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1호] 연극 <스트립티즈>

연극 <스트립티즈>(극단 터)는 폴란드 극작가 스와보미르 므로제크가 1961년 발표한 동명의 희곡이 원작으로, 지난 10월 소극장 마당에서 네 차례에 걸쳐 상연됐다. 박창호가 연출을 맡고, 배우 박연숙과 최병윤, 오창섭이 주연을 맡았다.
알 수 없는 ‘공간’에 빠져들다

막이 오르고 사방에 어둠이 깔린다. 괴괴한 적막이 흐른다. 이윽고 식별할 수 없는 소음이 숨죽인 관객 사이를 파고든다. 한동안 불규칙하게 오르내리던 소음이 점차 무대와 가까워진다. 이내 ‘쾅’하는 굉음과 함께 주위가 환해지고,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 한 명이 무대 위로 나동그라진다. 남자는 무언가에 홀린 듯 주위를 서성인다. 잠시 후, 남자와 똑 닮은 차림새를 한 여자도 남자와 같은 방식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자신들은 그저 길을 가고 있었다고. 확고한 신념과 냉철한 이성으로 심사숙고 끝에 결정한 행선지를 가고 있었을 뿐이라고. 마치 잘 짜인 기성복처럼 똑같은 모습을 하고 똑같은 말을 내뱉는 두 사람. 그들은 어쩌다 이 ‘공간’에 빠져들게 된 걸까.

  

  

‘자유’라는 이름의 덫에 걸리다

모든 것이 불분명하다. 시간도, 공간의 정체도 무엇 하나 뚜렷이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누군가에 의해 갇힌 것인지, 아니면 그들 스스로 이 공간에 들어오기를 자처한 것인지조차 모르겠다. 바깥으로 향하는 문을 앞에 두고 두 사람은 언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남자는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겠노라 말하고, 여자는 안에서 이대로 머무르겠노라 말한다. 이들은 언뜻 논리적으로 말하고 있는 듯하나, 실상은 궤변만 늘어놓고 있다. 하지만 이따금 예상치 못한 곳에서 허를 찌르기도 한다.

  

  

“우리가 지금 이 방에 이렇게 앉아 있는 것을 자유라고 보십니까?”

이제 그들은 공간에서 벗어날 자유와 벗어나지 않을 자유, 나아가 선택할 자유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자유에 대해서 논하기 시작한다. 이쯤 되니 관객으로서는 머리가 지끈거려온다.

  

  

  

‘손’ 앞에서 무릎 꿇다

두 사람이 자유와 선택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사이, 이번에는 열려 있던 문마저 닫혀 버린다. 갈등이 극에 달한 두 사람 앞에 불쑥 ‘손’이 등장한다. ‘손’은 그들이 가진 것을 차례로 가져간다.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노력했던 남자도, 안에서 자리를 지키려던 여자도 ‘손’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큰 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던 남녀는 온데간데없다. 심지어는 비굴하기까지 하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이 퍽 우스꽝스러웠는지, 객석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감칠맛 나는 배우들의 연기에 함께 웃어 보이면서도 어쩐지 자꾸만 씁쓸한 기분이 든다. 이제 두 사람에게 있어 자유와 선택은 더는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들의 자유와 선택을 뛰어넘는 ‘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낯설지 않은 우리의 모습을 보다

연극 <스트립티즈>는 소박하다. 나란히 놓인 의자 두 개 외에는 이렇다 할 무대 장치도 없다. 등장하는 배우도 많지 않다. 정통연극에 비하면 러닝타임도 짧다. 하지만 강하다. 40분 남짓한 러닝타임은 눈 깜짝할 새 흘러간다. 쉴 새 없이 방대한 대사를 내뱉으면서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두 배우의 연기가 극의 몰입도를 더욱 높인다. 그리고 가볍지 않다. 원작을 쓴 스와보미르 므로제크는 당시 사회주의 국가였던 폴란드의 정치 상황을 비판하는 견해를 밝힌 뒤 망명하여 프랑스, 미국 등 여러 국가를 전전하며 지냈다. 희곡 ‘스트립티즈’에 등장하는 ‘손’이 이때의 폴란드 사회주의 정부를 가리킨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차치하더라도, 극에서 그려지는 두 남녀의 모습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아마도 어떤 커다란 힘 앞에서, 저항하는 이나 순응하는 이나 결국엔 굴종하게 되고야 마는 현실이 현대 사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리라. 연극 <스트립티즈>는 확고한 신념과 냉철한 이성을 가진 현대인들에게 쉽게 답할 수 없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가고 있는 길과 우리가 가진 신념과 그것들을 너무도 쉽게 무너뜨리는 절대적인 힘 또는 권력과 우리의 나약함에 대해서.

  

  

La Vita E Bella

극이 막을 내릴 때쯤, ‘손’이 별안간 지휘를 시작했다. 귀에 익은 연주곡 하나가 흐른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OST인 「La Vita E Bella」다. 일순 복잡해졌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숱한 물음과 의문과 의심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한들 어떠한가.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 한들 또 어떠한가. 그럼에도 여전히 인생은 아름다운 것을.


엄은솔 사진 극단 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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