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96호] 21세기 신종 검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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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을 한주 앞둔 지난 2월 13일, ‘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대책위원회’라는 구성체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21세기의 10년이 지나가고 다시 5년 정도가 흐른 작금에 마치 20세기 후반에나 들어봤음직 한 ‘표현의 자유 사수’라는 문구가 다시 등장했다. 지난 독재정권이나 권위주의 정권에서나 저항성을 담아 외치던, 이제는 지난 시대의 상투적 구호로까지 여겨지던 이 문구가 대체 왜 2015년 초반부터 대한민국에서 터져 나오게 되었는지 당황스러움을 넘어 당혹스러움을 안겨준다. 이 위원회를 구성한 공동대표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의 이은 회장,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의 최은화 대표, 한국영화감독조합 이준익 대표, 전국영화산업노조 안병호 부위원장 등이다. 공동대표의 면면만으로 한국 영화계의 대가이자 실질적인 꾼(?!)들이 대부분 참여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참여단체로는 ‘한국독립영화협회’와 ‘대전독립영화협회’를 비롯해 50개가 넘는 영화관련단체가 연명으로 참여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체 이들은 왜 소위 쌍팔년도에나 들어봤을 ‘표현의 자유 사수’라는 절박한 구호를 외치게 된 것일까? 과연 어떤 일이 대한민국 영화계에 벌어지고 있는가 말이다.
    
   

최근 영화계엔 때아닌 ‘밀당’이 횡행하고 있다. 시쳇말로 밀당인듯 밀당아닌 밀당같은, 실은 한쪽의 일방적인 일종의 협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현재까지 드러난 협박 같은 일방적 밀당의 주체는 한쪽은 부산광역시라는 메가시티의 오야봉ÿ 아니, 시장이다(죄송합니다. 시장님임에도 하시는 짓거리가 그만, 호칭에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또 다른 한쪽은 역시 최근 부산으로 본거지를 옮기고 최초로 비영화인 출신 오야ÿ 아니, 원장을 맞이한 ‘영화진흥위원회’, 줄여서 일명  ‘영진위’라 불리는 대한민국 유일의, 말 그대로 영화진흥을 위한 기관이다. 잠깐 이번 사태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밀당 같은 협박의 상황을 설명해 드리자면 이렇다.

이 시작의 근원은 두 가지로 나뉘어지는데 먼저 벌어졌던 사태는 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공식상영작이었던 한국독립다큐멘터리 <다이빙 벨>에 대해 영화제 측에 상영취소 압력을 행사했던 영화제 조직위원장 ‘서병수’ 부산시장의 행태였다. 전 세계 어느 영화제에서도 벌어진 적이 없는 지자체장의 영화제 직접개입 시도는 2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아시아 영화의 창구이자 허브로서의 위치를 다져온 부산국제영화제에 해외 토픽에나 날 법한 모욕감을 선사하는 순간이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시대의 역행자로서 스스로 꼰대적 기질을 만천하에 드러낸 ‘서병수’ 부산시장은 국내외 영화 관련 단체와 영화대중을 포함하는 영화인들의 항의와 조롱 속에 일단 굴욕적 일보 후퇴를 택하게 된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자의 와신상담이랄까.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부산시의 급작스러운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긴급 감사가 이루어지고 이를 근거로 이번엔 ‘부산국제영화제’의 산파이자 좌장인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종용하기에 이른다. 언뜻 보면 집행위원장 한 사람의 사퇴만을 요구하는 모양새이지만 국제영화제라는 조직의 특성상 이는 결국 기존의 영화제 조직 자체를 대대적으로 재편하겠다는 선전포고인 셈이다. 또 다른 파문의 진원지인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서는 10개월 동안 공석이던 영진위원장으로 지난 1월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에서 교수인 ‘김세훈’ 씨가 공모가 아닌 추천 후 문화체육부 장관의 선임이라는 사상 초유의 형식으로 취임한다. 영화계의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영화인 대부분이 반대 혹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영진위 사상 최초의 비 영화계 위원장으로 취임한 김세훈 씨는 그래도 ‘혹시’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하루빨리 털어내고 싶다는 양으로 ‘영화제 상영작 등급분류 면제추천’을 개정하고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사업’과 ‘다양성 영화 개봉지원 사업’의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한다. 실로 광풍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몰아치는 영화계에 대한 테러예고 수준급의 이 사태에 영화인들은 넋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가뜩이나 등급외 전용관이 한 곳도 없는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실질적 검열 장치가 되어버린 ‘제한상영가’ 등급문제로 부글부글 끓고 있던 영화계는 이를 새로운 검열시대의 부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만다. 결국, 각 사안에 대해 국내외 영화단체와 인사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자 일단 서병수 부산시장과 영진위의 김세훈 원장은 마치 일종의 안내서가 존재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의도가 곡해되었다. 이는 현 상황에 대한 개선책을 찾자는 제안이고 검토이지 확정된 건 없다.”라는 취지의 해명으로 마치 이 사안들이 앞서 표현한 ‘밀당’의 대상이라도 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꼬리를 내리는 듯, 내리지는 않는 어정쩡하고 뒤가 개운치 않은 여지를 남긴다.    

그런데, 이들이 누구인가. 서병수 부산시장은 친박 실세라는 감투 아닌 감투를 호칭으로 부여받고 집권당의 텃밭에서 가장 큰 지자체의 수장을 꿰찬 인물이며 영진위원장 선임 전까지는 비교적 무명에 가까웠던 인지도의 김세훈 원장은 일찍이 현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 탱크로 출발한 ‘국가미래연구원’의 연구위원 출신으로 초창기 뉴라이트의 핵심이었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비록 한 명은 투표로 선출된 선출직 지자체장이고 한 명은 기관의 임명직 기관장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현재 대한민국 최고 권력 최고서열의 측근이자 가신 출신임은 자명하다.

이렇게 맥락적 의미에서 살펴보다 보면 작금의 검열 시대 부활 같은 악몽을 선사하려는 작태가 혹, 현 정부체제 아래 권력의지의 드러나지 않은 주문으로 조율되어 벌어지는 일은 아닐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체 왜 이들은 영화판에서 영화인 대다수가 원치 않는 일방적 밀당을 벌여가며 지난 세기 검열 공화국 체제의 공포를 되살리려 하는가 말이다. 지난 2월 4일 부산시는 특정한 부산지역 일간지를 통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소위 지도점검에 대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다시금 일방적 밀당의 선빵(?!)을 날렸다. 이 결과에 따르면 부산국제영화제는 규정 위반과 도덕성의 결여가 일상화된 ‘문제적 집단’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이에 대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즉각적으로 반박과 해명자료를 내놓았지만, 부산시 측은 일부 사소한 실수나 관행적 측면의 비위 사례를 사실관계 파악 단계도 생략한 채 단순 나열하여 주장하는 것 이외에는 결정적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할 객관적이고 결정적인 사유들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일방적 밀당의 대상인 부산국제영화제 측이 현재로서는 ‘을’의 위치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한계적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부산시에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개적인 외부 검증단을 구성해 필요하다면 청문회까지도 개최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후 서병수 부산시장과의 면담 뒤, 1년에서 2년 정도의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를 제안하고 집행위원장에서 물러난다는 ‘쇄신안’을 발표한다. 일련의 과정을 볼 때 아마도 현재 부산시의 영화제에 대한 집요한 개입 의지에 지원축소 등을 비롯해 예견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라 판단된다.

영진위 또한 마치 한발 물러설 듯 어정쩡한 태도를 견지하며 ‘영화제 상영작 등급분류 면제추천’ 개선 검토에 대해 약간의 수정을 통해서라도 기어코 여지를 마련하겠다는 밀당의 자세를 버리지 않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사업’과 ‘다양성영화 개봉지원 사업’은 폐지를 확정하다시피 하고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26편의 다양성영화를 선정해 ‘선택과 집중’의 형태로 전환된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지원책인 듯, 지원책 아닌, 지원책 같은 정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영진위 분들은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도 고쳐 매지 말라’는 고릿적 속담을 들어는 보았는지 작금의 정국에서 대안이라고 발표한 정책은 결국 지원금을 앞세워 이에 목마른 독립영화인들을 줄 세우기 하겠다는 신종 검열정책으로 해석하기 딱 좋은 모양새를 갖춘 꼴이 되었다. 어쩌면 부산시도 영진위도 자신들이 벌여놓은 이 논란이 실은 딱히 신경 쓰이지 않는 상황일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그들의 최고 존엄이, 은밀히 요구한 그 어떤 주문이, 다른 어떤 사안보다 중차대한 선결과제로 존재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한 실정임을 고려한다면 일견 타당성 있는 추측일 것이라 여겨진다.

그렇게 선택된 일방적 ‘밀당’이라는 협박과 예고된 실력행사에 과연 우리는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당장 대전만 한정해 보더라도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선정 탈락으로 지역의 유일한 예술영화전용관이 폐관 위기에 있다. 독립영화전용관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영화대중은 고사하고 지역의 문화 및 시민단체의 역량을 집결시키기도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인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 사수’라는 이제는 예전의 역사 속에서나 반면교사로 돌아보아야 할 것이라 여겼던 이 문구가 다시 이 땅의 영화인에게  목 놓아 부르짖어야 할 구호로 되돌아왔다. 화가 나다 못해 서글퍼져 버린 한 편의 저열한 블랙 코미디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쳐 나아가야만 할까? 음험하고도 질긴 생명력으로 부활하고 있는 이 신종 검열의 시대라는 변종 괴물이 일방적으로 들이미는 폭력적 ‘밀당’의 위선을 이제 어떤 방식으로 까발려 그 시커먼 속내를 만천하에 드러나게끔 해야 하는지, 과연 어떤 방법으로 이 괴물에게 깔끔하고 완벽하게 영원한 작별을 고할 수 있을지 대한민국의 영화인뿐만 아니라 문화계, 나아가서는 지성적 대중까지 지혜와 역량을 모아야 한다는 다소 식상하지만 대치할 수 없는 문구로 마무리함을 이해해주시라.


민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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