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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91호] 카일린의 일본 문화 탐방기
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본으로 유학 온 저는 운전면허를 딸 새가 없었습니다. 동경에서 대학이나 직장을 다닐 때에도 워낙 발달한 교통수단 덕분에 자동차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운전할 기회도 없었죠. 그러나 결혼하고 시가현으로 이사를 오니 자동차는 꼭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전철이 있긴 하지만 슈퍼마켓이나 생활용품을 파는 곳이 옹기종기 모여있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 있어 소위 자동차 사회라 불리는 곳이거든요. 지금은 열심히 걸어서 다니긴 하지만 쌀이나 물 등 무거운 걸 사려면 남편 숲 선생의 도움을 받아 차로 가거나 배송료를 내고 인터넷에서 주문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운전면허를 따면 한국이나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 놀러 오는 친구에게 드라이브하며 이곳저곳 소개해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번 삼 개월간 1종 보통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면허학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시험에만 합격하면 일본의 운전면허를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큰 착각이었습니다. 적성검사는 물론 면허학원에서 최소 57시간 이상 수업을 받는 것도 면허를 취득하기 위한 의무이기 때문이지요. 수업을 받지 않으면 시험 볼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아요. 수업에는 교과서를 보며 교실에서 공부하는 과목과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는 실기 수업이 대부분이고, 응급상황에 대처하는 실습이나 운전 중 위험 예측 토론 수업 등도 있습니다. 게다가 한 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시험은 네 번이나 있어 산 넘어 산입니다. 시험은 1차 시험(필기 합격 후 실기)과 2차 시험(실기 합격 후 필기)으로 나뉘어 있어요.
21시간 수업을 듣고 나면 드디어 1차 시험에 응시할 수 있습니다. 1차 시험이라고 해서 마냥 쉽지만은 않답니다. 필기는 총 50문제 중 45문제 이상이 정답이어야 합격이에요. 다섯 개만 실수해도 바로 불합격이지요. 헷갈리는 문제도 많이 출제되어서 어느 정도 암기하지 않으면 힘들답니다. 필기에 합격하면 면허학원에 설치된 연습 코스 안에서 운전하는 실기시험을 보게 됩니다. 합격자들끼리 제비뽑기를 해서 어떤 경로를 시험 볼지, 몇 번째로 시험을 볼지 등을 정합니다.
1차 시험에 합격하면 드디어 가면허증을 받고 면허학원 밖에서 도로주행을 하게 됩니다. 물론 남아있는 필기 공부도 합니다. 모든 수업을 듣고 준비가 되면 이번엔 도로주행 실기 시험을 먼저 봅니다. 1차는 필기 합격 후 실기 시험인데 2차는 실기 먼저 보지요. 실기에 합격하면 이번에는 면허학원이 아닌 국가에서 지정된 시설에 필기시험을 보러 가야 합니다. 시험장도 도심에서 떨어져 있고 한 번 보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가볍지 않으니 그 어떤 시험보다 어깨가 무겁습니다. 문제 수도 95개나 되어서 그야말로 산 넘어 산입니다. 한 번에 꼭 붙고 싶었던 저는 대학교 입시 공부 하듯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비록 벼락치기였지만요! 그렇게 운전면허 시험의 마지막 단계인 필기시험을 치르면 남은 것은 운전면허 합격 결과 발표 뿐입니다. 시험장 앞에 있는 전광판에 자기 수험 번호가 뜨면 합격입니다. 전광판에서 제 수험번호를 확인한 후 면허증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며 먹은 점심은 올해 최고의 맛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일본의 초보 운전 마크
전 한여름에 면허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여름방학을 맞은 대학생이 많아서 마치 대학교로 다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 신선한 기분으로 일본에서 운전면허 공부를 하며 참 인상 깊은 점이 많았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안전과 생명을 제일 중요시 하며 모든 수업을 진행했다는 점입니다. 운전의 기술은 기본적인 것만 알려주고, 나머지는 어떻게 해야 안전한가에 대한 공부입니다. 또한, 운전자의 생명, 보행자의 생명뿐만 아니라 구급차가 구하러 갈 생명까지도 생각합니다. 구급차가 왔을 때의 대처법도 어찌나 자세한지, 구급차가 지나갈 때 일본에서는 자동차들이 모세의 기적을 일으키며 적극적으로 길을 열어주는 이유도 드디어 알게 되었습니다. 운전면허는 땄지만, 아직 숲 선생이 조수석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혼자 운전 못 하는 저이지만 앞으로 운전 실력을 갈고닦아 무서운 고속도로도 멋지게 달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