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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91호] 젬배여행
지난 8월, 여름 개학을 앞두고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대전에서 KTX를 타고 부산으로 그리고 부산에서 고속페리를 타고 후쿠오카로. 후쿠오카에서 차를 빌려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 ‘랜’의 촬영지인 아소산과 구로가와 온천, 구마모토 성과 미술관 등을 둘러본 후 규슈 남쪽 끝인 가고시마에 도착했다. 가고시마에서 태풍 때문에 계획에 없이 이틀을 묶여 있다가 마침내 미시마 페리에 몸을 실었다.
망망대해지만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위를 윙윙거리는 엔진소리를 들으며 세 시간을 가니 다케시마에 도착한다. 미시마(三島)는 가고시마에서 배로 세 시간 가는 곳에 위치한 다케시마, 이오지마, 구로시마 세 섬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라는 것을 배가 첫 번째 섬인 다케시마에 들렀을 때 알게 되었다. 다케시마에 잠깐 들러 사람과 짐을 내려놓고 배가 떠날 때, 그 섬을 떠나 육지로 돌아가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색종이 줄을 잡고 송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배가 멀어지면서 끊어진 색종이 줄이 물 위에 떠있는 것을 보고 채 얼마 가지 않아서 목적지인 이오지마가 보이기 시작했다. 망망대해 위로 유황연기가 피어오르는 활화산 이오다케(703m)가 눈에 들어온다. 저곳이 바로 젬베 워크숍이 열리는 이오지마 섬이다
이오지마는 다케시마에서 약 30분 정도 더 가면 도착한다. 이오지마는 둘레 14.5km, 면적 11.7㎢로 한나절이면 섬 전체를 둘러 볼 수 있는 작은 섬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섬 경제의 버팀목은 유황광산이었으나 유황의 수요 감소로 1964년에 폐광되면서, 대규모 인구 유출과 함께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1970년대에는 관광개발이 추진되었다. 악기관련 회사인 야마하가 활주로 600m의 비행장을 건설했고, 리조트 호텔을 개장하여 잠시 성황을 이루었으나 1983년 결국 경영 부진으로 공항과 호텔 모두 폐쇄되었다. 잠시 오팔 규석(세라믹 유리 원료)의 채굴이 시작되어 전성기에는 연간 5만톤, 약 3억 엔의 생산액을 올렸지만, 이 역시 해외수입에 의한 가격 폭락으로 공장은 폐쇄된 상태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섬의 인구는 계속 줄어들었다. 1960년 1,363명이었던 인구가 1970년에는 655명으로 줄었고, 이 추세는 지속되어 2000년에는 500명으로 줄었다. 현재는 사실상 거주하는 인구가 백여 명에 불과하다.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고령화는 더 심하여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약 35%에 이르고 있다. 그 사이에 섬에 있던 고등학교가 없어지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통합하여 10여 명의 학생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거기다 고등학교가 없으니 매년 중학교를 졸업하면 가고시마에 있는 고등학교를 진학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떠나고 노인만 남는 섬”이 되어버렸다.
섬 집으로 떠나는 배에서 도시에 사는 딸의 가족에게 손을 흔드는 아버지
이렇게 텅 비어가고 늙어가는 섬을 살리기 위해, 미시마에서는 유턴정착 장려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섬 밖에서 이민자를 모집하여, 이주하면 송아지 1마리 (50만엔 상당)를 선물하고, 또는 가족 수에 따라 3년간 생활 보조금을 매월 지급하며, 마을에서 신축한 공영주택을 저렴한 임대료로 제공하는 사업을 1990년도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십여 세대가 마을로 이주해서 정착했다고 한다.
다케시마를 떠난 배가 이오다케 옆을 지나자 바닷물이 붉은 황토색으로 변하면서 부두가 나타났다. 그 순간 들리는 소리는 젬베연주 소리였다. 둥 두둥 둥, 둥 두둥 둥.
수십 대의 젬베가 어우러져 만드는 흥겨운 리듬이 배가 섬에 가까이 가면서 점점 커진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나가 난간에 서서 보니 저 멀리 젬베의 나라 기니 깃발을 휘저으면서, 아프리카 댄스를 추는 사람들 모습이 보이고, 그 뒤로 젬베 연주팀이 바쁘게 손놀림을 하는 것이 보인다. 솔로 연주자가 좌우로 둘씩 서고, 뒤에는 상방과 둔둔 켄케니로 반주까지 하는 제대로 된 젬베연주단이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배에서 느껴지던 울렁증이 가라앉으며, 젬베소리에 맞추어 심장이 뛰기 시작하고 온몸에서 가벼운 소름이 돋는다. 홍대에 가도 젬베하는 사람이 많지 않고, 우리나라 전체에도 젬베연주팀이 열손가락 안에 들어올까 말까 한데, 망망대해 외로운 섬 가운데서 듣는 젬베연주소리라니. 자세히 살펴보니 이제 유치원을 다닐 것 같은 꼬마와 들에서 일하다 나온듯한 아저씨가 젬베를 치고 있고, 밭일 하다 나온 아주머니가 앞에서 아프리카 춤을 추고 있다.
위 사진의 동영상은 www.youtube.com/watch?v=R8FaNud7COQ 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젬베 솔로와 합주가 몇차례 반복된 후 한 리듬이 끝나고, 이제 익숙한 쿠루 리듬이 계속된다. 이제 배는 닻을 내리고, 배 옆구리가 열리며 차가 부지런히 짐을 실어 내리기 시작한다. 싣고온 자가용과 트럭이 내리면서, 우리들도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와 함께 온 젬베마스터 마마디 케이타가 배에서 내리자, 할머니 한 분이 반갑다는 듯이 달려와 손을 잡고 인사를 한다. 마마디 케이타도 알아보는지 열심히 손을 흔들며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마마디 케이타는 젬베의 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적인 젬베 연주자이며, 교사이다. 이역만리 서아프리카 기니 출신의 젬베 연주자가 어떻게 일본에서도 오지 섬인 이오지마에 젬베를 전하게 되었을까?
1994년 여름, 미시마 마을은 생전 처음으로 멀리 서부 아프리카에서 온 전통 타악기 ‘젬베’ 리듬에 싸여 있었다. “일본의 작은 마을 아이들과 교류하고 싶다.”라는 생각만으로 기니의 국립 무용단에서 최고 연주자로 활약했던 젬베 폴라 마마디 케이타가 미시마에 오게 된 것이다. 어떻게 이오지마에 오게 되었느냐라는 물음에 대해, 마마디 케이타는 젬베의 영이 자기를 여기에 데려다 준 것 같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로 대신했다. 자신은 조상의 영에게 들으며 젬베 리듬을 만들고 그것을 연주한다는 아프리카식 혼내림을 얘기하는 듯 싶었다.
아무튼 이오지마에 온 마마디 케이타는 생전 처음 만지는 아프리카의 북소리와 리듬을 19명의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신 나는 리듬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기술을 배우려기 보다는 즐기는 게 중요하고, 즐기며 치면 듣는 사람도 즐거워진다.’는 젬베의 철학을 함께 심어주었다. 이렇게 젬베 마스터로부터 직접 연주법을 전수받은 아이들은 그해 여름 마마디와 함께 히로시마, 오카야마, 아마미 오시마와 연주 여행을 다니면서 청중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NHK방송에도 보도가 되면서 젬베의 섬으로 유명해지게 된 것이다.
만남 이후 매년 여름, 미시마 마을에는 마마디와 아이들의 즐거운 목소리와 젬베 리듬이 울려퍼지게 되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미시마 아이들과 촌장 일행이 아프리카 기니의 마마디 케이타의 고향 마을을 방문하고, 함께 유럽 공연을 하는 등 마을의 교류활동을 세계로 넓히게 되었다. 또한 2004년에는 마마디 케이타의 “탐탐 만딩그 젬베 스쿨”의 아시아 최초 센터를 이 섬에 개교했고, 아시아 최초의 젬베 마스터도 이 마을 출신이었다.
배에서 내려 여행가방을 끌고 걷기 시작해서 오분도 되지 않아 젬베 학교에 도착했다. 나처럼 한국에서 네 명이 참가했고, 대만에서 다섯, 홍콩에서 셋, 싱가폴에서 둘, 중국 본토에서 한 사람, 그리고 나머지는 일본에서 참가하여 명실상부한 아시아지역 국제 젬베 워크숍이 시작되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젬베 리듬은 직접 치면서 배운다. 말이 필요할 때는 불어와 영어, 중국어와 일본어 그리고 한국어까지 뒤섞여서 사용되지만 말보다 더 근원적이고 원시적인 리듬이 사람들을 소통하고 공감하게 해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다 더해서 여성들을 중심으로 하루 한 시간씩은 아프리카 댄스를 배우는 시간이 있어서, 리듬에 맞추어 느낌을 표현하는 강렬한 춤을 배우기도 하였다.
이제 미시마의 이오지마 섬 마을은 서아프리카 기니의 전통 예능을 진지하게 상속하는 세계 유일한 마을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마마디 케이타를 매개로 기니와 우호적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매년 마마디 케이타가 직접 ‘미시마 젬베 스쿨’의 강사로 참여하여 서아프리카 전통음악을 유지 전승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오지 섬 미시마가 세계적인 젬베 교육센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심지어는 대만이나 싱가포르에서 유학을 와서 머무는 사람까지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머무는 동안에도 우시즈 여고생들 40여 명이 선생님과 함께 와서 젬베를 배우는 모습을 보았다. 집중 합숙을 통해서 새로운 곡도 배워서 완성해보고, 또 리듬에 맞춘 춤도 배워서 공연하는 것을 관람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젬베를 통해 마을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미시마 섬에서는 젬베 유학생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섬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젬베를 배우고 싶은 사람을 위해 미시마 젬베스쿨에서 6개월 단기 유학생을 모집하고 있다. 젬베 활동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 봉사 활동과 마을 주최의 문화행사에 참여해 지역 활성화에 공헌하면서 섬 생활을 체험하고 또 마을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관심있는 사람 누구나 응모할 수 있으며 6개월간의 체재비를 모두 지원한다. 우리가 섬에 도착할 때에 나와서 연주하던 사람들 중에 있던 젊은 친구들이 바로 이 젬베 유학생이었다.
이제 미시마 섬은 매년 2,000여 명의 학생들이 젬베를 배우러 찾아오는 아시아 최고의 젬베 캠프가 되었다. 오죽하면 나 같은 사람도 서아프리카로 직접 배우러 가지 않는 이상, 젬베를 제대로 경험해 보려면 이 미시마 캠프를 가봐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이렇게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젬베 초보자인 나와는 달리, 이곳 젬베 캠프에 모인 학생들은 대부분 중고급 과정 학생들이었기에 나는 수업 듣는 것을 포기하고 청강만 하고 말았다. 손으로 치는 즐거움이 아니라 귀로 듣는 즐거움만 만끽하고 또 이오지마 섬의 청정자연을 즐긴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미시마 마을은 가고시마현 내에서 가장 작은 마을이지만 하는 활동은 글로벌 하다.”라고 미시마의 오오야마 타츠오 촌장은 말한다. 젬베로 대표되는 이 글로벌한 연계를 통해 미시마 섬은 젊은이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마을의 브랜드를 높일 뿐만 아니라 마을에 정착하는 젊은 인구를 찾아내고 있으며,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섬이 되기 위해서 다양한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다. 일본의 오지 섬이 서아프리카 젬베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마을을 살리는 것처럼, 우리의 마을도 상상력을 보다 넓고 멀리 펼쳐 획기적 대안을 찾아내는 도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