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4호]헤엄치는 분홍 물고기


대화 내내 진지하던 유범 씨는 카메라 앞에서는 셔터를 누를 때마다 표정을 달리하고, 거의 대화를 주도하던 민수 씨는 잠깐 수줍음을 탄다. 서로 달라서 오랜 시간 함께할 수 있었다는 두 사람은 대학을 함께 다녔고, 같은 해 졸업하면서 공연을 시작했다. 이 친구라면 오랫동안 같이할 수 있겠다 싶었다. 동반 입대하고 같은 부대에서 지내며, 군 생활하면서도 제대 후를 고민했다.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건 2015년 2월 제대하면서부터다. 민수 씨는 노래를 부르고 유범 씨는 기타를 친다.

 
Q.두 분 다 실용음악과를 졸업하셨죠. 음악은 언제부터 하셨어요?

유범

중학교 때부터였어요. 교회에서 기타를 배웠는데 너무 좋았어요. 고등학교 때는 공부 좀 해보려고 1학년 때까지는 많이 노력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야자 시간에 학교에 있으면서 시간이 아깝고 힘들더라고요. 잘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게 기타였어요.

민수

저는 좀 늦게 시작한 편이에요. 막연히 노래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한 번 볼까 싶은 생각에 음악학원에 갔는데 마침 합주하면서 연습하는 걸 본 거예요. 그때 밴드를 이루어서 합을 맞추고, 노래 부르는 걸 처음 봤거든요. 밴드 공연을 접할 기회가 없었어요. 흐르는 반주와 노래가 엮여서 합이 되는 느낌,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서로 감정을 공유한다는 게 좋더라고요. 고등학교 3학년 수시 들어갈 때 배우기 시작했어요. 건축 일 하시는 아버지랑 함께 일하려고 자격증도 따고, 여러 준비를 하던 때여서 반대가 심하셨죠. 생활비도 벌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고 약속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걸 보여드렸더니 내버려두시더라고요.


 
Q. 두 분이 같이 공연한 건 2012년부터라고 들었는데, 핑크피쉬라는 이름으로 처음 공연한 건 언제였어요?

민수

입대하기 전이었어요. 호락호락 페스티벌 1회 때였는데, 그전까지는 같이 공연해도 팀 명이라는 게 따로 없었어요. 공연 한 시간 전에 팀 명이 꼭 있어야 한다고 하는 거예요. 둘이서 차에 앉아서 ‘뭐하지?’ 하다가 나온 거예요.

유범

‘피쉬 어떠냐?’부터 시작해서 별거 다 붙여 봤어요. 블랙은 너무 어둡고, 레드는 너무 강하고, 우리가 부르는 노래랑 핑크가 잘 어울릴 것 같더라고요. 이름만 들으면 여자일 것 같은데 남자 둘이 나오니까 의외성도 있고요. 그렇게 후다닥 정한 거예요.


 
Q. 그래도 평소에는 그렇게 말하지 않을 거 아니에요. 만들어 놓고 의미부여 같은 거 하잖아요.

민수

그렇죠. ‘우리의 음악을 듣는 여러분을 음악이라는 광활한 바다에서 헤엄치는 핑크피쉬로 만들어 드리겠다. 음악 안에서 헤엄치게 하겠다.’라고 말하곤 하죠(웃음).

유범

그래서 가끔 핑크색 와이셔츠도 맞춰서 입곤 해요.


 
Q. 요즘엔 라디오에도 출연하신다고요.

민수

매주 목요일 대전 MBC 정오의 희망곡에 출연하고 있어요. 오후 한 시에 97.5Mhz에 주파수 맞추시면 돼요. 라이브 공연인데요. 매주 한 명의 가수를 주제로 주면 저희가 그 가수의 곡을 편곡해서 들려드리는 거예요.
Q. 공연도 하고, 학원에서 아이들도 가르치고, 유범 씨는 저 녁이면 다른 아르바이트도 한다고 하셨잖아요. 어쩌면 다른 사람들과 다른 길을 가는 건데 두려움 같은 건 없었어요?

민수

별로 그렇지는 않아요. 스무 살부터 서른까지는 계속 변화하는 시기잖아요. 요즘은 사람이 굶어 죽는 시대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공연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만약 음악을 하지 않았더라도 창의적인 일을 했을 것 같아요. 처음 무대에 섰을 때는 떨려서 사람들 보지도 못하고 눈 감고 공연하기도 했어요. 요즘엔 사람들 표정도 보고 어떤 감정인지 읽기도 하고, 공연 끝나면 내가 본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오늘 공연이 어땠는지 생각해요. 그게 아직 제일 즐거워요.

유범

집안에 음악 하는 분이 많았어요. 음대 나와서 지금도 음악 언저리에서 일하고 계시긴 하지만 재미없어 보이거든요. 저는 계속 공연하면서 사람들이랑 만나고 소통하고 그런 게 좋아요. 저녁에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는데 오히려 학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것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 공연만 해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자극을 받아요.


 
Q. 학원에서 아이들 가르치면서 저녁에는 아르바이트도 하는 거예 요? 카페에서 만나는 어떤 사람들을 보며 자극을 받나요.

민수

저는 아이들 가르치는 게 적성에 맞는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카페에서는 진짜 많은 사람을 만나요. 일단 오가는 손님들을 만나잖아요. 금방 스쳐가기도 하지만, 사람들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고요. 저희 카페 사장님이 정말 열정적인 분이거든요. 매일 다른 메뉴를 개발하려고 노력하세요. 음료나 디저트 같은 것들이요. 그래서 메뉴가 자꾸 늘어나고요. 카페를 운영하더라도 이런 마음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또 아르바이트 같이 하는 친구들이랑 대화도 하고, 매일 같은 과정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민수랑 음악 이야기를 하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를 느끼는 거예요.
Q. 음악을 한다는 게 돈 벌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좋아 하는 공연만 해서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요. 라디오 출연이나 공연이 들 이는 시간에 비해 대가를 적게 받는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민수

음. 저희가 들이는 노력에 비해서 그렇게 많은 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돈을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어딘가에서 기회를 줄 때 당연히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단 빨리 실력을 쌓고, 앨범을 만들고, 점점 경험을 늘리다 보면 더 많은 기회가 오겠죠.


 
Q. 이번에 앨범 제작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민수

디지털 싱글로 계획 중이에요. [이상형]이라는 곡인데, 유범이가 만든 거예요. 이 곡을 군대에서 만들었다니까요. 여자도 하나도 없는데, 자대에 있는 교회 도서관에서 쓴 거예요. 유범이가 여자친구 사귄 지가 오래됐거든요.

유범

너무 사랑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내 상상 속의 이상형. 나의 꿈처럼 우린 멋진 인연이 돼.’ 이런 가사가 있어요.
 
Q. . 현실에서 잡히지 않는, 그런 이상형인가요? 눈이 높으신가 봐요.

민수

그런 거 같아요. 저는 딱히 이상형이랄 게 없고, 마음 맞고 느낌이 통하면 되는데 유범이는 한 번 만나서 아닌 것 같으면 딱 끊는 것 같아요.

유범

보통 그렇지 않나요? 눈이 높은 게 아니라 아직 짝을 못 만난 것 같아요. 이상형은 박보영인데 꼭 박보영을 닮아야 하는 건 아니에요.



 
눈이 높으시네요. [이상형]이란 곡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 내는 앨범이라 곡 선택하는 데 많이 고민했을 것 같은데요.

민수

우선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곡으로 먼저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희가 작업한 곡 보면 다 다르거든요. 잔잔한 곡도 있고, 신나는 곡도 있고요. 일단 사람들이 우리를 잘 모르니까, 좀 쉽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했어요. 보통 밴드가 어떤 색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저희는 꼭 어떤 음악을 해야 한다는 정의는 없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여러 시도를 하고 싶어요.



 
Q. 두 사람이 오래 같이해서 그런지 서로에 대해 많이 알고, 잘 맞는 것 같아요.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본 서로는 어떤 모습 인가요?

민수

유범이는 정말 성실해요. 정말 꾸준히 연습하고 굉장히 이성적이라서 계획도 잘 세우고요. 옛날에는 유범이가 기타이다 보니까 어떻게 하면 기타 연주를 돋보이게 할지만 생각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곡이 어떻게 하면 더 돋보일지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 걸 보면 유범이가 많이 성장했다는 걸 느껴요.

유범

민수는 평소에도 매일 일기를 쓰고, 글 쓰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가사가 참 좋아요. 땅에 누워서 본 것들에 대해 쓴 곡이 있어요. [땅이 내 머리에 닿으면]이라는 곡이에요.

민수

그것도 군대에서 생각한 거예요. 훈련하다가 잔디에 누웠는데 평소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는 거예요. 꼭 사람만 대단한 삶을 사는 것처럼 하늘 한 번 못 보고 살잖아요. 그냥 풀밭에 누워서 풀이 보는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게 어떤 느낌인지 써 보고 싶었어요. 제목이 좀 어려운 것 같아서 바꿀 예정이에요.



 
Q. 만약 음악을 하지 않았더라면,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인가요?

민수

뭘 만들고, 쓰고, 기록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뭔가 창의적인 일을 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음악 계속하고 싶어요. 요즘은 좀 슬럼프예요. 바쁘게 움직이기는 하는데 손에 잡히는 게 없어서인 것 같아요. 빨리 앨범을 내고 단독공연을 하고 싶어요. 할수록 더 잘하고 싶고, 좋은 곡을 쓰고 싶어요.

유범

모르는 사람들 만나고, 여행하면서 살았을 것 같아요. 저 역시 공연하면서 사람들 만나는 게 제일 좋아요. 제대하고 나서 음악을 듣는 게 달라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어떻게 하면 기타가 더 돋보일지만 생각했는데, 요즘은 음악을 들으면 가사도 귀에 잘 들려요. 좋은 곡, 좋은 가사를 쓰고 싶어요.

땅에 기대 누워 보면 모든 것이 새롭다
물과 흙 나뭇잎 전엔 보지 못한 모든 것들 
이 작디작은 풀들도 새파랗게
악착같이 사는 삶인데
하나둘 쌓여만 가는 고민들이 뭐 그리 많고 다양한지
  
가끔은 높은 하늘 새들이 되어 
이렇게 작은 풀의 눈높이 되어
파랗게 또 겸손하게 두 손 모두 비우고서
그래 다시 시작하면 돼, 

왜 이리 사나, 난 또 왜 이럴까
다 힘든 거야, wheresoever you go, 
go with all your heart
땅에 머릴 기대 누우면 
그래 바보 같지만 정말 긴 여정 끝엔 
저 밝은 별을 다시 품을 수 있단 걸 왜 알지 못하는가 

이 작디작은 걱정들 쌓여 가면
좋은 일 하나 없는 거 아는데
주위의 많은 시선들과 편견들 뭐 그리 많고 다양한지 

가끔은 저렇게 높은 하늘 별들이 되어
빛나게 더 빛이 나게 두 손 모두 꽉 쥐고서
그래 다시 시작하면 돼, 왜 이리 사나, 난 또 왜 이럴까


- 핑크피쉬 <땅이 내 머리에 닿으면> 가사 부분


 
글 사진 이수연(wordpl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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