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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93호] 《시인, 사진을 쓰다》 전
유리문 안으로 보이는 갈색 양파 더미가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그 옆에 함께 전시된 원고지에는 그녀의 시 「양파공동체」일부가 쓰였다. 군산의 철길 옆에서 늘어놓은 양파를 보고, 그녀의 시집 제목인 「양파공동체」가 떠올랐다. 무수히 많은 껍질을 벗겨낸 후에야 제 속살을 드러내는 양파처럼 그녀도 이번 전시에서 자신이 세상에 벗겨낸 껍질을 하나씩 보여주었다.
「나는 시의 바깥에서 긴 해변을 따라 한참을 걸었고 갔던 길을 몇 번이나 되돌아 왔지 검은 눈을 받아먹고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바다는 웅성였어 나와 같은 색을 가진 바다의 혓바닥에서 나는 쏟아지는 눈을 뺨에 붙인채 걸었어」
긴 바다를 따라 걷는 사진 속 한 사람의 모습을 따라 가다 보면, 이런 글귀가 나온다. 그녀는 지금보다 어렸고, 시를 계속 써야 하는지, 고민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찍었던 사진을 정리하는 데 한 번씩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더라고요. 무엇보다도 사진을 보면서 시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고 해주시는 분이 많아서 좋았어요. 시가 쉬워질 필요는 없지만, 다른 콘텐츠와 함께 시민에게 다가가는 것 역시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시를 쓰기 전, 그녀가 시어를 채집하는 방식을 하나씩 공간에 옮겼다. 시인이 시를 뱉어내기까지의 과정이 갤러리라는 공간과 어우러졌다.
“우연히 손미 시인을 알게 되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떠오른 아이디어였어요. 시인이 찍은 사진을 보는데 전문가가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뭔가 더 많은 이야기가 담긴 것 같더라고요. 시와 함께 전시하면 좋을 것 같았어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날이 좀 풀리면 손미 시인에게 추천을 받아서 시인과 함께 하는 전시로 기획해도 좋을 것 같아요.”
일리아 갤러리 강혁 작가의 말이다. 원고지에 쓰인 글귀가 하나씩 사진 위에 박힌다. 시인의 세계가 하나씩 마음으로 다가온다. 손미 시인의 시 「달콤한 문」의 한 구절처럼 문 안에서 “우주가 울고” 있었다.
일리아 갤러리 대전시 유성구 반석로 20 플러스존 3층 30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