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3호] 계룡문고 김용기 차장의 서재

‘아름다운 정원을 품은 저택, 천장이 높은 뾰족집 안으로 들어가니 거실에서부터 화려함으로 눈을 압도하고, 세련됨으로 어깨를 짓누르는 그런 서재’가 눈에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조용한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꽤 높이 올라갔다. 현관문 바로 옆, 벽 한쪽을 여닫이 서재가 감싸 안았다. 창으로 빛이 가득 들어온다. 사람은 베란다에서 담배 한 개비를 태우며 숨 고르기를 하고, 서재에 꽂힌 책은 시원한 창으로 한 움큼씩 들어오는 빛을 보며 숨 고르기 한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보아온 책이 숨 쉴 틈 없이 꽂혀 있는 서재, 그런데도 묘하게 여유를 풍기는 서재, 어느새 이 사람 자체가 되어버린 것 같은 소박하고 정갈한, 계룡문고 김용기 차장과 그의 서재를 만났다.
어느새 이 집 주인은 ‘책’이 되었다

이중 책장을 마련하던 날, 세상 전부를 가진 것 같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아버지께서 사주신 세계문학 전집부터 가장 최근에 산 책까지 버리는 것 하나 없이 집에 쌓아두었다. 책 한 권을 집으로 가지고 오는 날이면, 두 권을 가져다 버려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던 아내도 포기한 듯했다. 책장이 부족해 틈만 있으면 책을 두었다. 어느새 사람이 사용하는 공간보다 책이 사용하는 공간이 더 많아졌다. 그러다 5년 전 즈음 이중 책장을 마련했다. 책장을 사들이고 설치할 때,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빈 책장을 바라볼 때, 그곳에 하나둘 책을 꽂아놓을 때, 세상 모두가 다 내 것인 것 마냥 느껴졌다.

이사할 때도 가장 먼저 옮기는 건 책장이었다. 5년 전 책장을 마련하고 딱 한 번 이사했다. 이삿짐센터에서 집으로 오기 전에 책부터 꺼내 두었다. 책꽂이 한 칸에 든 책을 꺼내면 한 묶음이 된다. 그렇게 책은 묶음으로 두고, 사람보다 먼저 책장이 새집으로 갔다. 책장 설치하는 날을 정하고, 비로소 가족이 함께 이사하는 날을 정했다.

  

  

김용기 차장이 무덤까지 가지고 가고 싶다며 고른 책

  

  

내 서재에는 추억이 있다

아주 어릴 때 시골에 살았기 때문에 책이 귀했어요. 아버지 친구분 중 출판사를 운영하는 분이 있었어요. 그분이 어느 날 우리 고향까지 내려와서 아버지와 술 한잔을 하며 세계문학 전집을 팔았던 거예요. 그때 아버지 월급의 몇 배나 하는 돈이었어요. 몇 개월 할부로 사셨는데, 수금하러 달마다 우리 동네까지 오시곤 하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재미있는 풍경이었죠.

그게 처음으로 받은 책 선물이었어요. 정말 열심히 읽었어요. 항상 가방에 한 권씩 넣고 다니며 꼬박꼬박 챙겨 보니까 아버지께서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세계문학 전집을 다 읽을 즈음에는 한국문학 전집을 사주셨어요. 그것도 다 읽었죠. 지금 보면 이걸 다 어떻게 읽었나 싶어요. 지금까지 한 권도 버리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어요. 고등학교 때는 도서관을 맡았어요. 일주일에 몇 번씩 도서관에서 청소도 하고, 책 정리도 하고, 대출도 해주고, 그런 일을 하는 거였어요. 공부해야 했기 때문에 자주는 못 왔지만, 다른 친구들보다는 자주 오는 편이었죠.

  

  

  

  

20년 넘게 걸어온 ‘길’에도 책이 있었다

대학도 국문학과를 갔다. 그때만 해도 학교는 학교가 아니었다. 매일같이 데모였다. 그때는 도서관에서 장준하 선생의 『사상계지 수난사』, 『민족주의자의 길』 등을 읽었다. 지금 내가 사는 이 시대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 전까지는 잘 알지 못했다. 충격도 받았고, 고민도 많았다. 하지만 현실이 고달팠다. 학비를 낼 형편이 되지 못해서 대학을 마치지 못했다.

낮에는 학원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지내다 서점 일자리를 소개받았다. 1988년이었다. 대구에 있는 한 서점이었는데, 아침 9시에 문을 열어서 밤 10시까지 근무했다. 한 달에 22만 원을 받으며 일했다. 그때 물가를 따져봐도 적은 돈이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책을 좋아했던 게 도움이 됐다. 전자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은 때였다. 손님이 와서 책 정보를 물으면, 손님과 함께 이야기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때는 작은 서점 하나 하는 게 꿈이기도 했다. 1997년인가 1998년에 인터넷 서점이 나오면서는 그 꿈을 일찌감치 접었다. 이제는 내가 모은 책만 가지고 동네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랑방’을 만들고 싶은 바람이다.

  

  

창문 아래 공간 역시 책이 자리잡았다.

김용기 차장은 요즘도 카세트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다.

김용기 차장과 그가 좋아하는 소설가 조정래의 사진이 나란히 붙었다.

  

  

직장에도 집에도 ‘책’이 있었다

1993년도에 대전에 내려왔어요. 1988년부터 지금까지 서점에서 일한 거죠. 예전에는 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만 서점에서 일할 수 있었어요. 정보가 많던 시절이 아니었잖아요. 책을 사러 오는 사람도 아주 작은 정보 하나만 가지고 서점에 왔거든요. 예를 들어서 어떤 소설가의 단편 소설 제목만 가지고 책을 찾으려고 하는 손님이 있었어요. 그 제목으로 책을 찾을 수 없었죠.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소설 한 편이었으니까요. 그럴 때마다 찾아주고, 이야기하는…. 그런 재미가 있었는데, 요즘은 기계가 다 알아서 해주니 서점에서 일한다고 특별히 더 책을 많이 아는 건 아니에요. 손님과 소통하고, 책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럴 때가 좋았던 것 같아요. 제 생각은 그래요. 지금 있는 책들이 일하며 큰 도움이 된 책들이죠.

어릴 때 산 책보다 일하며 산 책이 더 많아요. 어릴 땐 대부분 책을 빌려서 읽었으니까요. 대학 때 정말 사고 싶었던 책이 창작과 비평 계간지였는데, 돈이 없어서 사질 못 했어요. 얼마 전에 계룡문고 헌책 서점에서 발견했을 때는 어찌나 반가운지 소리를 지르고 싶었어요.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그때 실감했어요. 왜 그렇게 책이 좋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읽었던 책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훑어보다가 한 줄만 마음에 들어도 사요. 그렇게 해도 책 한 권에서 한 줄을 얻을 수 있는 거였어요. 다른 건 다 써버리면 없어지지만, 이 책들은 내가 죽기 전까지 버리지 않으면 언제라도 찾아서 다시 볼 수 있잖아요.

  

   

나와 내 자식을 키운 ‘책’

반가워서 괴성을 지르고 싶었던 책, 30년 전 처음 대학에 들어가 산 책, 아버지가 선물해준 첫 번째 책, 선물 받은 책, 무덤에도 가지고 가고 싶은 책, 한 줄이 마음에 들어 단숨에 읽어버린 책, 예전에 읽었던 것을 기억하고는 사놓고 모셔둔 책 등 김용기 차장의 서재에는 인생의 조각이 하나씩 꽂혀 있었다. 제발 가져다 버리라며 핀잔하는 가족도 결국에는 책과 함께 자랐다.

영혼을 조금씩 떼어다가 책갈피로 만들어 하나씩, 수천 권의 책에 넣어 두었다. 서재에서 꺼낸 책 한 권마다 조금씩 떼어놓은 그의 영혼이 한 줌씩 묻어 나왔다.


글 사진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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