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3호] 대전충남녹색연합 녹색생태투어 '순천 편'

 
대전충남녹색연합은 대전·충남지역의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아름다운 자연을 더 많은 이에게 소개하기 위해 ‘녹색생태현장 투어(이하 생태투어)’를 진행한다. 올해는 네 번의 투어를 기획했고, 월간 토마토도 투어에 동행하고 있다. 11월 29일 진행한 투어는 2014년 기획한 마지막 투어로, 전라남도 순천시 선암사와 순천만생태공원을 다녀왔다.
갈대가 파도치는 바다

바람이 불자 갈대밭이 일렁인다. 갈대는 바람을 따라 쉭쉭 소리를 내며 낭창낭창 연약한 허리를 구부렸다. 물 위에 떨어진 물방울이 겹겹이 물결을 만들 듯 바람이 이끄는 대로 수만 평 갈대밭에 셀 수 없는 일렁임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출렁임이 어디로 갔는지 그 끝을 알 길이 없었다. 저 멀리 뚜루륵 뚜루륵 흑두루미 우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그늘 한 점 없는 너른 순천만 위에서 갈대는 쏟아지는 햇볕을 곧이곧대로 맞고 서 있다. 얼마나 오래 그 햇볕을 맞았을까. 햇볕에 그을린 듯 갈대 깃이 짙은 고동색을 띤다. 검게 그을린 얼굴 위로 다시 햇볕이 내리쬔다. 갈대밭 옆으로 흐르는 물길 위에도, 물길 옆 추수가 끝난 논 위에도 노란 햇볕이 쏟아지자 온 세상이 황금빛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눈부시게 환한 반짝임이 갈대밭을, 순천만을 뒤덮었다. 그 속에 비할 바 없이 작은 우리가 서 있다.

갈대밭 사이를 편히 거닐 수 있도록 나무 데크로 길을 냈다. 갈대밭 입구부터 사람이 빼곡하다. 사람들이 줄지어 천천히 갈대밭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키가 큰 갈대가 사람을 깊게 에워싼다.

가까이 다가서 갈대를 관찰하니 멀리서 조망한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부드럽고 따뜻한 모습을 상상했지만, 갈대는 거친 모습으로 투박한 펄에 뿌리를 내렸다. 메마른 잎사귀와 핏기를 잃은 듯 보이는 창백한 줄기가 더욱 그랬다.

순천만과 바로 맞붙은 용산으로 사람들의 걸음이 이어진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걸음마다 숨겨둔 보물을 조금씩 드러내듯 더 넓고 크게 순천만과 갈대밭을 내보인다. 갈대밭을 거닐 때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이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만들어 놓은 듯 갈대가 둥글게 무리를 지었다. 그 뒤로 깊은 산과 굽이치는 물길이, 너른 들이 펼쳐졌다.

  

  

관심을 갖고 바라보면

순천만은 우리나라 남해안 중앙에 있다. 여수반도와 고흥반도가 둥글게 에워싸고 있는 순천만은 그 모습이 마치 둥그런 복주머니 같다. 순천 시가지를 구불구불 흐르는 동천이 그 여정을 끝마치는 곳, 순천만은 바다와 강 하구가 만나는 곳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연안 습지다. 우리가 갯벌이라 부르는 연안습지는 하천을 통해 바다로 유입된 미세한 토사가 조류에 밀려 연안에 쌓여 형성된다.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는 보금자리이며, 오염 물질을 정화하는 기능을 해 지구의 콩팥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금이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안 습지로 많은 이가 순천만을 찾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주민들이 농사를 짓고 갯벌에서 소소하게 조개를 잡던 한적한 삶의 일부분이었다. 고요하던 순천만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3년, 구불구불한 동천을 일직선으로 정리하기 위한 동천하류 하도정비사업과 골재채취사업(하천이나 산림 등에 깔린 자갈이나 모래를 채취하는 사업)을 준비하면서부터다. 마을 주민과 시민단체가 사업의 실효성과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순천만 개발을 막아섰다.

그때부터 마을 주민들은 순천만 생태계와 습지 보호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1996년, 전문가들에 의해 처음으로 순천만 생태계 조사가 시작되고, 이후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졌다. 조사가 진행될수록 순천만은 다른 모습을 드러냈다. 흑두루미, 황새, 재두루미, 매 등 희귀한 철새와 국제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다양한 갯벌 생물종, 또 풍부한 자연 생태계가 관찰됐다. 2006년에는 국제적인 습지보호 협약 람사르협약을 맺었고 국내외 다양한 단체와 협약을 맺어 습지보호 및 생태관광 선진모델로 조성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왼쪽부터) 용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갈대밭 전경, 단체사진

  

  

서로를 살리는 순천만 자연 생태계

갈대밭으로 향하는 길, 동행한 환경운동연합 습지위원회 김인철 위원이 생태공원 뒤 넓게 펼쳐진 들로 사람들의 시선을 이끌었다.

“저기 머리 부분은 하얗고 몸통은 까만 새들이 많죠? 바로 흑두루미예요. 보통 10월 말경 순천을 찾아 겨울을 나고 봄에 다시 길을 떠납니다. 보통 논에 떨어진 이삭을 먹으며 겨울을 나지요. 순천만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철새 중 하나예요. 2007년에는 순천시가 상징새를 비둘기에서 흑두루미로 바꾸기도 했고요.”

매년 순천만을 찾는 철새는 약 230여 종이다. 그중 멸종위기종, 법적 보호종 등 세계적 희귀조류도 31종이나 된다고 한다. 검은목두루미, 재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 민물도요새 등 겨울 철새가 특히 많다.

갯벌이 정화 작용을 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바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갯벌에 서식하는 다양한 생물종이다. 갯지렁이류, 게, 참꼬막, 키조개, 짱뚱어 등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한다. 강 하구가 댐으로 막히지 않은 순천만은 자연스럽게 바닷물과 강물이 들고나는 기수역(반 짠물)을 만든다. 기수역에는 하천을 통해 육지에 있는 풍부한 유기물이 유입되고 그 유기물이 갯벌에 사는 생물종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4대 강인 한강, 금강, 낙동강, 영산강 중 한강을 제외한 나머지 강은 모두 강 하구를 댐으로 막았다. 순천만과 같은 풍부한 유기물이 유입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생태계 다양성을 파괴하는 주요한 원인이다.

  

  

“금강 하류에도 신성리 갈대밭이 있죠. 하지만 그 모습이 순천만과는 조금 다릅니다. 1990년 완공된 금강하굿둑이 많은 영향을 주었죠. 강 하구는 말 그대로 강의 입입니다. 입을 막아버렸으니 생태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겠어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로도 유명한 유홍준 교수가 매년 꼭 찾는 사찰, 바로 순천 조계산 동쪽 자락에 자리한 선암사다. 선암사는 우리가 흔히 보는 조계종 사찰이 아닌 태고종 사찰이다. 백제 성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한 절로, 다양한 문화재가 사찰 곳곳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옛 모습을 잘 보존한 해우소는 문화재다.

선암사에 가려면 매표소부터 길게 난 숲길을 제법 걸어야 한다. 흙과 모래, 나뭇잎이 가득한 폭신한 산길을 걷다 고개를 들자 양옆으로 높게 자란 나무가 하늘을 가득 뒤덮었다. 옆으로 솨솨 시원하게 냇물이 길과 함께 흐른다. 자연의 소리가 가득한 숲길을 계속 걷다 보면 선암사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무지개 돌다리 승선교가 보인다. 돌을 인위적으로 깎지 않고 자연석 그대로 다리를 만들었다. 다리 아래로 슬쩍 보이는 용머리가 제법 인상적이다.

선암사는 사실 이름이 하나 더 있다. 유독 화재가 잦아 여러 번 다시 짓기를 반복했던 사찰에 혹여나 화재를 막을 수 있을까 해천사(海川寺)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말로 일주문 앞뒤로 각각 다른 이름을 새긴 현판을 발견했다.

대한민국에 오래되지 않은 사찰이 어디 있으랴 마는 선암사는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처마 밑 빛바랜 단청이, 100여 년 사찰과 함께 보낸 왕 벚나무와 철쭉나무, 선암매가 바로 그렇다. 선암사에 가가호호 자리 잡은 절마다 전하는 사연도 한 몫 더한다.

선암사는 깊은 산에 둘러싸여 있다. 사찰 아무 곳에라도 조용히 앉아 사찰 어느 곳을 바라보아도 좋은, 마음마저 정갈해지는 선암사는 자꾸만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이 발길을 잡아끄는 그런 곳이다.


글 사진 박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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