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96호] 보편적 조건으로서의 공화주의와 조건 없는 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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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와 18세기는 소유권혁명의 시대이기에 소유는 이 시대 정치철학에서 중심 문제가 된다. 설령 칸트처럼 논증 체계에서 소유중심적인 건축술을 의식적으로 배격하더라도 소유의 문제는 이미 그와 같은 이론적 발전의 배경을 이루며 칸트의 공화국 개념 내부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칸트에게 ‘법적 상태’, 곧 ‘공화국’은 ‘최종적 소유’의 형태로 잠정적 소유를 실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유는 폴리스의 문제가 아니고 오이코스의 문제일 뿐이라고 보는 고전 공화주의는 논외지만, 어차피 고전적 공화주의에서는 기본소득이건 노예제도이건 폴리스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공화주의의 관심 영역을 벗어나 버린다.

기본소득을 정당화하려면, 사적 소유의 정당화 이론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이론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을 정당화하는 공화주의 역시 전혀 다른 유형의 공화주의일 것이다. 정당한 사적 소유의 이론과 연관되는 구조에서 공화주의는 기본소득에 대한 전면적인 정당화를 달성하지 못한다. 물론 오늘날 사적 소유권이 차지하는 사회적 중요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개되는 사태는 정반대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로부터 사회과학적 차원이 아니라 규범논증적 차원에서도 소유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정반대로, 사태는 우리에게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사적 소유권보다 훨씬 더 높은 심급에서 정당화할 것을 요구한다. 한편으로,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의 실질적 자유의 사회적인 구현이어야 한다. 즉, 기본소득은 소유권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물질적 독립성을 보장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소유권은 소유를 취득하는 특정 조건에 결부된 권리에 불과하지만 이와 정반대로 기본소득은 ‘무조건적인 일반적 권리’이어야 한다. 현대 사회에는 소유를 취득하는 여러 가지 합법적 조건이 있다. 착취, 수탈, 임노동, 계약, 상속 등은 그러한 합법적인 조건들이다. 이로부터 취득되는 소유권과는 달리 만인의 무조건적 기본소득의 논증은 더 보편적인 심급에서 시도되어야 한다. 

    

    

첫째, 소유권 논증의 협소한 지평으로부터 벗어나 지구에 대한 만인의 공유 개념에서 출발할 경우에만 기본소득에 대한 적절한 정당화로 나아갈 수 있다.

둘째, 이와 같은 공유 개념은 소유의 한계를 설정하는 소극적인 개념이 아니라 적극적인 ‘규범논증적 역할(normbegründende Funktion)’을 해야 한다.

셋째, 이와 같이 적극적인 규범논증적 역할은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무조건적인 일반적 권리’로 정당화하기에 충분하여야 한다.

넷째, 이와 같은 충분한 논증기능을 가지는 공유 개념은 그 개념에 내포되어 있는 고유한 대립인 ‘공유(communio)인가 소유(dominium)인가’의 대립을 넘어서야 한다. 즉, 그러한 공유 개념은 물질적 재화의 귀속과 관련된 차원을 넘어서서 모든 인간에 공통적으로 부여된 ‘보편적 조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로부터 공유 개념에서 보편적인 ‘이념의 공화국’, 보편적 원칙으로의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 이는 로크에서 칸트로 이어지는 발전의 선(線)에서 대략적인 방향성이다. 이로써 우리는 공유 개념으로부터 ‘보편적 공화국’의 개념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다섯째, 이와 같은 ‘보편적 공화국’은 단지 - 칸트 식의 - ‘원칙의 공화주의’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즉, 한편으로는 추상적-규제적일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구체적 형성의 역할을 해야 한다. 좀 더 상세히 말하자면, ‘보편적 공화국’은 인종적 차이, 성별, 이주, 장애 여부 등 어떤 특수한 차이와 무관하게 만인은 모두 동등한 인간이라는 ‘보편적 인간 자격의 공화국’일 뿐만 아니라, 누구나 충분한 기본소득을 통해 사회적 조건의 ‘공통성’을 가지고 있는 ‘보편적 인간 조건의 공화국’이어야 한다. 칸트는 앞부분에 머물고 말았다. ‘원칙의 공화주의’는 ‘공통성의 공화주의’를 통해 보충되어야 하며, 이때 ‘공통성’이란 ‘보편적 자격’과 ‘보편적 조건’을 함께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여섯째,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무조건적이고 보편적인 권리로 충분히 정당화할 수 있는 유형의 공화주의는 ‘보편적 조건의 공화주의’이고, 이러한 조건은 자연적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즉 자격의 보편성은 조건의 보편성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달리 말하자면, 그것은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그가 가진 보편적 자격 - 인류의 공동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격 - 에 부합되는 ‘사회적 조건’을 인류 사회가 공동으로 보장한다는 의미에서의 ‘보편적인 사회적 공화국’이어야 한다.

‘원칙의 공화주의’로부터 ‘사회적 조건의 공화주의’로 나아가는 확장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공적 원칙을 생성하는 ‘구성적 조건’은 그 자체로도 물질화되고 사회화되어야 한다는 관점이다. 즉, 칸트에게 그러한 의미의 ‘구성 조건’을 의미하는 ‘만인의 입법자로서의 동등한 자격의 원칙’은 만인에게 단지 자격이 아니라 조건으로, 곧 자격에 부합되는 현실적 조건으로 확립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보편적 자격의 공화주의’는 ‘보편적 조건의 공화주의’를 수반하며 양자는 동일한 원리 위에 서 있다. 아래에서 이 시대의 민주적 공화주의, 곧 ‘민주공화국’의 지평에서 이 문제를 간략히 정리해 보겠다.

인류 공동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만인의 보편적이고 동등한 자격은 개념적으로 ‘평등(동등성)의 원리’와 ‘공통성의 원리’를 모두 함축한다. 즉, 모든 사람은 i) 인간으로서의 동등한 자격을 ii)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 첫 부분은 무엇보다도 평등한 선거권의 의미에서 오늘날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이다. 평등 원리는 선거권의 범위를 넘어 여러 가지 평등한 자격들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또한 사회구성원의 물질적 조건의 문제로 전개될 수도 있다. 즉, 동등한 추상적 자격에 입각하여 구체적으로 자격에 합당한 조건에 대한 요구가 정당화된다. 여러 가지 사회적 권리가 그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그런데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회적 권리들 중에서 기본소득, 곧 모두에게 특수한 조건과 상관없이 만인에게 평등하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동등한 자격의 원칙’, 곧 ‘동등성의 원칙’에 가장 접근한다. 기본소득은 사회구성원이라는 자격 요건에만 기초하는 보편적 복지 제도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동등성의 원칙’에 접근한다. 그것은 평등한 선거권의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와 원리적인 상동성을 가장 많이 보여준다.

정치적 국민주권은 평등의 원리에 기초한다.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누구나 평등한 선거권을 가진다. 마찬가지로, 기본소득 역시 평등의 원리에 기초한다.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재산 수준과 상관없이 모두 동일한 액수의 기본소득을 지급받는다. 민주주의와 기본소득은 같은 원리 위에 기초한다. 기본소득은 구빈(救貧)을 위해 지급되는 국가의 시혜(施惠)나 사회적 자선(慈善)이 아니라 모두가 대등한 사회구성원 또는 국민이라는 보편적 자격으로부터 비롯한다. 기본소득 도입은 시혜적인 복지를 보편적인 복지로 바꾸고, 보편적 복지의 정당성과 국민주권의 정당성을 원리적으로 통일된 기초 위에 세운다. 이와 같은 원리적 상동성을 통해 사회구성원 모두의 보편적 복지에 관한 논의가 가지는 주권론적 차원이 열리고 기본소득 운동의 민주주의 운동으로서의 의미가 확보된다.

기본소득을 통해 민주주의에 고유한 평등의 원리는 정치 영역에 한정시키지 않고 사회적 권리와 같은 포괄적인 시민권의 문제로 확장된다. 이와 같은 확장은 연대성 개념의 확장, 곧 ‘처지의 차별성에 입각한 연대성’에서 ‘자격의 동등성에 입각한 연대성’으로의 확장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개념적 확장을 우리는 권리 차원의 유형적 구분(typological distinction)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종래의 공공부조가 ‘특수한 처지에 입각한 시혜(benefits from special contingent condition)’라면 시민 또는 인류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보편적 자격에 입각한 권리(rights from universal status)’이다. 이 구분은 종래의 잔여적ㆍ선별적ㆍ시혜적 복지와 기본소득에 입각한 보편적 복지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을 제공한다.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통해 달성되는 평등, 곧 사회적 조건의 평등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충분조건을 가진다는 의미이지 동일한 조건을 가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본소득은 전면적인 조건의 평등이 아니라, 조건의 부분적인 평등이 일체의 개별적 처지와 무관하게 수립된다는 결과를 낳을 따름이다. 공통적으로 동일한 조건을 가진다는 것과 모두가 절대적으로 동일한 조건을 가진다는 의미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는 조건 없는 기본소득의 정당화가 직접적으로 정치적 평등 원리에 의거하여 정당화되지 않으며, 둘은 오직 - 기본소득이 지급되는 액수의 범위에서만 - 원리적 상동성을 가질 뿐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만든다.

기본소득은 노동에 입각한 분배라는 소유중심적 정의론의 고유한 구조를 깨고, 노동과 소득의 연계를 부분적으로 완화시킨다. 여기에서 자기 자신의 노동과 소득의 연계를 왜곡하는 것은 착취와 수탈이지 기본소득은 아니라는 관점은 매우 중요하다. 기본소득은 이 연계를 완화하는 작용을 통하여 연계의 왜곡을 시정하는 기능을 가질 뿐이다. 금융적 지대적 수탈에 대한 조세적인 역수탈을 통해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한다고 가정하면 이와 같은 시정 효과는 확실해질 것이다.

더 나아가, 기본소득을 통해 발생하는 노동과 소득의 연계 완화는 이 사회의 전통적인 정당화 이론에 대해 매우 심각한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바로 여기에 모든 정당화 이론의 확보된 척도들을 의심해야 하며 새로이 배열되고 새로운 내용을 부여받아야 할 필연성이 놓여 있다.


금민 기본소득 한국 네트워크 운영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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