 ‘문화’에 주목하고, 이를 도시라는 거대한 그림에 접목하려는 시도를 계속 한다. 서울의 이런 움직임에 지역도 따라가고 있다. 유행을 넘어선 흐름이 된 것 같다.

최근에 서울시가 들고나온 개념은 ‘컬처노믹스(Culturenomics)’다. ‘문화(Culture)’와 ‘경제(Economics)’를 조합한 개념이다. 예술적 창의 기반을 만들어 문화적인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도시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문화로 돈 버는 도시’라고 짧게 정리할 수 있겠다.

이 가운데 ‘예술적 창의 기반 조성’은 서울이 컬처노믹스를 구현하는 밑바탕이다. 문화·예술 주체인 예술가들이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인데, 지금까지는 예술가들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건물이나 공간을 마련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안에서 무엇이 만들어지고, 만들어낸 것이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는 그리 주목하지 않았다. 예술가들은 대중과 격리돼 있었다. 건물과 공간을 마련한 자치단체장만 부각됐을 뿐이다.

그러다 최근엔 빈 공장이나 상가, 공공건물을 리모델링해 작가들이 창작 활동을 벌이도록 지원하는 아트팩토리(Art Factory) 개념으로 확장됐다. 단순히 예술 창작물 생산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서 문화를 통한 도시 재생과 경쟁력 확대가 목표다. 부산 신평공단과 부산 다대포 무지개 공단, 서울 문래동 등에서 산발적으로 진행했거나 하고 있는 아트팩토리 프로젝트를 정책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버려진 폐 시설물에 문화와 예술이 가치를 부여하고, 나아가 프로젝트가 벌어진 지역의 경관이 바뀌고 주민과의 연대가 이뤄지면서 도시는 새로운 원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새로운 도시발전 패러다임이었다.

 

이것을 서울시가 정책적으로 수용했다. 여전히 경제적인 시각과 접근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있지만, 소홀했던 문화·예술을 도시 발전 방향에 도입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건 큰 변화다.

옛 동사무소나 학교, 공장, 지하상가, 보건소 같은 제구실을 잃은 건물을 예술가들의 창작활동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내년까지 일곱 곳의 창작공간을 마련한다는 계획으로 이미 설계가 마무리됐다. 서울문화재단은 이런 창작공간 조성을 더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창작공간이 시민의 쉼터이자 문화 충전소로서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도시의 역사와 자생적 문화가 살아숨쉬고, 그것이 도시 경관으로 구현되며, 시민의 문화향유와 참여가 확대되는 것. 이것이 도시의 경쟁력이다.

도시를 재생하는 문화

유럽에서 ‘아트팩토리’는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문화 기획자들과 예술인은 물론 일반 대중이 뭉쳐 새로운 도시 발전을 일궈내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지금도 아트팩토리 프로젝트 수백 개가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 마르세유 라 벨 드 메((la Belle de Mai) 구역의 아트팩토리 프로젝트다.

1990년 프랑스담배공사 담배제조공장이 문을 닫았다. 이 공장은 라 벨 드 메라는 서민구역에서 산업경제의 중심이자 도시의 원동력이었다. 지역으로서는 커다란 사회적 충격에 대비해야 했다. 1992년 뒤 마르세유 시가 12헥타르에 달하는 공장 터를 매입했다. 그리고 예술인들이 뛰어들어 ‘도시 프로젝트를 위한 문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 프로젝트는 공연과 조형, 시각, 음악, 문학 등 모든 형태의 예술분야 창작을 유도·장려하고, 지역이 갖추고 있는 경제·서비스 인프라를 접목해 프로젝트 지역 안에서 새로운 도시 메커니즘이 이뤄지도록 만들었다. 문화·예술은 예술가와 대중을 잇는 매개 구실을 했고, 도시 원동력이었던 담배제조공장은 문화를 생산하는 도시의 원동력으로서 공간적 의미를 유지할 수 있었다.

현재 이곳에선 매년 500개가 넘는 행사가 열리고, 프랑스와 국외 예술인 900명이 작업과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또 60여 개 기업과 단체가 이곳에서 일하고 있으며, 40개국 180개 국제 프로젝트가 이뤄지는 등 교류도 활발하다. 더 나아가 이곳의 프로젝트 구성과 목적은 ‘사회적 기업’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되기에 이른다.

프랑스의 사례 말고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대형 가스단지가 문화공간으로 변신해 도시의 경쟁력은 물론 시민의 문화적 욕구를 채워주고 있다. 또 핀란드는 유휴 주택과 산업시설을 문화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가까이는 우리나라 광주광역시 대인시장에서 예술인들이 빈 점포에 입주해 창작활동을 벌이며 침체한 재래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결국엔 사람이다

앞서 얘기한 사례들은 공통점이 있다. 시민과의 커뮤니티가 이뤄지고, 그 안에서 자생적인 문화가 형성됐다. 그리고 문화는 지역의 원동력이 되면서, 경제적 이익까지 이뤄내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 문화를 이용한 게 아니라, 문화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부가가치가 창출된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기획력’이다. 시민의 땀과 삶이 묻어 있는 유휴시설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그 안에 예술가를 모아 대중과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든 데는 결국 기획력을 갖춘 사람이 큰 구실을 했다.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상호작용으로 자연발생하는 문화를 읽어내고, 그것이 사회 발전의 에너지로 분출하도록 도왔기에 가능한 성공이었다.

이전까지 전국 각지에서 이뤄진 창작지원 사업은 ‘기획자 부재’에 대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공간을 만들어 예술가를 모아 작품을 만들었지만, 그것을 사회를 위한 에너지로 분출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없었다. 작가와 작품보다는 건물의 존재와 자치단체장이 부각됐을 뿐이다.

대전에서 유일한 창작지원 시설이라고 할 만한 대전창작센터. 이곳 김민기 학예사는 공간에 앞선 인력 양성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작가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정보의 교류와 적절한 매니지먼트, 문화 네트워크 구축이에요. 단순히 전시회를 여는 것으로 만족해선 안 되죠. 국내외 어디에서 어떤 프로젝트가 이뤄지는지 파악해 지역 작가가 참여하도록 돕고, 국내외 작가는 물론 시민과의 교류를 활성화해 작가 개인은 물론 지역 안에서 큰 에너지가 만들어지도록 도와야 해요. 그걸 하는 게 기획자입니다.”

서울이 컬처노믹스의 기반조성 단위사업으로 ‘아트팩토리’를 조성하고 있으니 조만간 지방도 따라갈 것은 분명하다. 다만, 유행처럼 따라갈 것이 아니라 지역 특성에 맞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바로 기획자를 길러내는 일이다.


글 사진 점필정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