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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93호] 조정래 감독
지난 12월 27일 대전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소녀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귀향> 후원콘서트가 열렸다. 서울, 원주, 충주에 이어 다섯 번째다. 후원콘서트는 밴드 조 리드보컬 배철 씨가 기획한 행사로, 그동안 국민모금 방식으로 이뤄졌던 제작비 마련에 또 하나의 동력이 되고 있다. 공연 스태프와 함께 대전을 찾은 조정래 감독의 얼굴은 밝았다. 이제는 자신의 의지보다는 후원자의 의지와 시대적 소명이 이끄는 힘이 더 크다고 했다. 무엇보다 영화를 만드는 모든 사람들의 ‘맨 앞’에 있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낀다는 그는 믿음직스러웠다.
‘귀향(鬼鄕)’에는 혼이 되어 고향에 돌아온다는 뜻이 담겨있다. 70여 년 전, 타지에서 외롭고 아프게 죽어간 소녀들의 혼이 돌아올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조정래 감독은 2002년 창작 판소리 집단 ‘바닥소리’의 전속 고수로 봉사활동 차 나눔의 집을 방문했다. 당시 강일출 할머니의 그림 ‘태워진 처녀들’을 보고 느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위안부 소녀들이 일본군의 소각명령에 의해 구덩이에 던져져 집단 학살 당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었다. 이로 인해 심한 몸살과 악몽에 시달린 조 감독은 영화의 줄거리를 떠올렸고, 2003년에 시나리오 초안을 완성했다.
그로부터 10여 년 만인 작년 10월 <귀향>은 경남 거창에서 첫 촬영을 마쳤다. 주변의 탐탁치 않은 시선이 있었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투자를 받는 것도 녹록지 않아 제작비를 마련하는 데 고초를 겪었다. 조 감독은 결국 ‘귀향’ 홈페이지를 통해 국민모금에 나섰다. 국민손길이 하나하나 보태졌고, 현재까지 모금된 액수는 1억 3천만 원 정도다.
“얼마 전에는 <한겨레21> 송호진 기자의 기사 덕분에 다음 ‘뉴스펀딩’에서 ‘언니야, 집에 가자’는 프로젝트로 모금을 하게 됐어요. 44일 동안 1천만 원을 모금하는 게 목표였는데, 벌써 8천만 원이 모였어요. 오늘이 9일째예요. 더불어 다음 ‘희망해’에서도 모금을 하고 있는데 목표금액 1천만 원에 현재 1천800만 원을 넘어섰어요. 물론 25억 원 가량 소요되는 제작비에는 아직 턱없이 부족하지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이제는 <귀향>이 제 의지라기보다는 모든 후원자의 의지와 시대적 소명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귀향>은 강일출 할머니의 실화와 다른 생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었다. 위안소에서 탈출해, 이제는 할머니가 된 ‘정민’이 어린 무녀 ‘은경’을 통해 타향에서 죽음을 맞이한 동무 ‘영희’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진도씻김굿을 기반으로 해 우리 음악이 가진 힘을 담았다. <귀향>은 죽어간 위안부 피해 소녀들을 고향으로 불러들이는 한 판 굿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엔딩신에서는 소녀들의 원혼이 모두 돌아와요. 영화가 한 번 상영될 때마다 한 분 한 분의 혼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영화로 지내는 제사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귀향>은 위안부 소녀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론 지금의 얘기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 한 해 많은 억울한 죽음이 있었는데, 어느 하나 해결된 것이 없잖아요. 그래서 지금 해야 할 얘기라고 생각해요.”
올해 3월 포천 세트장에서 본격 촬영에 들어가는 <귀향>은 광복 70주년을 맞는 8월 15일 개봉을 목표로 한다. 한편 크라우드 펀딩은 ‘귀향’ 홈페이지, 뉴스펀딩, 다음해 등에서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다.
“대전에는 국립현충원이 있잖아요. 국가를 위해 싸우다 타향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혼이 서린 곳이죠. 그런 선열께서 억울하게 죽어간, 갈 곳 없는 어린 영혼들을 안아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때문에 대전 시민의 힘이 보태진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