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96호] 제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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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e, like no one is watching you. Love, like you’ve never been hurt before. Sing, like no one can hear you. Work, like you don’t need money. Live, like heaven is on earth.

- Alfred De Souza –

이 문구를 읽을 때마다 생각해본다. 나의 삶이 타인의 눈에 의해서 조정되고 결정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너무나 많은 이유로 다음을 기약하고 눈치를 본다. 내게 있어서는 ‘혼자서 어떻게…’, ‘너무 충동적인 결정이니까…’가 가장 흔한 이유이다. ‘…임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인데 말이다.

    

   

나의 제네바행은 갑작스러운 결정이었다. 스트레스로 가득했던 일주일을 힘들어하며 평소처럼 인터넷 서핑과 맥주 한잔으로 금요일 저녁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어느새 취미가 되어버린 ‘지도 보기’. 그날도 ‘여기도 가보고 싶고 저기도 가보고 싶네’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지도를 보는 일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가보지 못한 곳들, 미지의 세계가 깨알같이 펼쳐있으니 말이다.) 그러다 꽂힌 곳이 제네바. 수년 전 인터라켄과 융프라호는 다녀왔지만 제네바나 취리히 등 정작 그 도시들은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비행기표를 알아보니 오호라~ 다음주 토요일에 당일치기 표가 가격이나 시간적으로 아주 적합했다. 아침 6시 30분 제네바행, 오후 9시 30분 런던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이니 시간상 충분할듯하다.

   

   

한 주 내내 설레는 마음이다. 사무실에 앉아 심통난 마음도 돌아오는 토요일 미니 여행을 생각하며 위안을 받는다. 즐겁다!

   

   

토요일이다. 난 제네바로 가고 있다!

   

   

이번 여행의 포인트는 아무 준비 없이 간다는 것이었다. 아무 것도 알아보지 않고 도피하듯 비행기에 올랐다. 제네바 공항에 도착해 가장 먼저 간 곳은 ‘Info center’. City map에 꼭 가봐야 할 곳을 표시해 달라고 부탁한다. 제네바에서 시내까지 들어가는 교통편은 공항에서 표를 무료로 제공해 주며 버스로 20분 정도면 된다. 버스에 탑승하여 여행 루트를 짜기 시작한다. 유럽의 소규모 도시들은 대부분 도보로 여행하는 것이 가장 좋다. 버스정류장에서 가까운 곳부터 도보로 천천히 걸어보기로 한다.

   

   

처음 마주한 곳은 Lake Geneva(제네바 호수)이다. 스위스와 프랑스를 가로지르는 이 호수는 호수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규모로 선착장의 수많은 요트가 그 크기를 상상하게 한다. 호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Jet d’eau. 한국말로하면 물기둥 정도이지 않을까? 사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뭐 저런 것을 해놨을까 싶었으나 가까이 와보니 ‘와~’라는 감탄이 나온다. 물기둥이야 그냥 물줄기일 뿐이나 그 물보라들이 날씨와 결합하니 감동으로 다가온다. 꿀꿀했던 그레이 하늘이 갑자기 열리며 한 줄기 햇살이 비집고 내려온다. 그 빛을 받은 물보라들은 무지개로 변하여 내 마음에도 컬러풀한 향연을 열어준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구시가지다. 저쪽에 첨탑들이 삐죽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첨탑들을 나침반 삼아 천천히 발길을 옮긴다. 구시가지 입구에서 담쟁이들과 맞은 편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성가대의 합창 소리가 나를 맞아준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 천천히 하나씩 가자. 그저 소리가 닿는 곳으로, 내 발이 이끄는 곳으로 쫓아갈 뿐 서두를 일이 있을쏘냐…. 천천히 계단을 오르니 구시가지의 지붕에 다다른다. 에스프레소 한잔으로 잠시 쉬어간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Musée de Art et Histoire (예술과 역사 박물관)이다. 런던의 내셔날 갤러리와 대영박물관을 축소해 합쳐놓은 듯 하달까? 그림도 전시되어 있고 문화재도 같이 공존하다. 전시된 양은 적지만 알차게 진열되어 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건물 안 정원에서 평화로운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것과 박물관이 분주하지 않다는 것이다. 박물관이라기보다 쉬면서 문화생활도 할 수 있는 도시의 작은 쉼터 같은 느낌이다.

  

   

Plaine de Plainpalais에서 보게 된 벼룩시장. 정말 살 것은 없는 듯하다. 여행책자나 설명을 보면 항상 벼룩시장이라는 말에 현혹되곤 하는데, 이제 경험상 벼룩시장에는 우리가 기대하는 그런 낭만과 빈티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여기 벼룩시장은 더 이상하다. 심지어 싱크대까지 들고 나와 팔고 있다. 정말 팔려고 나온 것 맞나? 마침 점심시간도 지났고 해서 근처 슈퍼에 들어가 햄, 빵 그리고 음료수를 사서 광장 벤치에 앉아 식사를 해결한다.

  

   

점심식사 이후로는 정말 말 그대로 발 가는 대로 바람 가는 대로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덕분에 보통 여행자들은 가보지 않을 동네도 가보았으나 결국은 방향 감각을 상실, 시내로 돌아가는 길을 잃었다. 몇 자 모르는 불어로 열심히 길을 물어보지만 모두들 버스를 타라고 한다. 무슨 고집인지 난 절대 버스에는 오르지 않는다. 결국 택한 것은 강을 찾아 가는 것이다. 왼쪽으로 강이 흐르고 있다. 지도와 맞춰보니 제네바를 가로지르는 또 다른 강 L’Arve 이었다. L’Arve의 옥빛 강물과 주변 마을들의 고요함, 또 다른 제네바의 매력에 빠져든다.

  

   

시내로 들어와 공항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생각해 보니, 오늘 하루 사용한 경비는 비행기 표값 포함해서 한국 돈으로 16만원 정도. 하루 걸은 시간은 8시간쯤. 몸은 조금 힘들었지만 경비만 따져볼 때는 런던에서 먹고 마시며 토요일 하루를 보내는 비용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가장 좋았던 것은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보내며 힐링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오롯이 나를 생각하며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는 것. 제네바가 선사하는 깨끗함과 평화로움. 몸은 혼자였지만 외롭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았다. 우리는 혼자 하는 여행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너무 외롭지 않을까,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등등. 사실이다. 외롭고 어색하다. 하지만 단 한번 주어진 인생,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격려하고 위로해주는 시간도 필요하다. 인생은 자신의 페이스(pace) 대로 흘러간다. 내 페이스 없이 남의 시간과 시선에 맞추어 사는 것은 이미 내 인생이 아니다. 온전히 혼자 하는 여행. 내 생의 페이스 찾기의 좋은 지침표가 될 것이다. 알프레드 드 수자의 문구처럼 오늘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자신의 행복을 위해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남들이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것처럼 춤추고 노래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말이다.

   


글 사진 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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