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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93호] 마을공동체와 함께하는 석교동
2005년, 석교동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생활의 고민을 마을 단위로 꺼냈다. 아이들이 편하게 책을 읽을 공간이 없어 근처 한밭도서관이나 가오도서관까지 가야 했던 엄마들이 마을에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을 꾸렸다. 이후,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은 석교동 마을공동체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교육공동체한뼘더, 청소년문화카페 24/7, 석교마을미디어센터, 한발두발 마을공정여행이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을 거처로 삼아 활동하고 있다.
교육공동체한뼘더 대표 김수경 씨는, 2005년 당시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의 이용자였다. 우연히 광고지를 보고 들른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 사람들은 김수경 씨를 편안하게 받아주었다. 당시 김수경 씨는 다른 일을 하며 바쁘게 지낼 때였다. 그렇게 몇 년간 아이들만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에 보내고 자신은 일로 바빴는데 어느 날 불현듯 ‘내가 뭘 하고 있지?’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혼자 바쁘게 사는 삶이 아닌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을 고민하게 됐고 이후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에서 봉사활동 하면서 주도적으로 마을을 생각했다.
그 무렵,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은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한발두발 마을공정여행 대표 이명숙 씨가 마을공동체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에 있다.
“처음에는 도서관 이용자였어요. 늦둥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고 제가 직장을 구하며 아이를 맡기다시피 했어요. 학교 끝나면 도서관에 가 있으라고 하고 퇴근하고 아이를 데리러 갔죠. 그런데도 그때는 고마움을 못 느꼈어요. 그러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고 친구들과 관계가 깨지며 상처를 받았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다가 우연히 도서관에 와서 고민을 얘기 했는데 엄마들 이야기 중에 답을 찾았어요. 그 후부터 애 키우면서 도서관을 안식처, 해결처로 삼았죠. 그러다 직장을 그만두고 새 직장 구하는 사이에 도서관 봉사활동 시작했다가 눌러앉았어요.”
교육공동체한뼘더
교육공동체한뼘더도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을 모태로 한 마을공동체다. 2010년에 기획했던 방학 프로그램에서 생각을 확대해 방과후 마을학교를 만들었다.
“저는 학교에 대해 좋은 기억만 있지는 않아요. 폭력적인 선생님을 만난 적도 있고요. 아이를 학교에만 맡기기에 불안한 부분이 많았어요. 또 나름대로는 아이를 학원 보내지 않고 책을 가까이하면서 자유롭게 키우고 싶었고요. 학원 중심 문화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김수경 씨는 평소 자녀 교육에 관해 해 오던 생각을 마을학교로 실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마을에, 아이들의 방과 후 시간을 걱정하는 맞벌이 부부가 많다는 것에 주목했고 의기투합한 엄마 교사 네 명이 교육공동체한뼘더로 모여 방과 후 마을학교를 만들었다. 마을학교를 처음 시범 운영할 때 모인 엄마들은 두 가지 약속을 했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말자는 것, 아이들에게 하루에 한 시간은 아무 간섭 말고 하루를 정리할 시간을 주자는 것이었다.
한 아이에 10만 원씩을 걷어 운영비와 교육비를 충당했다. 맞벌이를 해 아이 교육에 신경 쓰지 못하는 엄마, 알짬마을도서관이 하는 일이라면 믿고 참여하는 엄마들이 아이를 데리고 왔다.
올해 5년 차를 맞은 교육공동체한뼘더는 6개월 과정으로 학생을 모집했는데, 올해 하반기에는 운영하지 않았고 지금은, 더 좋은 마을학교를 운영할 수 있도록 교사 양성 등으로 기반을 다지는 상태다.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을 중심으로 다양한 엄마들이 모였다. 어떤 엄마는 음식을 잘 만들고 어떤 엄마는 이야기를 잘하고, 어떤 엄마는 만들기를 잘했다. 이를 바탕으로 석교동 마을공동체들은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갔다. 아이들 먹거리 챙기는 걸 잘하는 한 엄마는, 마을에 혼자 사는 어르신과 맞벌이 부부 아이들의 먹거리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월 12만 원으로 한 주에 두 번씩 세 가지 반찬과 국을 배달하는 허준의밥상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2년 정도 진행했다. 지금은 진행하지 않지만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을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은 허준의밥상을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고 있다.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 한편에 자리한 청소년문화카페 24/7은 교육공동체한뼘더에 모인 아이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카페다. 교육공동체한뼘더에는 초등 과정밖에 없었는데, 중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들이 계속 다니게 해달라고 요청해 중등 과정을 만들었다. 따로 프로그램은 두지 않고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에 도움을 주는 형식으로 중등 과정을 운영했고, 그 과정에서 24/7을 만들었다.
마을 안에 놀 공간이 없어 아쉬웠던 아이들은 자신들이 놀 공간을 직접 만들었다. 마을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보통 아이들이라면 경험하지 못할 것들을 경험하며 마을에 관한 애착심도 키웠다. 24/7을 운영하는 박민하 학생은 무엇보다 카페 운영이 재밌다고 말한다.
“사람들 만나는 게 재밌어요. 원래 도서관에 계시던 분도 만나고 모르는 사람도 만나고요. 마을이랑 관련지어 하는 게 많으니까 그동안 몰랐던 특별한 사람들을 알아 가요. 만약에 도서관에 안 왔었다면 석교동이 좋은지 안 좋은지도 몰랐을 텐데, 석교동이 좋아졌어요.”
24/7은 한 주에 한 번, 토요일에 문을 연다. 처음에 호기 있게 카페 운영을 시작한 아이들은 생각보다 챙겨야 할 것이 많아 어려움도 겪었다. 무엇보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은데, 은행동에 나가는 게 ‘노는 것’인 친구들과 함께하기가 쉽지 않았다.
청소년 문화센터 24/7
2012년 12월, 석교동을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이 석교마을신문을 만들었다. 마을을 하나로 엮는 연결고리로 신문을 선택했다. 창간 준비호를 3호 만들고, 2013년 5월에 창간호를 냈다. 처음에는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과 교육공동체한뼘더를 중심으로 석교마을신문을 만들었는데 점차 마을 전체에서 고민하는 마을의 사업이 됐다. 마을 사람들로 어린이, 청소년, 어른 기자단을 꾸려 함께 신문을 만든다.
한 달에 한 번, 석교마을신문이 나오면 옥계동, 호동, 석교동에 가가호호 배부한다. 기자로 활동하는 사람들과 봉사자들이 구역을 나누어 직접 마을 사람을 만나며 신문을 나눈다.
“지금은 신문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늘고 마을 사람들이 신문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처음에는 ‘얼마나 오래가겠어?’ 하셨던 분들도 꾸준히 신문 받아 보시며 생각이 달라졌을 거예요. 조금씩 마을을 들여다보게 되지 않았을까 기대해요.”
이명숙 씨는 직접 신문을 배달하며 마을 사람들과 마을 이야기, 마을공동체 이야기를 나누려 노력한다.
“상가 쪽 배부를 맡아서 하고 있는데, 상인분들이 경기 침체 때문에 힘들어하세요. ‘우리 동네는 틀렸어. 아파트가 생겨야 하지 않나.’ 말씀하시는 분이 많은데 저는, 아파트 대신 우리 마을이 갖고 있는 자랑스러운 것들을 이야기해 드려요. 근처에 보문산과 대전천이 있고 석교마을신문도 있고, 마을공동체도 있고요.”
처음에는 석교마을신문에 관심 없던 마을 사람들도, 아는 얼굴들, 동네 소식을 신문에서 접하며 즐거워한다. 가장 먼저 석교마을신문의 배부처 역할을 했던 이모 정육점 사장 하윤자 씨가 신문과 관련한 재미있는 기억을 풀었다.
“창간 축하한다고 사진 찍은 게 신문에 실리고 주위 할머니들이 유명인사 됐다고 아는 척 많이 했지. 그리고 한 번은 우리 엄마 사진도 신문에 실렸어. 엄마가 사진 찍었다고 말도 안 했는데 신문에서 보고 알았지.”
이제는 석교마을신문을 집집마다 배달하니 배부처가 따로 필요하진 않지만, 하윤자 씨는 지금도 이모 정육점이 석교마을신문 배부처라는 것을 잊지 않고 가판대를 챙겨둔다.
올해 상반기까지 대전시 지원 사업으로 석교마을신문 발행에 드는 재정적 도움을 받았지만, 이제는 지원 없이 자생적으로 석교마을신문을 발행하는 방법을 고민해야하는 시점이다. 다행히 석교마을신문을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마을 사람들도 늘고 있고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신문의 방향도 잡아가고 있다. 현재는 자문위원들이 신문 후원자가 늘 때까지 신문 발행 비용을 해결하겠다고 한 상황이다. 김수경 씨는 석교마을신문 발행비를 고민하면서 마을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신문 발행비 관련해서 마을에 고민을 꺼내기 어려웠는데 막상 꺼내 놓으니 마을 안에서 의미 있게 생각해 줬어요. 그래서 석교동이 마을인가 싶었어요.”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 석교마을신문 등으로 마을을 들여다본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이 애향심과 마을에 관한 자존감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마을을 여행하며 마을의 여러 자원을 만나는 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마을에 있는 문화재,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고 경로당에 찾아가 마을의 옛이야기를 듣는 마을 여행을 기획하는 한발두발 마을공정여행은 여러 준비 과정을 거쳐 2013년, 마을에 등장했다.
한발두발 마을공정여행도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을 거점 삼아 활동하고 있다. 2005년에 만든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은 이제 어린이 도서관뿐만 아니라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는, 마을 도서관으로 기능한다.
처음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을 만들 때, 3천 원부터 회비를 걷는 후원회원을 모집했다. 하루에 백 원씩 모아 한 달에 3천 원을 마을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돌다리사랑방’ 정신을 계승한 것이었다.
돌다리사랑방은 석교동 사람들이 품고 있는 따뜻한 기억이다. 1992년, 석교동 주민센터의 한 사회복지사와 몇 사람이 함께 한 달에 3천 원부터 내고 싶은 금액을 기부하는 민간 봉사 단체를 구성했다. 한 달에 한 번 돌다리사랑방 구성원들이 직접 마을을 돌아다니며 기부금을 걷고 다양한 방식으로 마을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 돌다리사랑방은 2012년쯤, 더는 기부금을 걷지 않고 활동을 하지 않아 없어졌지만, 그 정신은 남소저 빨래방으로 이어졌다.
남소저 빨래방은 석교동에 살았던 한 할머니 이름을 딴 빨래방이다. 돌다리사랑방이 남소저 할머니를 지원했고, 자식이 없었던 할머니는 고마운 마음에 마을에 집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집을 기증한 후 1년 동안 빈 상태로 있었던 집을, 1995년 대전시가 복지만두레 사업을 하며 생활이 어려운 마을 사람들의 빨래를 대신 해주는 빨래방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금은 민간 차원으로 마을 사람들이 봉사하고 있다.
석교동에서는 ‘함께 사는 것에 관한 고민’이 일찍부터 공동체 형태로 실현됐다. 돌다리사랑방 정신이 남소저 빨래방으로, 또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으로 이어졌다.
돌다리사랑방에서 활동했고, 남소저 빨래방에서 봉사활동 하는 이봉자 씨는, 석교동 마을공동체들의 조언자 역할을 하는 ‘마을 언니’다. 마을공동체들의 활동을 바라보는 이봉자 씨의 마음은 특별하다.
“처음에는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이 그냥 도서관인 줄 알았는데 그 공간에서 하는 일이 많더라고요. 저도 봉사활동을 오래 했지만 연세 많은 분에 집중해서 봉사했어요. 그런데 도서관 생기고 나서 커 나가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게 뭔가 생각해 보게 됐어요. 마을에 아이들이 놀 공간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곳이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이에요. 또 예전에는 돌다리사랑방이 동네 소식을 전했다면 지금은 석교마을신문이 그 역할을 해 주고 있어 감사해요. 좀 더 활성화됐으면 좋겠어요.”
올해,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 교육공동체한뼘더, 한발두발 마을공정여행, 석교마을미디어센터, 청소년문화카페 24/7이 협력해 한국여성재단의 지원으로 안심·안전마을만들기 사업을 진행했다. 마을 공동체 교육, 마을 안전도 설문 조사, 안전 워크숍, 안전지도 만들기, 안전 마을학교 운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다섯 단체가 그동안 만들어 온 영역이 따로 또 같이 제 역할을 했다. 지역의 지구대, 치안센터, 아동센터 등과도 교류하며 함께 안심·안전마을만들기에 힘썼다. 김수경 씨는 안심·안전마을만들기를 진행하며 마을 관계망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이야기한다.
“나와 이웃의 고민이 해결된다고 해서 마을 고민 전부가 해결되는 건 아니에요. 함께 얽혀야 전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안심·안전마을만들기 한 해 사업을 끝내고 보니 함께 시작했던 공동체 말고 다른 살이 더 많이 붙어 있더라고요. 안심·안전마을만들기는 올해 사업으로는 끝났지만, 활동을 이어서 지구대, 치안센터와 함께 밤길 돌기를 진행하고 있어요. 꾸준히 해 나가는 게 필요해요.”
이제는 많은 마을 사람이 석교동 마을공동체의 활동을 알고, 낯설어하기보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참여도 한다. 하지만 석교동 마을공동체의 고민은 여전히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데 있다.
“아직도 마을 사람들이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에 아주 자유롭게 드나들지는 못해요. 저희는 자유로운 장소로 마을에 내 줬지만,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뭔가를 같이 해 나가는 데 있어 전체를 아우르는 힘이 부족해요. 홍보가 부족하기도 하고요. 지금은 ‘마을에 착한 이모들이 있어.’ 정도의 인식을 만든 것 같아요.”
김수경 씨는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것에 관한 고민 말고도 마을공동체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부분에 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생각한 형태가 사회적 협동조합(지역주민들의 권익, 복리 증진과 관련된 사업을 수행하거나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협동조합)이다. 사회적 협동조합을 설립해 마을공동체의 구심점을 만들고 마을에서 여러 활동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또 청년 일자리 창출에도 힘쓸 계획이다.
마을 사람들과 모이는 자리를 자주 만들다 보니 마을 사람들이 모일 장소의 필요성도 느낀다. 매칭펀드(공동자금출자) 형식으로 진행하는 행정자치부 희망마을 조성 및 지역공동체 활성화 사업을 통해 커뮤니티 센터 설립 지원을 받고자 했으나, 중구의 예산 부족으로 기획서를 내지 못한 상황이다. 지금은 커뮤니티 센터를 설립할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
석교동 사람들은 자신과 이웃의 문제를 마을 안에서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나에게 필요한 것, 이웃에게 필요한 것, 마을에 필요한 것을 함께 고민하며 더 ‘잘’ 사는 마을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일은 결코 ‘낭만’이 아니다.
올해, 석교동 마을공동체는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진행한 국민통합 민·관 워크숍에서 우수 마을공동체 부문 우수상을 받았고 안전행정부가 주최한 지역공동체 우수사례 발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 이후, 김수경 씨는 기자들에게 많은 질문을 받는다. 공동체를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질문에 김수경 씨는, ‘우리는 이상을 바라보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한 신문기자가 ‘공동체 왜 하셨어요?’ 하고 물었는데 그 질문에 ‘살려고요.’라고 대답했어요. 지금 문제를 해결하고 지금을 잘 살고자 하는 일들이에요. ‘나’에게서부터 시작된 고민이죠. 내 문제를 혼자 해결할 수 없어서 이웃과 함께 해결하는 거예요. 그게 마을공동체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한발두발 마을 공정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