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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00호] 요즘, 동네에 서점 보기 어려우시죠?
간혹 발견하는 서점은 문방구도 함께 팔고 서가엔 참고서가 대부분이다. 조금 나은 곳은 베스트셀러 몇 권 진열해 놓았다.
어릴적 다녔던 고등학교 앞 서점하고는 많이 다르다. 천장까지 책꽂이가 닿아 있어 머리 아프게 올려다보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서점 주인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책을 꺼내주곤 했던 그런 서점 말이다. 지금 대형서점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그래도 꽤 다양한 서적의 구색은 갖췄던 것으로 기억한다. 요즘엔 보기 어려운 서점 형태다.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그렇게 동네에 서점이 하나 둘 사라져간다. 그래선지 간혹 ‘책’이라고 쓰인 간판을 보면 반갑다. 대부분은 문을 닫고 텁텁한 먼지만 잔뜩 쌓여 있는 것을 확인하지만 말이다.
도서관과 서점을 ‘등대’라 표현한다. 복잡하고 머리 아픈 일상에서 쉬어갈 수 있고 제대로 된 삶의 방향을 잡아 줄 수도 있는 등대. 그나마 요즘에는 작은 동네 도서관 운동이 일어 여러 뜻있는 사람이 지혜와 힘과 돈을 모아 등대의 불빛을 켜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서점은 좀 다르다. 어차피 도서관이야 그 태생부터 공공재로 인식하였지만 서점은 분명 사업이다. 하지만, ‘책’이라는 문명의 표징을 다루는 사업이기에 다른 사업체와는 다르게 인식한다.
그래서 한때 서점이 사라지는 것은 중요한 뉴스가 되기도 했다. 가장 정점을 이뤘던 때로 기억하는 것은 2002년 서울 종로서적의 파산이다. 1907년에 설립한 종로서적은 당시 남아 있던 서점 중에는 가장 역사가 길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 앞에 경쟁력을 잃은 종로서적은 수많은 사람의 가슴에 추억만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대전에서 비슷한 운명을 한 곳이 ‘창의 서점’과 역사는 길지 않지만 마지막 불꽃을 피웠던 대학가 서점 ‘백마서림’ 정도.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이다. 비단 서점 뿐은 아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수많은 것이 소멸해 가고 있다. 음악다방, 시골 정미소, 이발소, 동네 구멍가게 등. 현 사회구조 속에서 자연스런 현상이고 이렇게 사라지는 것에 아쉬움만 가질 뿐이다. 그것들을 남겨 둘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진 못한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더는 필요가 없어 내쳐지는 데 막을 장사가 없다. 그냥 가끔 추억하고 그리워할 뿐이다. 그런데 유독 서점만큼은 그렇지 않다. 지표식물처럼 서점의 존재 유무는 문명과 이성, 가치, 철학, 진리, 문화 등의 추상적 단어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그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방편으로 여긴다. 많이 옅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그런 인식은 남아 있다.
그래선지 서점이 사라지거나 위축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는 여전하고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논의의 장에 등장한다. 솔직히 말하면 최근 서점을 다루는 접근 방식이 조금 달라지기는 했다. 한동안 대학가에 서점이 하나 둘 사라진다는 뉴스나 서점의 몇 %가 줄었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앞서 말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요즘엔 대형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의 매출액 증감 추이, 이에 대응하는 작은 서점의 목소리 등이 주를 이룬다.
최근에는 몇몇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의 약진으로 비롯된 ‘베스트셀러 만들기’나 ‘기형적인 유통구조’를 한탄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출판업과 관련이 더 깊겠지만 서점도 무관하지는 않다. 출판과 서점계 환경이 이처럼 변하자 ‘대학가에 서점이 사라져 안타깝다.’라는 단순 명쾌하고 순진하기까지 한 목소리는 이제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대학가에 서점이 없다.’ 내지는 ‘동네, 특히 중·고등학교 앞에 서점이 사라진다.’라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진 주장이다.
이미 1990년대를 전후해 이 같은 논의가 광범위하게 촉발되었다. 노래방이나 비디오방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때의 이야기다. 대학가에 전통적으로 존재했던 서점이 하나 둘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주점이나 ‘~방’이 들어서는 것을 개탄했다. 대학가의 주체라 할 수 있는 각 대학교 신문사나 교지 등에서도 특별 기획기사를 연재하곤 했다. 하지만, 결국 대전 대학가에서 서점은 모두 사라졌다. 교재나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구비한 대학 구내서점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렇다고 대학 구내서점을 비하하거나 흠집 낼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대학 신문사나 교지에서는 이를 주제로 다룬다는 점이다. 10년의 세월을 훌쩍 넘어 ‘의제’가 공유될 수 있다는 것.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그런 주제가 흔하지는 않다. 장바구니 들고 카바레를 들락거리는 주부의 문란을 개탄하는 기사도 이미 사라졌고 연탄가스 중독 사망사고 뉴스도 보기 어렵다. 모두 시대의 변화 탓이다. 그런데 ‘대학가 서점 문제’만큼은 20년 가까운 세월, 지속적으로 숨 쉬고 있으니 의미를 둘 만하다.
노정원(24) 씨. 그녀는 지금 대학교 4학년으로 대학 신문사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3학년 때까지는 기자생활을 했다. 대학가에서 사라진 서점 문제를 직접 취재한 그녀의 이야기다.
“답답하죠.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팔고 사는 공간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하나의 문화공간이잖아요. 그곳에서 책도 읽고 친구도 만나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그런데 대학가에 서점이 없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죠. 서점에 가기 위해 일부러 차를 타고 멀리까지 이동해야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잖아요.”
의외로 명쾌하다. 이 같은 생각이 노정원씨 개인의 취향 문제는 아닐까 싶어 취재 당시의 상황을 물었다.
“재미있는 건요. 당시 인터뷰를 했던 학생 대부분이 대학가에 서점이 없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질문을 던졌을 때 비로소 ‘아, 서점이 없구나!’ 하는 반응이었죠. 그리곤 곧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대답을 했어요.”
이것이 10여 년 전과 지금의 차이 같았다. 그때는 대학가의 주체인 학생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사라져가고 있는 서점에 대한 인식의 공유는 있었던 것 같은데, 괜히 더 씁쓸하다.
하지만, 노정원 씨가 말하는 것처럼 문화공간에 대한 욕구는 점점 늘고 있는 지금, 서점이 그 공간으로서 기능을 할 수 있다면 사라진 다른 많은 것과는 달리 다시 부활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우선 서점을 경영하고 있는 경영인들의 반성이 가장 필요해요. 제도적으로 완전한 도서정가제를 확립하고 왜곡된 유통질서를 잡는 것도 매우 중요하죠. 하지만, 서점을 운영하는 주인의 시각이 바뀌어야 해요. 잘 팔리는 책, 반품 잘되는 책 말고 문화공간으로서, 교육공간으로서 손색없는 곳을 만들기 위해 투자하고 노력해야죠.”
대전에서 계룡문고를 운영하는 이동선 대표의 이야기다. 온라인 서점이 매출을 점점 확대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힘들게 오프라인 지역서점을 지키고 있는 자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지만 의지는 분명했다.
서점은, ‘산업적 측면이 결합 된 최고의 문화·교육 기관’이기 때문이라는 게 이 대표의 논리였다.
“사교육비 문제에 대해 연일 떠들어대고 토론하면서 서점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아요. 그 점이 참 안타까워요.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도서관과 서점에 가서 놀아야 해요. 이 학원 저 학원 옮겨다닐 것이 아니라. 그러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이 대표의 얘기를 막바지에 몰린 한 경영인의 푸념이나 한탄 정도로 가볍게 여길 수는 없다. 물건을 사고 파는 한 가게의 흥망성쇠에 관한 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점’의 고사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각은 심각해지는 취업난 속에서 ‘인문학’이나 ‘기초과학’이 점점 냉대받고 위축되는 현실을 걱정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계 없는 소비시장으로 우리를 내모는 것이 지금의 시류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자율경쟁 시장에 내 놓아야 할 것과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것이 있다. 책과 그것이 유통되는 공간으로서 ‘서점’을 바라볼 때, 서점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것이다.
이야기의 중심을 쓸데없이 크게 잡을 필요는 없다. 지역 문화 발전 전략은 이제 자치단체에서 주민등록등본을 떼 주는 것만큼이나 기본적인 업무 영역이다. 그 정책과제 수립과 논의 과정에 서점이라는 문화공간도 함께 다뤄야 할 때다.
마침, 지난 7월24일 ‘책으로 행복한 대전’ 선포식이 열렸다. 교육기관의 독후감 강요 등으로 초장부터 책에 정 떨어지게 하는 오래전 그 모습 그대로 진행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제는 시대가 변한만큼 상황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통해 정말 책으로 행복할 수 있는 지역만들기에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
문화공간으로 제 구실을 다하려고 하는 지역 서점을 살리는 일을 위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부터 시작을 했으면 좋겠다. 행정기관은 기업 유치를 위해 엄청난 세금을 감면하고 온갖 편의를 제공하려 노력하는 것처럼 지역 서점을 살리기 위한 정책들을 생산해 내야한다. 연극이나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궁극의 소비자인 시민들의 노력 없이는 절대로 곁에 다가올 수 없는 것처럼 문화·교육공간인 서점 역시 마찬가지다. 편의 때문에 버려야 했던 다른 소중한 것처럼 서점 역시 그렇게 버리기엔 대가가 너무 크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대학생들이 대학가에 ‘서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는 동력이 되어야 한다. 행정기관이 정책을 만들고 서점 주인이 각성을 통해 진정한 문화공간으로서의 변화를 꾀하더라도 시민들의 구체적인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공허한 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만으로 해결하지 못할 이런 논의는 그래서 늘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