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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6호] 전철 오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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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란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원래는 할머니 댁, 고모 댁 할 때 쓰는 댁, 즉 집을 뜻하는 말이에요. 집 안에서 계속 무엇 한 가지에 몰두하는 마니아를 일본에서는 오타쿠라 부릅니다. 게임 오타쿠, 애니메이션 오타쿠, 아이돌 오타쿠 등 이름만 갖다 붙이면 될 정도로 종류가 많아요. 그중 전철 오타쿠는 영화 ‘전차남’의 소재가 되어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일본의 전철은 어린아이에서 어른까지, 여성 남성 가릴 것 없이 다양한 층의 오타쿠를 거느리고 있어요. 저 또한 다른 나라와는 굉장히 다른 일본의 전철에 많은 흥미를 느꼈습니다. 지금도 일본에 와서 뭐가 제일 인상 깊었냐 하고 물어보면 전철이라고 대답해요.
도대체 일본의 전철에는 어떤 매력이 있길래 영화가 생길 정도로, 오타쿠가 생길 정도로 인기가 있는 걸까요? 오타쿠가 좋아하는 전철의 매력 포인트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차량의 종류, 전철 사진, 전철 소리, 각 역에 설치된 스탬프나 표 모으기, 전철 시간표, 역사 등이 있어요.
전철 오타쿠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차량의 종류를 좋아하는 오타쿠라고 합니다. 어떤 이름의 차량인지, 성능의 차이는 어떤지, 실내는 쾌적한지 등등 전국의 전철을 비교하는 거지요. 이름이나 성능은 잘 모르는 저에게도 실내의 디자인을 비교하는 재미는 참 쏠쏠하답니다. 의자 색깔을 비교해 보거나 앉았을 때의 느낌 등 저 나름대로 전철을 평가하는 거지요. 우리나라처럼 국가가 지하철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여러 기업이 지하철을 운영하기 때문에 기업의 특색이나 아이디어가 잔뜩 들어가 있습니다.
전철 소리 오타쿠는 도대체 뭐나고요? 전철이 출발할 때 울리는 멜로디, 차내 방송, 전철이 달릴 때 소리 등을 수집하거나 즐기는 오타쿠예요. 일본의 큰 서점에는 전철코너가 있어요. 전국 전철의 시각표나 전철 전문 잡지는 물론이고, 흔치 않은 전철이 달리는 소리나 장면을 CD나 DVD로 만들어 팔기도 하지요. 동경 생활에 익숙해진 저는 전철이 출발할 때 멜로디를 귀 기울여 듣기 시작했어요. 전철이 출발하기 전 역에서 울리는 멜로디가 모든 역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그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멜로디가 울린답니다. 예를 들어 ‘타카다노바바 역’이 있는 지역에는 ‘우주소년 아톰’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만든 작가의 회사가 있어요. 그래서 타카다노바바 역에서는 ‘우주소년 아톰’주제가의 멜로디가 울려요. 전철이 달리는 소리나 차내 방송의 차이점은 잘 몰라도 역마다 다른 멜로디는 일본어를 모르는 관광객이어도 발견할 수 있는 소소한 재미인 것 같아요.
일본의 전철은 같은 노선이라도 종류가 아주 다양합니다. 모든 역에 정차하는 각 역 정차에서부터 중간역을 뛰어넘어 운행하는 준급행, 급행, 특급 등 목적지에 따라 더 빨리 갈 수 있도록 골라서 탈 수 있어요. 그에 따라 전철 시간표 또한 복잡하고 자세하게 짜여 있습니다. 이런 시간표를 수집하거나 분석하는 재미도 쏠쏠해 전철 시간표에 푹 빠진 오타쿠도 있답니다. 또한, 일본 전철의 시간은 아주 정확하기로 유명합니다. 사고나 날씨로 인해 가끔 늦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경우에도 몇 분 늦겠다 하는 정보를 반드시 알려줍니다. 아침 뉴스에서도 사람들의 출근길을 지켜주기 위해 어떤 선의 전철이 멈춰있는가, 언제 다시 운행할 예정인가 교통정보를 반드시 알려준답니다.
전철에 이렇게 많은 매력이 있다니, 전철 오타쿠가 많이 생기는 이유도 알 것 같죠? 일본의 전철은 전철 그 자체뿐만 아니라 전철에 타는 사람들의 예절이나 역에서 일하는 역무원들의 태도도 흥미롭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하철에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전화통화 하는 것이 크게 이상한 장면은 아니죠? 일본은 전철을 타면 반드시 전화를 매너모드로 하고 통화를 중단해요. 아주 조용한 분위기예요. 점검을 위해 전철 안을 돌아다니는 역무원들이 출입 시 반드시 허리 숙여 인사하는 것은 물론, 전철을 움직이는 역무원이 손가락으로 점검할 부분을 하나하나 가리키고 소리 내어 “문제없음!” 하고 확인하는 모습도 멋집니다. 매력이 넘치는 일본의 전철, 오타쿠까지는 되지 못하더라도 재미있는 점을 한두 개씩 발견하다 보면 탈 때마다 즐겁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