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4호] 안도현작가인터뷰



 
대전을 떠난 게 3년 전이었죠. 돌이켜 보면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던 것 같아요. 작업을 시작한 게 2011년이었으니까 햇수로는 5년 차예요.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어요. 사람들이 볼 때 흥미로운 작업이었던 거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기회가 왔어요. 강의에 나가기도 했고, TV에 출연하고, 그걸 보고 더 많은 사람이 저를 찾아주셨어요. 수많은 기회를 잡으려 했고, 욕심을 많이 부렸어요. 그러다 보니까 부딪히는 부분도 많았어요. 잘되기도, 안되기도 하면서 슬럼프가 크게 온 것 같아요. 그래서 좀 갑작스럽게 떠나게 됐어요. 2012년에 대전을 떠나서 계속 문경에 있었어요.
 
3년 동안 작업하지 않았어요. 다양한 곳에 가 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모두 제가 벌인 일이었지만 감당하기가 힘들었거든요. 그때는 작품에만 열중했던 것도 아니었고, 지역에서 뭔가를 해 보겠다고 다니지 않은 곳이 없었죠. 작업도 하고 싶었고, 문화기획도 하고 싶었고, 성숙하지 못한 열정을 앞세워서 많은 일을 벌였던 거죠. 그게 참 힘들었어요. 그때는 작품을 알리고, 좀 더 넓게 나를 알리고 싶은 것에만 신경 쓰고, 그것 때문에 많이 예민했어요. 공직에 있는 사람도 많이 만나고, 내게 보이는 세계에만 신경 쓰고 살았던 거죠. 돌이켜보니 그랬어요. 내 세계에 빠져서 마음이 급했고, 귀를 닫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곳만 바라보고 살았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랬던 것 같아요.
 
안도현 작가가 말하는 ‘그때’는 안 작가가 대전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던 ‘2012년’이었다. 그때 안도현 작가는 어느 현장에서나 볼 수 있었고, 지역 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던 사람이었다. 케이블 TV 프로그램에 나오면서 안도현 작가를 보기 위해 대전에 왔다는 사람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어느 날 대전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고, 가끔 안도현 작가를 만났다는 사람들은 문경에서 잘 지내고 있더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간 단체전 몇 번을 제외하고는 조용히, 문경에서 지냈다. 그러다 자극을 주는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을 통해 지난날 보지 못했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고, 다시 작업을 시작해야겠다는 동력을 얻었다.
 
“흐드러지게 만개한 문경의 벚꽃 길을 뒤로하고 상경한 지 반년,
온갖 신선들과 요괴들이 뒤엉켜 흥을 이루는 동묘에서 낮엔 불란서 군바리들이 썼던 텐트와 가죽스트랩으로 가방 만들어 팔고 밤엔 벼룩시장에서 건진 갖가지 그림 재료들과 기초드로잉북 하나로 그림을 그려 나갔다.”

- 2015. 10. 안도현 작업 노트
 
올해 4월쯤에 이대로 시간을 흘려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에 전시한 작품들은 5월에 서울에 올라가서 작업실을 구하고 6개월 동안 작업한 거예요. 이번에 작업하면서 정말 많은 걸 돌이켜보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 작업 한다고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얼마나 과분한 사랑과 관심을 받았는지, 그 모든 걸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나 혼자만 잘나서 이룬 것인 양했는지 말이에요. 6개월이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림은 처음 그려 봤어요. 저는 그림을 못 그려요. 그런데 너무 그리고 싶더라고요. 서울에서 구한 작업실이 동묘였어요. 시장에 나와서 돌아다니는데 그림 그리는 데 필요한 재료를 몽땅 묶어서 2만 원에 팔더라고요. 그걸 사서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냥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림 그릴 때 썼던 일기를 보면 “기술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표현하고 싶은 거에 대한 간절함”이 담겨 있어요. 누군가를 그리고, 내가 생각한 걸 그리고, 그것으로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리 그려도 이상한 거예요. 마침 작업실에 놀러온 그림 그리는 분께 아무리 그려도 그림이 이상한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명암’이 안 들어가서 그렇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게 불과 3개월 전이었어요. 그때 명암 넣는 걸 배웠어요. 

 

“많이 차분해졌어요. 사람도 작품도 같이 차분해져서 참 신기해요.”
3년 전부터 안도현 작가의 작품을 보고 관심을 두었다는 주영선 씨는 11월 20일 안도현 작가의 개인전 오픈식을 찾았다. 그의 말처럼 안 작가의 작품은 예전과 달리 많이 비어 있었다. 안 작가는 그걸 두고 “이것저것 다 넣고 싶은 욕심이 많이 줄어서”라고 이야기한다. 설치 작품에서는 예전보다 많이 정제된 느낌을 주었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그림을 그렸다. 많은 것을 비우고 있는 그가, 이제 안에 있던 것들을 끄집어내 색을 칠하기 시작한 건 아닐까, 작품을 보며 들었던 생각이다.
 

그림 그리던 친구를 만났어요. 그 친구 덕분에 나를 다시 돌아보고, 앞뒤 가리지 않고 나아갔던 열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죠. 어떻게 보면 그 친구 덕분에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반성할 수 있었어요. 무모했던 내 열정이 주변 사람을 얼마나 많이 다치게 했는지 말이에요. 그리고 그 친구 덕분에 다시 작업을 시작했어요. 이렇게 마냥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는 것도 그 친구 덕분에 깨닫게 됐죠. 동료로서 열등감이나 불안감도 많이 느꼈고, 나를 돌아보면서 깨닫게 된 여러 감정이 계속 뒤섞였던 것 같아요. 
올해 6개월여간 작업하면서 고향인 대전에서 개인전을 열고 싶었어요. 3년 전에는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대전의 발전에 도움되는 일들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모두 나를 위한 것들이었더라고요. 이번 전시의 개인적인 주제는 ‘화해’예요. 크게 다투거나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저만 생각했던 지난날이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개인전 마치면 다시 서울로 올라가서 계속 작업하고, 여러 나라에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요. 그래도 대전이 고향이잖아요. 제가 지금까지 성장하고 작업하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이 있고, 언제든지 돌아오면 맞이해 주는 분들이 이곳에 있어요. 그래서 다시 시작하는 개인전을 꼭 대전에서 하고 싶었어요.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곳. 제게 대전은 그래요. 고향은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림으로 안에 들어 있던 것을 오롯이 끄집어냈다. 형태를 그리고 색을 칠하고 하나씩 배우고, 고치고, 다시 그렸다. 누군가에게 지도를 받으며 형식을 갖추고 대단한 실력으로 작품을 내놓은 건 아니지만, 세상 모든 것이 꼭 그렇게 어떤 틀 안에 있어야만 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안도현 작가의 이번 전시의 주제도 ‘NONSTANDARD’다. 표준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분명,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의 작업은 수집을 위해 집 밖을 나섬으로써 발생하는 수많은 관계성의 집합체이다.
선택된 오브제는 편집 과정을 통해 익숙했던 것들을 낯설게 함으로써 심미적 관점과 예술적 자아를 확장시킨다.
나는 나와 모든 사람들, 사물의 고유 존재성과 가치를 인정한다.” 
- 2015. 05. 안도현 작업 노트


그림은 앞으로도 계속 그리고 싶어요. 평생 화실에 앉아서 그림 그리는 삶을 동경하는 건 아니에요. 문경에서 서울에 올라갈 때도 아무것도 없이 갔어요. 동묘에 작업실을 구하고, 며칠간 동묘 시장을 돌아다니며 작업할 물건을 구했어요. 사람들을 만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가 담긴 물건을 구하는 과정부터가 제 작업의 시작이에요. 작업실에 앉아서 작업만 하면서는 평생 접 해보지 못할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것 역시 제 작업이에요.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에너지, 서로가 주고받는 신선함이 좋아요. 영화 <굿윌헌팅>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 있어요. 한 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 없는 윌이 처음으로 보스턴을 떠나는 장면이에요. 끝없이 펼친 직선 대로를 달리는 장면을 보면서 그가 내면을 마주하고, 더 큰 세계로 나가는 순간인 것처럼 느껴졌어요. 

 
글 사진 이수연(wordplay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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