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3호] 복합문화공간 The Place

공간을 마주한 남자는 고민에 잠겼다.
40평 남짓 되는 공간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개인 작업실이나 녹음실을 생각하기도 했다.
설계도를 펼쳐 들고 이리저리 공간을 재다
그냥 공사를 시작했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우리 제법 진지해요

대전 둔산동 남선공원종합체육관 맞은편 골목에 복합문화공간 더 플레이스(The Place)가 있다. 비슷한 건물이 잔뜩 들어선 골목을 두리번거리다 건물 한 귀퉁이에 길게 매달린 간판을 발견했다. 하얀 바탕에 진지한 궁서체로 쓴 ‘더플레이스.’가 사뭇 진지하기도, 재밌기도 하다.

건물 지하에 자리한 더 플레이스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재기발랄하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 앞에 서면 가장 먼저 큼지막한 더 플레이스 로고가 보인다. 계단을 타고 계속 내려가면 지금껏 공간에서 진행했던 공연 포스터가 줄지어 붙어있다. 포스터 사이를 장식한 가짜 낙엽이 공간 입구까지 나뒹군다. 그 센스, 개구쟁이 같은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났다.

공간은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다. 40평 남짓한 공간을 다시 두 공간으로 나눴다. 공연이나 전시, 모임을 할 수 있는 넓은 다목적 공간과 음악 작업을 할 수 있는 작업 공간이다. 공간을 나눴다고는 하지만 의자 몇 개가 사이에 놓여있을 뿐 자유롭게 공간을 활용하는 개방적 구조다. 하얀 벽지 중간 노란색 벽지가 눈에 띈다. 전체적으로 깔끔한 분위기다.  

다목적 공간은 다시 무대와 객석으로 나뉜다. 무대에는 공연에 필요한 스피커와 큰 TV를 설치했다. 그 옆으로 오도카니 놓인 마이크 스탠드와 의자가 함께 공간을 채운다. 객석은 40여 개의 의자를 놓을 수 있고, 20명 정도가 더 서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다목적 공간 뒤로는 소소하게 음악 작업을 할 수 있는 컴퓨터와 장비가 한 구석에 자리한다. 그 옆으로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휴식공간도 함께 마련했다. 조금 어설픈 듯 보이기도 하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 같기도 한 공간. 화려하진 않지만, 완벽하지는 않지만 공간에 들어서면 편안함에 마음이 푹 놓인다.

  

  

재밌게 놀 거리가 없을까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모이고 그 속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활동할 수 있는 거리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그것이 음악이든, 사진이든, 미술이든 상관없어요.

조용훈 대표

다목적홀

더플레이스 입구

  

  

꿈이 계획이 되고, 현실이 되는 곳

더 플레이스는 대전에서 활동하는 인디밴드 조용훈과 가까운 사이의 조용훈 보컬리스트와 음악인 임희영, 김태석 씨가 함께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다. 8월 23일 조용훈과 가까운 사이의 개업기념 콘서트로 첫 문을 열었다. 이후로도 네 차례 더 음악 공연이 열렸지만, 꼭 음악 공연을 위해 만든 공간은 아니다. 문화와 예술, 사람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그런 공간이 되길 바랐다.

“친구들 만나면 뭐 하세요? 저는 커피 마시고, 밥 먹고, 또 커피 마시고, PC방 갔다가 헤어져요. 재미없잖아요. 재밌게 놀 거리가 없을까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모이고 그 속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활동할 거리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그것이 음악이든, 사진이든, 미술이든 상관없어요.”

공간을 총괄 운영 중인 조용훈 대표의 이야기다. 그는 더 플레이스에서 전문예술가와 예비예술가 그리고 일반인이 함께 어우러져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문화예술 장이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을 품었다.

그가 슬쩍 내민 종이 다발에 그의 바람이 제법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2015년, 더 플레이스를 가득 채울 사람과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예비예술가 인큐베이팅과 소규모 모임이다. 인큐베이팅은 음악을 하고 싶은 예비예술가가 대중 앞에 설 기회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크고 화려한 무대는 아니지만, 그들이 계속 음악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조용훈 대표는 작은 힘을 실어 주고 싶다.

소규모 모임은 프랑스 살롱 문화를 다시 부흥시키고 싶은 생각에 기획하게 됐다. 매달 다른 주제를 정하고 주제에 관련한 전문가를 초빙해 관심 있는 사람 누구나 함께 모여 이야기하고 배우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딱딱한 수업이 아니라 자유롭게 떠들고 놀다 가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고 그는 말했다. 이 밖에도 기획공연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공간을 만들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바로 ‘있어 보이지 않게, 우월해 보이지 않게’ 였어요. 예비 예술가들에게 좋은 시설을 갖춘 공연장은 부담스러울 수 있거든요. 누구나 쉽게 드나드는 곳이었으면 해요. 또 이 공간을 찾는 사람들에게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다 돕고 싶어요. 꿈을 품은 사람이든 문화예술이 궁금해 슬쩍 들른 사람이든 간에요.”

대전을 시작으로 광역시 다섯 개 지역에 그 특색을 살린 더 플레이스를 만들고 싶다는 그. 그는 이것저것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한다. 마치 꿈을 꾸는 아이 같지만 그 이면에는 제법 전략적인 아이디어들이 속속들이 묻어난다. 큰 욕심이나 야망은 없다. 다만 천천히 오래, 조금씩 공간을 채워 나갈 것이다.


글 사진 박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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