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3호] 카일린의 일본 문화 탐방기

카가미모찌

2014년을 맞이한 것도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15년입니다. 어렸을 때에는 어서 한 살 더 많아지고 싶어서 떡국 한 그릇을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우곤 했는데 이젠 한 해가 지나가는 게 아쉽기도 하고 새해가 오는 게 설레기도 해서 싱숭생숭한 기분입니다. 벌써 일본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것도 여섯 번째예요. 학교나 회사를 핑계로 떡국도 안 먹고, 새해 기분을 즐긴 추억은 친구들이나 회사 사람들과 했던 신년회 정도였지만, 여유가 생기다 보니 일본의 이곳저곳에서 새해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기숙사에 살 때였습니다. 모두가 모여서 식사하는 큰 테이블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이 놓여 있었어요. 꼭 눈사람같이 생기긴 했는데 머리 위에 귤을 얹고 있어서 도대체 이게 뭔가 고민했지요. 궁금하다 못해 기숙사 아저씨께 여쭤보았습니다.

“눈사람이 아니라 ‘카가미모찌’야.”

카가미모찌? 직역하면 ‘거울 떡’인데. 혼자 고민하다가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서 속 시원하게 기숙사 아저씨에게 설명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본의 거울과 생김새가 비슷하다 하여 카가미모찌(거울 떡)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연말이 되면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서 카가미모찌를 장식합니다. ‘새해도 잘 부탁합니다.’ 라는 의미에서요. 빠르면 12월 28일부터 카가미모찌를 장식하기 시작하여 새해가 밝으면 먹습니다. 딱딱해진 떡을 먹는 데에 의미가 있어요. 사람에게 이는 음식을 씹어 먹어 생명을 유지하는 데 직결되는 기관이잖아요? 그런 생명력을 의미하는 이로 딱딱한 떡을 먹으면 새해에도 튼튼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랍니다. 그렇다고 딱딱한 떡을 다 먹느라고 무리하면 새해부터 치과에 가야 할지도 모르니 주의해야겠죠?

  

  

숲 선생의 사촌 동생이 우체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어요. 다음에 우체국으로 만나러 가겠다고 하니 아르바이트는 연말에만 한다고 합니다. 역시 일본도 일손이 부족할 정도로 연말에는 많은 선물이 오가나 보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선물보다 더 많이 오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연하장입니다.

‘한 해 동안 감사했습니다.’, ‘다음 해에도 잘 부탁합니다.’ 이런 내용이에요. 이 연하장을 이용해서 그간 가정에 어떤 일이 있었나 보고하기도 합니다. 저와 숲 선생도 올해에 결혼했다고 보고하는 연하장을 만들었어요. 그 외에도 그 해에 해당하는 십이지신을 활용한 삽화나 가족사진, 반려동물 사진 등 종류가 아주 다양하답니다. 심지어 스마트폰으로 연하장을 읽으면 동영상이 재생되는 연하장까지 있어요! 거의 모든 일본의 가정에서 매년 연하장을 보내기 때문에 연하장 전용 프린터를 구매하는 사람도 적지 않답니다.

  

  

도시락으로 유명한 일본이죠? 연말에는 초고급 도시락을 만듭니다. 바로 ‘오세치’라고 하는 문화예요. 20~30종류의 반찬이 담긴 정사각형 모양의 도시락을 세 칸부터 다섯 칸까지 쌓습니다. 칸마다 다른 반찬이 몇 종류씩 담겨 있어요. 구운 것, 절인 것, 익힌 것 등 모두 의미가 담긴 음식이지요. 예를 들어 검은콩 반찬은 나쁜 기를 흡수해준다는 의미가 있고, 다진 우엉 반찬은 깊이 뿌리를 내린 우엉처럼 가정의 뿌리가 깊어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나저나 왜 이런 고급 도시락을 만드냐고요? 새해가 밝고 바로 부엌에서 요란스럽게 요리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연말에 잘 상하지 않는 요리를 잔뜩 만들어 연시까지 먹는 거죠. 그렇다 해도 스무 가지가 넘는 반찬을 한다는 건 일본 전국의 어머니들에게 너무 힘든 일이므로 요즘은 한두 가지만 집에서 만들고 나머지는 파는 걸 사서 먹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오세치

  

  

이윽고 새해가 밝으면 일본에서는 소원을 빌고 한 해의 운세를 점치기 위해 신사로 갑니다. 이것을 하츠모우데라고 하지요. 신사 입구 근처에는 항상 약수터 비슷한 시설이 있는데요. 이곳에서 손과 입안을 깨끗이 씻고 들어갑니다. 그러고 나서 소원을 빌 장소로 갑니다. 이때 가운데에 서면 기운이 너무 강하다 하여 왼쪽 아니면 오른쪽에 치우쳐서 서는 게 좋다고 해요. 소원 비는 곳에서 신에게 바치는 공물로 동전을 넣습니다. 종을 울리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면 소원 빌기 완료입니다. 한 해의 운세를 점치는 종이를 ‘오미쿠지’라고 하는데요, 대길, 길, 흉, 대흉 등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저는 아직 대길이나 길밖에 뽑아본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러려면 착하게 살아야겠죠?

  

  

현대 문화가 굉장히 발달한 듯하면서도 예전부터 지켜 온 전통문화가 많은 일본입니다. 연말연시는 더욱이 전통문화가 빛을 발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이런저런 새로운 문화에 익숙해지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지만, 대부분 가족과 함께하는 문화라 오히려 익숙해지는 과정이 참 즐거울 것 같습니다.


글 사진 박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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