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93호] 황귀자 군밤 아주머니
요즘처럼 장사가 안되는 날에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종일 리어카 앞에서 장사하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볼 때면 ‘좋은 곳에서 태어났더라면 이 고생을 안 했을 텐데,’하는 생각을 한다. 여태껏 살면서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이만큼 살아온 건 30여 년 동안 해온 이 일 덕분이다. 거리 위에서 오랫동안 지켜온 나의 일이 있어서다.
대전역 대한통운 앞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먹고 살려고 시작한 장사다. 큰아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했으니 34년째다. 대한통운 앞에서 10년 정도 있다가 으능정이로 자리를 옮겨 그곳에서 20년 동안 장사를 했다. 으능정이에 스카이로드가 들어선 뒤로는 장사를 못 한다. 지금은 이곳저곳 자리를 옮겨 장사한다.
대전역 앞에서 장사할 때는 툭하면 단속이 나오곤 했다. 단속에 걸리면 벌금을 내고 다시 장사하곤 했다. 그때는 장사하는 사람끼리 텃세도 심해서 정말 힘들었다. 또 예전에는 횡단보도가 많이 없어서 교통사고가 난 적도 많다.
지금이야 이 일을 한 지 오래됐으니 모든 것이 익숙하지만, 처음 장사를 할 때는 말도 제대로 못 했다. 이 년, 삼 년쯤 됐을 때 사람들을 향해 겨우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지난 30여 년 동안 길 위에서 생선을 팔아본 적도 있고, 과일, 채소를 팔기도 했다. 10년 전부터는 추워지면 군밤을 팔고 날이 풀리면 달고나 장사를 한다. 목척시장에 리어카를 보관하는 곳이 있어 거기서 장사하는 곳까지 리어카를 끌고 온다. 이때는 애들 아빠가 도와줘 힘은 덜 든다. 오전 열한 시에 나와 저녁 여덟 시가 넘은 시간에 하루 장사를 정리한다.
잘 구워진 군밤은 노란 알맹이만 나오게 잘 까서 봉투에 담아 판매한다. 3천 원과 5천 원짜리 봉투가 있는데 “삼천 원어치만 주세요.” 하며 군밤을 사러 오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가격만 물어보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이 더 많다. 사람들의 주머니는 거리 위에서도 쉽게 열리지 않는다. 불황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살기가 점점 빡빡해지니 사람들의 모습도 예전과 같지 않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다 어수룩하고 수더분했다. 지금은 까칠한 사람들이 여럿 있다. 어떤 사람은 봉투에 담은 군밤을 다시 쏟더니 안 산다고 돌아가 버린 적도 있다. 장사하다 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는 거다. 소도 보고, 말도 보고 그런다. 물건 사러오는 사람들 마음이 다 같은 게 아니니까. 그래도 말을 예쁘게 하면 더 주고 싶고 그렇다.
군밤을 잘 구워 놓고, 사람들에게 군밤이 팔리기만 기다리는데 장사라는 것이 기대대로 되지 않는다. 날 춥다고 안 되고, 좋다고 잘 되고 그러는 게 아니다. 장사는 감으로 하는 게 아니다. 그날 장사는 그날 안다.
올해도 그렇고 내년도 그렇고 바람은 단 하나다. 몸 건강한 게 최고다. 체력이 될 때까지는 장사할 생각이다. 그리고 지금 사는 것처럼 남한테 빚 안 지고 살고 싶은 소박한 소망이 있다. 또 장사가 잘 안되면 적절한 시기에 놀러 다니고 싶다. 중국도, 호주도 가보고 싶다. 제주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