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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93호] 마을 만드는 사람들
박석신 대표는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대전 시내에서 안아감 마을로 이사했다. 아이 교육을 위해서였다. 주변 사람들이 ‘교육 때문이라면 둔산으로 가야지.’라는 근심 어린 말을 건넸지만, 박석신 대표의 생각은 확고했다. 아이의 한 번뿐인 어린 시절 기억이 ‘경쟁’ 속에 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안아감 마을로 이사하고 마을의 한 구성원으로 마을 어르신들에게 다가가고자 했지만, 어르신들은 마음을 쉽게 열어주지 않았다. 젊은 사람이 왜 이곳으로 이사 왔을까 의심 어린 눈초리를 보낼 뿐이었다.
박석신 대표는 어르신들만 살아 조용한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 싶었다. 친구들을 불러 소머리를 삶고 사물놀이를 하며 어르신들과 소통하는 장을 만들었다. 이 일로 어르신들은 박석신 대표를 마을 구성원으로 받아들였다.
“사물놀이 하는데 어떤 할머니가 잠깐 보자고 하셨어요. ‘안 힘들면 우리 집 좀 한 번 돌아주면 안 돼?’ 하시더라고요. 지신밟기를 해달라는 거였죠. 그 할머니 집을 한 바퀴 도니까, 다른 어르신들도 집에 가셔서 마루에 쌀을 쌓아 놓고 초를 두고 기다리고 계셨어요. 한 어르신이 자루를 메고 다니라고 주시더라고요. 어르신들이 그 자루에 쌀을 넣어주셨어요. 그 쌀로 다음날 떡을 해 돌렸어요. 어르신들이 기특하게 생각해 주셨죠. 그날 이후로 우리 집 대문 앞에 묵은 김치가 놓여 있기도 하고, 마을 어르신들이 마음을 열어 주신거죠.”
박석신 대표 역시, 마을 어르신들을 더 가까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여름에는 마을회관에 몰래 수박이나 음료수를 두고 가기도 했다. 몰래 두고 가도, 어르신들은 누가 두고 간 건지 알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박석신 대표는 마을의 일원으로 마을 문제를 자기 일처럼 인식하게 됐다. 박석신 대표가 인식한 마을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열두 가구가 살고 있지만, 그 안에도 패가 있었어요. 반목도 있었고요. 또, 마을에 폐 고속도로가 뚫리며 외부 차량이 오는 경우가 늘면서 사람들이 생활 쓰레기나 가전제품을 버리고 갔어요. 바리케이트를 치든지 현수막을 걸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저는 그렇게 마을을 닫기보다는 더 열고 예쁘게 만드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어요.”
박석신 대표는 마을의 문을 닫으면 마을이 피폐해지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예술가가 사는 마을인 만큼, 마을 사람들과 함께 다양한 방법으로 활기차고 예쁜 마을을 만들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 사이도 돈독해지길 바랐다.
먼저 마을 사람이 모두 모이는 장을 만들었다. 마을회관에 모여 어르신들이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보내고 이후 박석신 대표가 어르신들 이름을 부채에 그림으로 그렸다. 몇 년 전 새로 이사 온 사람까지 모인 이 날이 안아감 마을 사람들이 처음으로 다 같이 모인 날이었다.
박석신 대표는 외부 사람들이 쓰레기를 많이 버리고 가는 버스 정류장에 마을 사람들과 함께 벽화를 그리려고 계획했다. 이 계획은 마을에 오래 산 어르신들과 이야기하며 바뀌었다. 마을회관이 생기기 전,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였던 느티나무가 안아감 마을에서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됐고 느티나무 주변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예쁘게 꾸며 보기로 했다. 새 모양으로 목조를 잘라 그림을 그려 느티나무 주변에 붙였다.
“처음에는 마음 여는 게 어려웠어요. ‘나는 됐어, 몰러, 화가 양반이 알아서 해.’라고 했던 분들이 정작 그림 그릴 때는 즐거워하셨어요. 그 까칠하신 강 씨 아저씨가 그림을 끝내주게 그릴 줄은 아무도 몰랐어요.”
박석신 대표는 마을을 단장하며 마을 사람들끼리 소통하는 과정에 외부인들을 초대했다. 안아감 마을과 외부 세계가 소통하는 과정을 만든 것이다. 마을 어르신들이 마을 밖으로 나가기 어렵고, 외부와의 교류가 없는 것에 주목했다.
“폐 고속도로 밑에 어두침침한 통로가 있어요. 그곳에 동굴 벽화를 그렸어요. 누군가 그리고 가면 다음 팀이 와서 그리는 형식이었어요. 그런 소소한 일들을 했어요. 마을에 사람들이 찾아오니 어르신들도 좋아하셨죠. 아이 웃음소리, 울음소리가 들리니까 마을이 활기를 띠었어요.”
박석신 대표는 2014 대전형 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의 지원으로 자신이 사는 마을을 화목하게 만드는 기초 작업을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더 큰 그림을 그리며 지원 사업에 공모했는데 예산을 삭감 지원 받아, 주민들끼리 서로 알아가고 마을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마을 어르신과 함께하는 많은 일, 감나무의 감을 따는 일도 그 과정이었다. 에피소드도 많았다.
“감나무 있는 할머니 집에서 감을 따고 있었어요. 할머니가 ‘나는 안 먹으니까 조금만 주고 다 가져가.’라고 하셨어요. 감을 따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당신들 뭐하는 거야?’라고 호통을 쳤어요. 그 집 큰아들이었던 거죠.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대신 감을 따드리고 있다고 하니까 돌아갔어요. 자기가 할 일인데 다른 사람이 하고 있으니 창피했던 거죠.”
박석신대표
안아감 예술 꽃 생태마을은 네트워크 파티로 2014년 활동을 마감했다.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한지로 책갈피 초대장을 만들어 사람들을 초대하고 사물놀이와 함께 잔치를 벌였다.
안아감 예술 꽃 생태마을 구성원인 전해리 씨는 한 해 사업이 끝나서 아쉽지만, 앞으로 계속 만날 ‘사람들’을 얻었다고 말한다.
“마을 어르신들이 고맙다고 하시니 좋죠. 서로에게 좋은 추억 만들어 준 게 뿌듯해요. 마을 어르신들이 젊은 사람들 놀러 오는 걸 좋아하세요. 안아감 마을에 놀러 오셨으면 좋겠어요. 62번 버스 타고 안아감 마을 정류장에 내리시면 돼요. 아마 대전에 있는 정류장 중에 가장 큰 정류장일 거예요.”
박석신 대표는 주민의 한 사람으로 안아감 마을을 좋은 마을로 만드는 노력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예술가가 사는 마을인 만큼, 예술로 좀 더 활기찬 마을을 만들고 싶다. 외부인들이 찾는 마을을 만들고 더불어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지은 농작물, 김치, 장아찌 등으로 마을의 수익 구조도 만들고 싶다. 박석신 대표는 무엇보다 안아감 마을의 우물을 살리고 싶다고 말한다.
“마을 중심에 우물이 있어요. 사용을 안 하다 보니 관리가 안 되고 있어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우물을 청소하고 살리고 싶어요. 마을 사람 모두가 물을 뜨는 곳이었던 만큼, 우물이 공동체의 중심이잖아요. 우물을 살리는 행위를 통해 마을이 화합할 거라고 믿어요.”
전해리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