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3호] 리누갤러리

금산 복수면 목소리, 한적한 시골 길을 지나다 보면 창고처럼 혹은 교회처럼 보이는 건물을 만난다. 경사진 지붕에 눈이 쌓였다가 가장자리만 녹아 검은색 지붕이 제 모습을 조금 드러냈다. 세로로 긴 건물 벽면은 흰색, 창문은 빨간색으로 단장했다. 검은색, 흰색, 빨간색은 각각 도자기를 빚는 흙, 도자기, 도자기를 굽는 불을 상징한다. 이곳은 작년 11월에 문을 연 리누갤러리다. 하종수 대표가 7, 8년 동안 모아 온 도자기(영국 본차이나 포슬린)를 볼 수 있으며 따뜻한 홍차와 스콘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리누갤러리는 다시 새롭게 한다는 뜻의 프랑스어 ‘renouveau’에서 따온 이름이다. 하종수 대표는 리누갤러리를 만들며 많은 것을 새롭게 하고자 했다. 영어 공부를 하러 영국으로 떠나, 패션 관련 회사에서 10년 동안 일하며 모아 온 도자기를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 리누갤러리를 만들었다.

“시간 날 때마다 경매에 다니면서 모아온 것들이에요. 어느 순간 나만 즐길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게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한동안 영국 창고에 있었던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고 싶었어요.”

하종수 대표는 어려서부터 예쁜 그릇에 밥 먹기를 좋아했다. 보통의 또래 남자아이들과는 다르게 ‘예쁜 것’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교에서 관련 전공을 하지는 않았지만, 영국에서 패션 관련 회사에서 일했던 것도 어렸을 때부터 ‘예쁜 것’을 좋아했던 센스 덕분이었다. 그리고 일을 하며 우연한 계기로 도자기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일하면서 만난 사람의 집에 초대받아 그 집안 3, 4대에 걸쳐 내려온 찻잔에 차를 대접받았는데 찻잔의 아름다움과, 오랜 시간 이어 내려온 찻잔에 차를 내 준 마음에 감동했다.

“도자기는 만지면 차갑고 ‘쨍’ 하는 소리가 나요. 그런데 흙을 구워 만드는 게 기본이라 따뜻한 느낌이에요. 일단 예쁘고 그 세계가 무궁무진해요.”

개관 기념으로 《영국 본차이나 포슬린전》을 기획했다. 하종수 대표가 모아온 도자기가 벽면과 공간의 중앙, 리누갤러리 곳곳에 자리해 다양한 시선으로 도자기를 볼 수 있다.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것도 있다.
리누갤러리를 열고 처음 하는 전시인 만큼, 흔히 볼 수 없는 도자기들로 전시품을 구성했다. ‘보타닉 가든’으로 잘 알려진 ‘포트메리온’의 초기, 남성적이고 직선적인 도자기도 볼 수 있다. 하종수 대표는 기획전을 4주 간격으로 열어, 자신이 모은 도자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보이고자 한다.

  

  

  

  

여유를 기다리며 만든 공간

“홍차는 마시기까지 최소 5분이 걸려요. 물 끓이는 데 1분, 우리는 데 3분, 식혀 마시는 데까지 1분이 걸려요. 여유를 두고 마셔야 해요. 도시보다는 외곽에서 마시기 좋은 차예요. 기왕이면 공기 좋은 곳에서 여유롭게 홍차를 마시면 어떨까 해서 금산에 리누갤러리를 만들었어요.”

리누갤러리는 도자기를 전시하는 갤러리이기도 하지만, 홍차와 스콘을 즐길 수 있는 카페 역할도 한다. 입장료 9천 원을 내고 들어가면 직접 구운 스콘과 함께 홍차를 마실 수 있다.

하종수 대표는 리누갤러리가 사람들이 편하게 들르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패션 관련 일을 하며 지낸 10년 동안 제대로 홍차를 마실 시간도 없을 만큼 바빴기에 여유 있는 삶을 동경했다. 일을 그만두며 직접 ‘여유’가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리누갤러리는 혼자 시간을 보내도 좋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도 좋은 공간이다.

“리누갤러리에 오신 분들이 홍차를 마시면서 일종의 문화 체험을 했으면 좋겠어요. 당시 영국 사람들은 홍차를 어떻게 마셨는지 한번 해보는 거죠. 홍차를 처음 마셨을 당시 영국인들은 홍차를 약으로 알았대요. 빈속에 먹으면 안 좋다는 생각에 빵과 함께 먹었어요. 홍차에는 이야기가 있어요. ‘얼그레이’에도 유래 이야기가 전해요. 홍차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요. 자신이 홍차를 어떤 방식으로 우려 마시는지 이야기 나눌 수도 있고요. 홍차를 티팟 한가득 담아 따라 마시면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거예요.”

  

  

  

  

벽과 천장이 없는 곳

리누갤러리는 화장실과 방 하나를 제외하면 기다란 공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종수 대표는 ‘오픈 스페이스’라는 개념을 공간에 펼쳤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방 문화에 익숙해요. 노래방부터 시작해서 요즘에는 멀티방까지 등장했어요. 리누갤러리는 구역을 나누기보다 길게 통 구조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벽과 천장을 없앴어요.”

하종수 대표는 공간뿐 아니라 공간을 메우는 콘텐츠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도자기를 전시하는 공간으로 만들었지만,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콘텐츠로 리누갤러리를 꾸려 나가려 한다. 아마추어들의 전시 공간, 연주회장, 파티 공간, 강연장, 결혼식장 등으로 여러 성격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지난 10월 25일에는 오프닝 뱅큇으로 음악과 함께 음식을 나누었고 12월 17일에는 리누 애프터눈 프롬스 연주회를 열었다. 20일에는 두 번째 뱅큇으로 사람들을 만났다.

“갤러리는 많지만, 아마추어가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은 적어요. 리누갤러리는 전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누구나 와서 즐겼으면 좋겠어요.”

하종수 대표는 많은 사람이 와서 즐길 수 있도록 리누갤러리를 편안한 분위기로 꾸몄다. 화려하거나 한눈에 띄는 곳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면서도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다.

“마을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보는 공간이잖아요. 생뚱맞게 눈에 띄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창고 스타일로 만들었어요. 축사 같다는 말도 들었어요(웃음). 마을과 잘 어울리면서도 너무 평범하지는 않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하종수 대표는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리누갤러리 앞 정원에 심은 야생화들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산복숭아꽃이 피면 야외에서 별빛 음악제를 열 계획이다.
“상상할 수 있는 건 모두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많은 분이 와서 즐겼으면 좋겠어요.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유와 쉼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하종수대표

  

  

리누갤러리

주소 충남 금산군 복수면 수목로 280

전화 070.4246.1236

  

10:30~18:00 일요일은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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