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3호] 결혼, 그 참을 수 없는 무거움에 관하여

약 3년 전,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20~30대를 이르는 ‘삼포세대’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이 말을 접한 대부분의 20~30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취업난으로 인해 점점 늦어지는 취업 연령과, 취업을 하더라도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경제난 덕분에 특히 결혼이 더는 ‘선택’이 아닌 문제가 됐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포기해야하는 시대가 됐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누군가는 결혼을 꿈꾸며, 결혼에 드는 비합리적인 소비를 지양하는 대안적인 결혼을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결혼제도 자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비혼주의자도 있다.)
이에 월간 토마토는 20~30대의 진짜 생각이 궁금해졌다. (월간 토마토 기자가 모두 2030세대라는 점 또한 한몫했다.) TV나 신문에서 대상화되는 2030세대가 아닌,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평범한 20~30대 청년들의 ‘결혼’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 말이다. 그래서 올해 처음으로 시작하는 ‘토마토 수다 모임’ 첫 번째 주제를 ‘결혼’으로 정했다.
결혼을 했거나, 하지 않은 네 명의 청년이 한자리에 모였다. ‘수다 모임’이라는 성격에 걸맞게 결혼에 관한 자유로운 생각이 오고갔다.
결혼, 대체 뭘까

성수진 오늘 토마토 수다 모임 첫 번째 시간으로, 결혼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오늘 모인 분 중에 결혼하신 분들도 있고, 결혼하지 않은 분들도 있는데요. 각자가 결혼에 관해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이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먼저 각자 소개를 해 주세요.

저부터 소개하자면, 스물여덟 살이고 월간 토마토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결혼을 하고 싶은 미혼입니다. 저에게 결혼은 막막한 것 같아요. 여기서 두 분은 결혼을 하셨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결혼을 하는지 궁금한 사람이에요.

  

  

김현비 저는 스물다섯 살이고요. 지난 5월에 결혼해서 결혼한 지는 이제 7개월이 됐어요. 남편과는 일곱 살 차이가 나요. 저는 스무살 때부터 2년 정도 연애를 자유분방하게 많이 했거든요.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다보니까 지금 남편이 저에게 가장 잘 맞는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도 있었는데, 늘 한결같이 저를 대해주고 늘 그 자리에 있어주는 남편을 보고 이 사람은 놓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김규리 저는 서른두 살이고, 옛 충남도청 2층 도지사실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어요. 미혼입니다. 저는 지고지순한 스타일이라 한 사람에게 올인하는 편인데, 연애에 한 번 실패하고 난 후에는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공부에 다 투자했어요. 또 작년에 엄마가 많이 편찮으셨는데, 그 후로는 결혼 생각을 잠정적으로 접었어요. 결혼하기 전에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드리고 싶더라고요.

  

  

최종하 저는 스물다섯 살이고, 5월에 결혼했습니다. 이제 50일 된 아기도 있고요.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아내가 대학교 때 친구였어요. 군대 전역하고 페이스북으로 찾아서 연락하고 만나게 됐어요. 연애 당시 아내가 타 지역에 있었는데, 1년 정도 사귀다가 임신을 하게 됐고, 결혼했어요.

  

  

이형동 저는 서른한 살, 미혼이고요. 공정여행 기업 (주)공감만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일하다 대전에 온지 이제 3년이 다 돼 가는데, 대전에 기반이 없다보니 결혼을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저는 결혼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스스로 보이지 않는 유리벽을 주변에 치는 것 같아요. 가족이 생기기 때문에 뭔가를 하려고 할 때 벽에 부딪히게 되는 거죠. 결혼이라는 테두리가 안전한 만큼 그 밖으로는 나가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수진 결혼을 ‘못’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어른들은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런 시각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결혼하신 두 분께 결혼해서 좋은 점이 무엇인지 묻고 싶어요.

  

  

최종하 저는 결혼은 양날의 검 같아요. 남자로서 책임져야 할 부분이 생기니까 좀 어른스러워졌어요. 결혼 전에는 가볍고, 농담도 많이 하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자제하게 돼요.

  

  

김현비 저는 남편한테 물어봤어요. 집에 왔을 때 혼자가 아닌 게 좋대요. 또 제가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남편이 밤늦게 퇴근하면 밥을 챙겨 놓거든요. 그런 게 참 좋대요.

  

  

  

  

결혼은 어쩔 수 없는 현실?

김규리 원래 본가가 용인 죽전이라 분당에 친구가 많아요. 거기 사는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집, 차, 예물 등 결혼을 위해 엄청난 준비를 하더라고요. 대전 사는 친구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요. 결혼하신 분께 결혼을 위해 얼마나 준비를 하는지, 아님 사랑만으로 시작하는지, 부모님이 도와주시는지 그런 게 궁금해요.

  

  

김현비 결혼은 현실이에요. 여러 형태가 있겠지만, 저는  양가 부모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연애하면서는 딱 두 번 싸웠는데, 결혼 준비하면서는 예단 때문에 엄청 싸웠어요. 울기도 많이 울고, 서로 화도 많이 냈죠. 연애 2년보다 결혼 준비 5개월이 더 힘들었어요(웃음).

  

  

최종하 저희는 전혀 반대예요. 저희는 부모님께 손 안 벌렸어요. 처음부터 서로 통장 공개하고 예물은 없는 걸로 하자고 했죠. 부모님이 그래도 안 된다고 해서 와이프에게 백만 원 준 게 전부예요. 전세대출로 집을 구했고요.

  

  

성수진 그런데 결혼에 돈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일동 많이 필요해요(일동 웃음).

  

  

김현비 실례를 들게요. 같이 살기 위해선 공간이 필요해요. ‘원룸에서 살면 되지.’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원룸에서 결혼생활을 지속하기는 힘들어요.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살기 때문에 각자의 공간이 필요하거든요. 즉, 구획이 나뉜 집이 필요해요. 또 둘이 살게 되면 모이는 돈이 두 배지만 나가는 돈은 세 배예요. 혼자 살 때보다 집이 커지잖아요. 이런저런 관리비가 더 들어요. 식비도 늘어나요. 뿐만 아니라 결혼을 하면 양가 경조사를 다 챙겨야하니까 만만치 않은 지출이 생겨요. 나 혼자 살 때는 찾아뵙지 않아도 될 사람을 특별한 일이 생길 때마다 일일이 다 찾아봬야하고 그 때마다 뭔가를 사야 하잖아요.

  

  

성수진 이형동 씨는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이 많은 것 같은데, 어떤 생각이 들어요?

  

  

이형동 반반인 것 같아요. 좋겠다 싶을 때도 있고,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고. 한 편으론 든든한 아군이 생겨서 좋을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상황에 있든 옆에 있어주는 아군. 저는 결혼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상황이 갖춰지면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내 인생에 든든한 아군을 만드는 방법이 결혼 말고는 다른 건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결혼이라는 ‘제도’

성수진 결혼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 낸 제도잖아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건데 말이에요.

  

  

김현비 사람들이 만들어낸 바람직한 삶의 표본인 것 같아요. 태어나서 글자를 배우고, 고등학교를 가서 이과, 문과를 선택하고, 대학교를 가고, 졸업하고 취업하는 거예요. 배우자를 찾을 때는 남자는 키, 여자는 55사이즈, 뭐 이런 식으로 짜여 있잖아요. 씁쓸하죠.

  

  

이형동 국가는 국민을 생산해야 하는데, 그걸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서 결혼이라는 제도를 두고 장려하는 거죠. 결혼하면 아무래도 싱글에 비해서는 제도적인 혜택이 있는 것 같아요.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결혼을 통해 사회 구성원으로서 갖춰야 하는 균형감각 같은 걸 가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살면 사소한 습관이나 의견 같은 것 때문에 싸우기도 하면서 조율해나가는 법을 터득하잖아요. 혼자 살면 그럴 기회가 없잖아요. 선입견일 수 있고 일반화할 수 없지만 마흔 넘은 분들 중에서 결혼 안 한 분들을 보면 전문성도 있고, 학식도 있는데 뭔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하려고 하고, 사고는 20대에 머물러 있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김규리 그런데 결혼을 한다고 해서 성숙해지냐 하는 것은 의문이에요. 저희 아빠도 보면 아직도 엄마한테 엄청 혼나요. 청년 같다니까요(웃음). 주변에 결혼을 해도 성숙하지 않은 사람이 많아요.

 

  

이형동 궁금한 게 있는데, ‘이 사람하고 결혼하겠다.’라고 언제 느꼈어요?

  

  

최종하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은 확실히 멀어지면서부터였어요. 장거리 연애를 하다보니까, 두 번째 헤어졌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죠.

  

  

  

  

결혼은 어떻게 걸림돌이 되는가

김현비 결혼하기 전에 하고 싶은 건 다 하셨어요? 저는 다 했던 것 같아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더라도 ‘내가 너 때문에 이거저거 못했다.’ 그렇게는 안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일탈도 해보고, 하고 싶은 거 다 해 봤어요.

  

  

최종하 저는 결혼 전에 수입이 많지는 않았지만,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나머지로는 하고 싶은 걸 다 했어요.

  

  

이형동 직장을 다닐 때 어느 정도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기 마련인데, 결혼이 그런 데 걸림돌이 될 거란 생각은 안하셨어요?

  

  

최종하 저는 첫 직장에서 운 좋게 대표자로 일했어요. 노인시설 시설장이었거든요. 그래서 위로 올라가고 싶고 그런 게 없었어요. 근무도 자유롭고, 퇴근도 일찍 했죠. 지금도 가정이 생겨서 뭘 못하고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김현비 그런데 여자들은 결혼하고 나서 어려운 점이 있어요. 구직할 때 결혼했다는 말을 들으면 좀 꺼려하죠. 경력상 카페 점장급으로 지원하는데 헤드헌터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얘기를 하다가 결혼했단 얘기가 나오니까 급히 말을 돌리더라고요.

결혼했을 경우 통념상 시댁 일이라든지, 각종 행사 때문에 근무를 빠질 수 있는 상황이 있고, 언제든지 임신하고 그만둘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인 것 같아요.

  

  

김규리 저희 쪽에서도 연구보조원을 뽑을 때 기혼여성을 자꾸 커팅시켜서 왜 그런지 물었더니, ‘회식도 잘 빠지지, 집에 일찍 가지, 게다가 임신해서 일 못하면 어떡하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희 도지사실 직원 중에 아이 있는 유부녀 한 분이 있는데, 그렇게 일을 잘해요. 그런데도 야근 안하고 회식 참여 안 한다는 이유로 뭐라고 하죠. 참 아이러니 해요.

  

  

최종하 제 아내의 경우에도 대전에 오면서 일을 그만뒀어요. 일을 되게 하고 싶어 해요.

  

  

김규리 그런데 이형동 씨는 집에서 장가가라고 안 해요?

  

   

이형동 안 하세요. 저는 본가가 경주고 학교를 서울로 가서 직장을 다니다가 지금 회사에 다니려고 그만두고 대전에 왔는데, 부모님이 보시기에는 매우 탐탁지 않으신 거예요. 사회적기업에서 일한다고 하니까 빨갱이인 줄 아시고(웃음). 부모님도 포기하셨어요. 웃긴 게 ‘급’이라는 게 암암리에 있나 봐요. 전 직장에 있을 때는 선 자리도 많이 들어오고, 부모님이 괜찮은 배경을 지닌 사람을 소개시켜주려고 했는데, 이제는 뭐 여자라도 데려와라 하시는 거죠(웃음).

저는 대전에 오면서 모든 연애생활이 끝이 났어요(일동 웃음). 그런데 어머니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세요. 다른 사람을 만나고 섞이고 하는 과정이, 사람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건데, 너 혼자만의 꿈을 위해서 이러는 건 이기적인 것 같다고 하시죠.

저는 여기에 오면서 했던 생각인데,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경제적인 부분 이외에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뭔지 결혼하신 분들에게 듣고 싶어요.

  

  

김현비 저는 편안함이라고 생각해요. 남편이랑 만났을 때도 이전의 다른 연애와 다르게 설렘 없이 시작했고, 가식 없이 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줬어요. 남편이 그런 모습을 좋아해 줬고요.

  

  

최종하 저도 마찬가지예요. 아내는 두근거리지 않아서 싫다고 했는데, 저는 그게 편했어요. 

  

  

김현비 그게 어떤 기분이냐면, 일주일 동안 매일 만나잖아요. 그러면 7일 중에 이틀은 잘생겨 보이고 설레요.

  

  

최종하 맞아요. 편안하고 포근하다가 가끔 두근거리면 그게 더 좋아요.

  

  

김현비 그리고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해요. 연애할 때는 화장을 못할 때도 비비는 바르고 눈썹은 그리는 그런 거요. 그리고 결혼하고 나서는 밥을 해주는 거요. 남편이 요리를 못해서 굉장히 고마워해요. 설거지는 남편이 하고요. 또 하나는 결혼 전에 키우던 강아지가 있었어요. 남편은 개를 좋아하지 않는데, 제가 좋아하니까 개 키우는 걸 받아들였어요. 또 시댁과 저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잘 해주고요. 그런데 정말 여자하기 나름인 게, 연애할 때는 남편이 완전 백지였거든요. 어쩜 이렇게 남자가 센스가 없나 했죠. 하지만 최대한 인내심을 가지고 모든 것을 설명해주려고 노력했어요. 가령, 연애 초기에 남편이 안전벨트를 안 매더라고요. 그래서 남편한테 ‘오빠가 안 다쳤으면 좋겠다. 소중한 사람을 잃기 싫다.’ 그런 식으로 계속 설득했죠. 결국은 안전벨트를 하더라고요. 또 남편이 피드백이 엄청 빨라요. 그런 피드백의 결과가 쌓여서 지금에 이르렀죠.

  

     

풀리지 않는 숙제 같은

성수진 평소에 결혼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있었는데, 오늘 여러 이야기를 들으니까 더 복잡해지네요. 앞으로도 많이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럼 각자 소감을 말하고 마치도록 할까요?

  

  

김현비 굉장히 재밌었어요. 제가 결혼 수다 모임에 간다고 하니까 남편이 괴성을 지르면서 “내가 나갔어야 되는데!” 하더라고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남편을 불러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웃음).

  

  

김규리 오늘 즐거운 시간이었고요. 아직 결혼은 미지수네요. 딱히 부럽지도 않아(웃음).

  

  

최종하 현비 씨 얘기를 들으면서 참 부러웠고요. 결혼하고 나서 말수가 많이 줄었는데, 오랜만에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재밌었어요. 이야기하는 동안 아내 입장에 서서 생각도 하게 됐고요. 오늘 집에 가서는 양말을 제대로 벗어 놓을까 하고 생각 중입니다(일동 웃음).

  

  

이형동 다른 사람 얘기를 듣는 건 어떤 주제가 됐건 다 재밌는 것 같아요.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고, 결혼에 관해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나라는 사람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어요. 결혼이란 건 아직도 모르겠고, 해도 모를 것 같아요. 어떻게든 단정하는 건 위험한 것 같기도 하고요.

  

  

        


글 사진 엄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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