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96호] 유등천을 만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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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을 따라 걷는 길은 조금 불편하다. 사람이 많이 오가지 않는 길이다 보니 덤불을 헤치며 걸어야 하고, 길이 없는 경우도 있다. 굽이굽이 천을 따라 한참을 돌아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강을 따라 걷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을 좇는 길 위에서 한참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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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경운동연합은 2005년 진행한 유등천 종주 프로그램 10주년을 기념해 2015년, 다시 유등천을 걷기로 했다. 매달 한 차례, 유등천 발원지부터 강 하구까지 대전환경운동연합 회원과 함께 걷는다. 월간 토마토도 이들과 함께 유등천 걷기에 동행하고 있다.

3월 11일, 세 번째 유등천 걷기는 금산군 복수면 곡남리에 자리한 복수교부터 금산군 복수면 구례리에 자리한 구례교까지 약 10km를 걸었다. 전체 길이가 약 50~60km인 유등천의 중상류 지점인 20~30km 구간을 걸은 셈이다. 대전환경운동연합 이경호 국장과 아홉 명 회원이 함께 했다.

대전시 안영동 하나로마트에 모인 이들이 이경호 국장의 차에 올라탔다. 금산군으로 향하는 차는 넓은 도로 위를 씽씽 잘도 달린다. 창 너머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다 금세 멍해진다. 차를 타면 늘 그렇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생각한다. 도시에 놓인 수많은 도로와 다리가, 그 위를 세게 달리는 자동차가 빠르고 편리하게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다준다. 그 속에서 무언가를 천천히 눈에 담기란 참 어렵다.

복수교에 도착해 이경호 국장이 참가자를 향해 이야기한다. “오늘도 길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강을 따라 죽 걷도록 하죠.” 3월의 따뜻한 햇볕이 이마를 간질인다. 깊이깊이 펼쳐진 산과 강이 답답했던 시야를 넓히고 복잡했던 머릿속이 깨끗해졌다. 편안함과 안락함은 금세 사라졌지만, 옅은 긴장감과 시원하게 온몸을 휘감는 자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635번 국도 옆 천을 좇는 좁은 길을 따라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천은 언제나처럼 맑디맑은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도심을 흐르는 유등천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날은 상류를 걸었던 지난 탐사보다 더 많은 마을을 만났다. 곡남3리, 수영리, 양효마을, 연흥마을 등 천을 따라 곳곳에 자리 잡은 마을과 경작지, 그리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 다리가 여럿 눈에 띈다. 그래서인지 천 주변으로 사람의 흔적이 제법 많이 묻어났다. 논에 물을 대는 양수기, 다 쓴 비료 포대, 생활 쓰레기가 드문드문 나타났다 사라졌다.

“10년 전과 모습이 많이 바뀌었죠. 가장 큰 변화는 다리예요. 예전에는 다리가 이렇게 많지 않았어요. 다리를 세우면서 보를 함께 설치하는데, 보는 천에 전혀 필요 없는 존재죠. 강이 아니잖아요. 바닥이 드러나게 얕게 흐르도록 그냥 내버려 두면 되는데 굳이 보를 설치해 물을 가둬둘 필요가 없죠. 하천 주변 제방도 예전에는 모두 흙으로 만든 자연 제방이었고, 길도 비포장도로였어요. 지금은 모두 반듯하고 보기 좋게 정비했죠. 모두 주민 편의를 위해 만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이게 어느 정도 합의가 필요하거든요. 필요하다고 무조건 만들 순 없잖아요. 환경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하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또 하나의 다리가 세워지고 있었다.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가 강을 가로막았다. 그 뒤로 산을 관통하는 어두운 터널이 또 한 번 눈길을 끈다. 터널과 다리는 곧, 대전시 무수동으로 이어지는 빠르고 편리한 길이 되겠지.

“예전에는 강이나 천을 따라 걷던 것이 길이 되었잖아요. 지금은 자연을 훼손하면서 길을 만들어요. 시간이 흐르고 강과 천이 그리고 자연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어요. 그 속에 어떤 동식물이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혼자서는 이렇게 걷기 힘들잖아요. 회원들과 함께하는 순간이 좋아요.”

차로 10여 분이면 그만인 거리를 이토록 어렵고, 불편하게 걷는 이유, 우리는 아마 천천히 자연을 두 눈에 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풍경을 원래 자연의 속도와 변화에 맞춰 담아내는 것, 하늘 높이 나는 새, 거리에 아무렇게나 핀 꽃과 풀에 천천히 눈 맞추며 걷는 것, 계절의 변화를 몸소 느끼는 것, 이것이 바로 유등천을 걷는 이유가 아닐까. 

   

   

세 시간이 넘도록 천을 따라 걸었다. 봄을 시샘하는 바람이 세차게 불다가도 금세 따뜻한 해를 내보이기를 반복한다. 천 주변에는 벌써 푸른 싹이 돋아 싱그러운 봄기운이 완연했다. 자연 속에서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계속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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